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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줍기] 가만히, 뺨을 대본적이 있었다. (0) 2017/04/03 PM 11:35

<바람의 지문>

 


 


먼저 와 서성이던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그사이


늦게 도착한 바람이 때를 놓치고, 책은 덮인다


 


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덮인 책장의 일이란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 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때로 어떤 지문은 기억의 나이테


그 사이사이에 숨어든 바람의 뜻을 나는 알지 못하겠다


어느 날 책장을 넘기던 당신의 손길과


허공에 이는 바람의 습기가 만나 새겨졌을 지문


 


그때의 바람은 어디에 있나


생의 무늬를 남기지 않은 채


이제는 없는, 당신이라는 바람의 행방을 묻는다


 


지문에 새겨진


그 바람의 뜻을 읽어낼 수 있을 때


그때가 멀리 있을까,


멀리 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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