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에서 태어난 장 클로드 반담은 아버지의 권유로 10대 초반에 가라데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와 더불어 무에타이, 킥복싱, 태권도도 익힌다.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유럽에 가라데를 전파한 것으로 잘 알려진 클라우드 고에츠 밑에서 수련하며 벨기에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한다.
그 사이에 장 클로드 반담은 각종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면서 전적을 쌓았고, 대표팀의 일원으로 경기에 나섰던 1979년에는 유럽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아울러 근력을 키우기 위해 바디빌딩도 겸하여 미스터 벨기에 타이틀을 차지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도인의 길을 걷는 한편으로는 특이하게도 발레를 배운 적이 있다. 16살 때부터 5년간이나 지속했던 그는 발레가 예술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스포츠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장 클로드 반담은 20대가 되어 돌연 가라데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간 것이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는 장장 5년 동안 피자 배달부, 운전기사 등을 하면서 힘겹게 생활했었는데 다행히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척 노리스를 만나면서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장 클로드 반담은 척 노리스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주었고, 그가 운영하던 클럽에서 기도를 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척 노리스의 히트작인 [대특명]에서는 단역으로 출연할 기회도 얻었다. 이를 전후하여 몇몇 영화에 출연했고, [특명 어벤저]에서는 꽤 비중 있는 악역도 연기했으나 특별히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한 영화사의 제작자가 우연히 무술솜씨를 보고 장 클로드 반담을 기용하게 되는 행운이 주어진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그의 주연 데뷔작인 [투혼]이다.
[투혼]은 저예산으로 홍콩 로케이션을 감행해 제작된 영화다. 그래서인지 촬영이 끝나고 보니 형편없는 수준이라 2년 동안 개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가 탈 수 밖에 없었던 장 클로드 반담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편집을 도왔고, 제작자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가까스로 극장에 걸릴 수 있었다. 이렇듯 개봉은 힘들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고작 150만 불로 약 3천만 불을 벌이며 척 노리스,스티븐 시걸을 잇는 액션스타로 나아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국내에서 장 클로드 반담의 발레 경력이 어떤 TV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알려지게된다.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해당 프로그램은 마치 그가 자신의 과거를 속인 것처럼 방송을 한다. 무술은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단지 발레 덕에 액션배우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는 엄연히 사실이 아니다. 장 클로드 반담이 발레를 했었다는 건 일찍부터 알려졌었다. 또한 그의 경력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것도 맞다. 장 클로드 반담이 대회에 참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서 의혹이 불거졌었는데, 그 이유는 본명인 '장 클로드 반 바렌버그'로 등록한 탓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척 노리스나 스티븐 시걸의 이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정식으로 무술을 연마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스승인 클라우드 고에츠가 TV에 출연해 자신이 반담을 가르쳤던 때의 기억을 이야기한 영상이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다.
이 소문은 그가 술집에서 시비끝에 맞은 사건으로 더욱 퍼지게 되는데 이것은 사실이며 1998년 2월에 뉴욕의 한 스트립 클럽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당시에 동행했던 미키 루크가 하워드 스턴 쇼에서 말하길, 장 클로드 반담이 술에 취해서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굴다가 펀치 두 방을 맞고 쓰러졌다고 한다.하지만 그 상대방이란 게 누군지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는 복싱과 무술로 단련되어 실베스터 스탤론, 숀 펜, 찰리 쉰 등을 경호한 '척 지토'였다. (미키 루크와 장 클로드 반담도 한때 그의 고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