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 4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에 가려진 또 하나의 기록인 김일융의 코시 3승 마지막 7차전을 김일융이 이겼다면
코시 4승의 신화는 김일융의 몫이 었을것이다.
장명부의 엄청난 활약에 자극을 받은 다른 구단들은 재일교포 영입에 뛰어들고 김일융에 영입에 삼성과 ob는 경쟁을 한다. 경합 끝에 삼성 라이온즈가 이적료와 계약금, 연봉을 합해 5천5백만엔이라는 거액을 베팅해 영입에 성공
자금력에서 뒤진 OB가 '그 돈이면 차라리 연습구장을 하나 짓겠다'며 물러섰고, 뒷날 경남 창원에 지은 연습구장 이름을 한동안 '니우라(김일융의 일본 이름) 구장'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최고 인기구단인 요미우리에서 2년연속 방어율왕과 15승 이상을 올려 엄청난 인기를 올렸지만 발꿈치부상으로 장기간의 슬럼프로 '재기불능' 이란 판단으로 자기팀의 부메랑 효과의 걱정도 없고 막대한 트레이드 머니 를 제시한 한국행이 결정된다.
'토종 에이스' 김시진이 삼미등 약체팀에 투입되던 것과 달리 강팀위주의 등판에도 불고 하고 더 빠른 승수를 쌓아가지만 기록 가지고 장난을 잘 치는 김영덕 감독은 둘의 승수를 똑같이 25승으로 맞춰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팀의 에이스는 김시진'이라는 매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3년간의 한국생활후 구위회복과 다저스캠프에서 배운 포크볼을 장착해 일본으로 복귀 10승과 올해의 재기상을 수상하고 삼성은 요미우리에 지불한 트레이드머니의 3배인 3천만엔이라는 거액을 챙길수 있었다.
적지않은 나이 부상과 당뇨에도 코시 4승을 올릴뻔한 김일융 그 당시 한,일의 리그 수준차를 감안해도 엄청난 기록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