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권이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된 영화는 크게 <찬선생과 조전화>,<패가자>,<엽문>일 것이다.
양자경 주연의 <영춘권>이 있지만 여기서 액션은 원화평식의 액션으로 실제 영춘권과는 꽤 차이가 있다.
홍금보가 <찬선생과 조전화>를 완성하기 전까지 홍가권(유가량의 <홍희관>이 대표작)과 상형권법(象形拳法; 성룡의 <사형도수>가 대표작)이 유행했다. 이런 흐름을 돌파하고자 홍금보는 영춘의 달인 위응취를 찾아가 자세한 설명을 끝까지 듣고는 박수를 치며 감격했다. "과연 대단한 권입니다!" 이어 홍금보는 영춘권 자료를 수집해 <찬선생과 조전화>를 완성했다.
-본격적인 최초의 영춘권 영화 <찬선생과 조전화>-
영춘권은 동작의 간결함을 추구, 쾌공(快攻)이 핵심이다. 때문에 홍가권의 복잡한 초식의 상형권법 과는 다르게 스크린에 적합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춘에 담긴 실전이란 특성을 꿰뚫어 본 홍금보는 현대적인 격투기 원리로 영춘권법을 해석함과 동시에 체계적인 무술 동작을 결합해 다른 스타일을 갖춘 <찬선생과 조전화>를 완성, 당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3년후 홍금보는 자신의 경극학교 출신의 친구들과 또 한편의 영춘권 영화를 완성시킨다.
원표 주연의 <패가자>로 금상장 최초의 무술감독상의 영예를 홍금보에게 안겨준 영화이기도 하다.
-금상장 최초의 무술감독상 작품 <패가자>-
이런 영춘권 영화의 정점을 찍은것이 바로 견자단의 엽문이다. 견자단은 이전의 양자경의 <영춘권>에서 스승 원화평을 도와 액션연출과 출연을 했지만 액션은 영춘권과 <황비홍>식의 원화평식 스타일이였다.
최근 견자단은 그의 영화에서 거의 무술감독을 맡으며 액션장면의 통제권을 자신의 밑에 두었지만 실존인물은 엽문을 연기하기 위해서 9개월간의 영춘권 수련과 인물연구와 감량등 배우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 무술감독을 겸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 홍금보에게 무술감독을 맡겼고 결과는 대성공이였다.
홍금보의 탁원한 액션 설계로 흥행과 비평 모두 괜찮은 평을 받았고 <엽문1,2편> 모두 홍금보에게 무술감독상을 안겨줬다.
바야흐로 홍희관, 방세옥, 황비홍, 곽원갑 이후 엽문과 영춘권의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그 중심에는 홍금보의 공로를 잊어서는 않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