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은 키울수 있어도 키는 키울수 없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신체조건을 극복한 많은 선수가 있지만 키만큼 농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1993년 아시아 선수권에서 북한 은메달 획득의 일등공신인 리명훈. 이 대회에서의 맹활약으로 최고급 주택과 외제차를 선물로 받으며 북한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이 대회를 지켜본 NBA의 관계자들이 리명훈에게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것이 뮤레산(2m32)이나 숀 브래들리(2m29)보다도 키가 더 큰 2m35의 세계 최장신 농구 선수 였기 때문이다. 뮤레산이 키 하나 만으로 19살에 nba에 입성 할 수 있었으니 많은 팀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그 정도의 신장의 선수가 있는 것만으로 상대팀이 공격하는데 위축 될 것은 당연한 일이고 최장신 선수라는 상징성과 북한국적이라는 점에서 마켓팅 가치도 꽤 되었다.
-숀 브래들리와 뮤레산 이 둘보다 리명훈의 키가 더 컷다.-
그러나 문제는 복잡했다. 미국은 적성국 교역법을 내세워 리명훈의 취업비자는 물론 연봉도 지금 할 수 없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97년부터 올랜도를 비롯한 3~4개의 팀이 미 국무성에 리명훈의 NBA 진출을 허용해 달라는 서한을 보내며 강한 영입의사를 보였고 올브라이트와 김정일의 면담에서 리명훈이 거론되며 NBA 진출이 거의 확정 되는 듯 보인적도 있다.
그러나 북한측은 미국의 제제를 풀기가 쉽지 않자 우선 먼저 캐나다로 그를 보내 NBA 진출을 모색한다. 캐나다 국가대표팀 코치을 지낸 잭 도나휴의 지도 아래 NBA진출에 필요한 체력 단련과 기술 훈련을 받으며 제재가 풀리기를 기다리지만 결국 서서히 리명훈에 대한 관심이 식어 갈 떄 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
이명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것은 현대와 북측이 통일농구대회를 개최하자 그의 출전이 큰 화제가 된다. 서울 입국시 김포공항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리명훈과 북한의 조던으로 불리던 박천종을 내세워 승리를 자신했고 현대와 대결에서 86-71로 승리를 했다.
마지막으로 35살의 나이로 부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해 서장훈 김주성과 남북 대결을 펼쳤는데 14득점에 3리바운드를 기록을 하며 체면을 구기며 사실상 아시안 게임이 마지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