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프리랜서로 온 부장님과 술자리를 가졌다.
일주일 전부터 오신분인데 계속 '술마시자 술마시자' 노래를 해서 약간 불편한 기분도 들었는데
결국 이번주 화요일에 기어코 술자리를 갖기로 약속을 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사정이 생겨(월요일 우리 여사장님과 대작후 병원행....) 어제 술을 마시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너무나 들이대는 부장에게 대다수 사원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대부분 일이 너무 많아서 (실제로 많기도 했고) 가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래도 우리 프로젝트를 해주시는 분이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니
한사람은 총대를 메야 했는지라 제일 고참격인 내가 가서
'저라도 괜찮으시면 둘이 마시는건 어떨지 아니면 날짜를 변경하시거나' 로 운을 띄우자
둘이서 마시잔다. (젠장 -_-;;)
결국 근처 치킨집에서 맥주 500을 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부장님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 흉을 보기 시작하는데
그때까지만해도 '남을 낮추면서 자기 만족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언짢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흉을 보던 부장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부장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제 주위 사람들이 왜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
(얘기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헛된 목표를 삼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거나, 40대 이후로 삶의 목표를 못잡고 몰락한 사람들 이야기였다.)
-그분들은 뚜렷한 자기 목표가 없었고, 준비가 안되어있어서가 아닐까요
부장
-맞아요.
-그리고 저는 프로그래머를 하기 힘든 40대 넘는 나이에도 프로젝트를 따서 일하고 있고
-아까도 자랑처럼 말하지만 번역일도 해서 따로 한달에 2-300은 벌지요.
-무슨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나
-말씀해보시죠
부장
-사람은 40대가 넘으면 인생에 큰 고비가 찾아와요
-지금 울대리님 친구들은 현재 다 건실하실 테지만, 40대 지나면 무너지는 분들 많을 겁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회사에선 정리하려고 하지, 막상 회사에서 나오면 하나밖에 할줄 모르니 방황하게 되지
-돈은 날리지
-그럼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되죠.
-그걸 대비해서 무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전 영어가 제 무기였어요.
-그리고 지금도
-(가방을 열어 보여준다)
-뭐가 보이세요
나
-책이 많으시네요
부장
-중국어와 일어를 공부중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불경기라 IT 신규 프로젝트가 없어요
-이제 중국과 일본의 일을 따지 못하면 전 일을 못합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울대리님. 지금은 체감 못하시겠지만요.
-준비하세요.
-제 주위엔 대기업 나온 사람도 많았어요. 삼성전자 나온 부장이니 차장이니 하는 사람들
-지금다 뭐하는지 아세요?
-사기꾼 됐습니다.
-대기업 나오고 할줄 아는게 없으니까 가정에서 들볶이다가 밖을 헤매던가
-남을 등쳐먹던가
-그렇게 눈이 높아진 사람들은 택시기사나 다른 일자리르 못찾아요.
-자기 자신의 현실을 모른다구요.
나
-(그럼 우리 아버지는... 정말 엄청난 분이시구나.......)
*우리 아버지는 기아자동차 30년 근속을 하시다가 IMF전에 기아가 도산해서 퇴직하시고 퇴직금 3천을 주식으로 잃으셨다.
그럼에도 리어카를 끌고나가 노점상을 하셨고, 이후 택시에도 도전하셨다가 현재는 트럭을 장만하여 조선일보 신문 편집국에서 운송을 하신다.
부장의 말대로라면 직원을 수백명씩 거느린 직장의 위치에서 몰락했다가 과거를 떨쳐내고 일어나신 정말 강인한 의지를 지닌 분이시리라...
아무튼, 여러가지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화였다.
나는 도대체 뭘 준비하고 있는가.
만약 이 회사에서 여러 이유로 그만두게 된다면 난 당장 뭘 할 수 있는가
나라고 그 부장님이 말한 몰락한 인간의 유형중에 하나가 되지 말란법이 없지 않는가.
미래는 내 편이 아니니까
집에 남겨진게 없다면..... 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