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번복하고 [가유희사]로 컴백을 한 장국영. 그가 차기작으로 고른 작품은 중국에서 제작 된 [패왕별희]였다.
[아이들의 임금님]이란 영화로 작품성을 인정 받았던 첸카이거의 4번째 작품인 패왕별희는 사실 영화 촬영 전부터 산고를 겪었다. 바로 `데이`에 누구를 캐스팅하는냐가 초미의 관심사 였다.
당시 [마지막 황제]로 주가가 급등세에 있던 존론과 홍콩의 슈퍼 스타, 장국영이 후보에 올랐고 결국 장국영으로 결정이 되었다. 하지만 첸 카이거는 불안한 마음으로 장국영을 선택하게 된다. 처음 첸 카이거와 장국영이 만났을 때, 그는 담배 피우던 손가락을 아주 살짝 떨며, 아주 좋은 연기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첸 카이거는 내심 그가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쟁쟁한 대륙 배우들인 공리와 장풍의 사이에서 북경어조차 못하는 장국영이 엄청난 집중력과 열정을 보인다. 북경어 뿐만 아니라, 경극마저도 완전한 초보였던 그는 대역도 거부하고, 38.9도의 고열 속에서 경극을 연습하고, 북경어를 연습했다. 심지어 식사 시간, 평상시 걸음걸이까지도 북경어 대사를 외우고, 경극의 걸음걸이를 연습했다 한다. 사실 북경어와는 완전히 다른 광동어권 배우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패왕별희로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공리,장국영은 한표차로 남우주연상 수상에 실패한다.-
홍콩 중문 대학에서 `문학과 영상의 비교`라는 강좌에 특별강사로 초빙된 장국영은 데이의 죽음을 3가지 이유로 분석했다. 첫째, 우희의 집착적인 성격 때문에 패왕 앞에서 죽으려고 했다. 둘째, 데이는 자살로써 패왕과 우희에 대한 고사의 결말을 완성시켰다. 셋째, 군중 앞에서 우상으로 살면서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두달후 장국영은 세상을 떠나고 첸카이거는 “장국영은 데이가 되어 떠났다.” 고 했다. [패왕별희]는 첸카이거에게 칸의 영광과 함께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게 해주었다. 쥬산으로 출연했던 공리 역시 그 해 칸에서 여우 주연상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장국영은 칸 남우 주연상에선 딱 한 표 차이로 고배를 마신다.
하지만 이런 영광과 함께 불행도 안겨주었으니 [패왕별희] 이후로 홍콩에서 그에 성정체성에 대한 가십이 쏟아지기 시작한다.첸 카이거는 훗날, “장국영은 자신이 연기할 역할에 영혼을 바치는 배우”라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