난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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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가위와 주성치 사이 [서유쌍기] (0) 2011/07/07 PM 07:44

주성치 팬들에게 최고의 작품으로 불리우는 <서유쌍기>의 시작은 지금처럼 그렇게 뜨겁지 못했다.
흥행 보증수표 주성치의 명성답지 않게 제작비도 회수하지 못했고 곧바로 중국에서도 개봉되었지만 '왕가위의 아비정전이 한국에서 받은 수모처럼' 끔찍한 대접을 받았다. "저것도 영화냐!"라는 비아냥과 함께 불교에 대한 몰이해, 신성모독이라는 악평까지 받았을 정도였다. 물론 흥행성적은 형편없었고 말이다.

그러다가 2000년 들어서 수많은 분석글들과 동영상이 떠돌며 하나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최선봉의 작품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소설 서유기는 100회본으로 되어있는데 1편격인 월광보합의 원제가 '서유기101회 월광보합'이다. 제목부터 대놓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포하며 나서고 있다.주성치가 유진위의 출연제의에 가장 망설였던 이유도 자신의 멜로영화가 관객에게 먹힐까, 하는 점이었다. 당시 그의 입장에서 지나치게 파격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 <월광보합>은 <선리기연>에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한 전초전의 성격이 강하다.
<서유쌍기>가 그 자체로 왕가위 영화들에 대한 패러디이다. 첫 장면부터 누더기를 걸치고 모래언덕 너머 지나가는 사람을 엎드려 바라보는 산적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동사서독>의 장국영과 장학우를 연상시킨다.

왕가위 영화의 주인공처럼 주성치도 독백을 하는경우도 많고 다른 여자 때문에 내 여동생을 버렸다며 양가휘를 죽여달라고 장국영을 찾아온 임청하의 1인2역 또한 춘십삼낭과 백정정을 떠올리게 한다. 지존보가 가끔씩 꿈속에서 목격하는 파도의 풍경도 <동사서독>과 닮았다.

-동사서독의 패러랠 월드 동성서취-


이처럼 <월광보합>은 <동사서독>의 비장한 음악을 가져온 것은 물론 노골적으로 그런 디테일들을 드러내는데, 실제로 왕가위와 그저 평범한 코미디감독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유진위는 무명 시절 함께 시나리오를 썼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다. 이런 이유로 <동사서독>이 제작에 난항을 겪을때 그 배우와 스텝을 이끌고 <동성서취>를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주성치 영화답게 코믹한 장면도 많다.나가영의 only you나 알몸으로 훌라춤을 추고 거시기에 불이 붙었을 때 그곳을 마구 짓밟아 불을 끄는 장면이나 이형환영대법으로 몸이 바뀌는 장면은 주성치와 오맹달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선리기연>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펼친다. 머리에 금강권을 쓰고 모든 감정을 끊어버리는 손오공의 슬픔이 잘 나타난다. 그러면서 <동사서독>뿐만 아니라 <중경삼림>까지 끌고 들어온다.

<중경삼림>에서 점프컷으로 임청하와 마주쳤던 금성무의 명대사인 “그때 검과 내 목과의 거리는 0.01mm밖에 되지 않았다”라거나 “만약 사랑의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라는 대사를 읊는다.
<동사서독>에서 장만옥은 장국영이 자기를 잊어주길 바라며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구양봉은 많은 일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한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복사꽃은 <서유쌍기>의 지존보도 들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놓고 패러디를 하여도 원작 못지않게 다가온다. <동사서독>에서 과거의 기억을 지워준다는 취생몽사라는 술은 농담이지만 <선리기연>은 그걸 진실처럼 말하고 있다. 어쩌면 진짜 취생몽사를 마시고 떠난 사람은 장국영이 아니라 지존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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