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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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과 망상] 노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도겐을 써본적이 없었다. (3) 2016/04/11 AM 01:44

그날따라 노신사는 걷고 싶었다.
운전기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걷고 싶었다.
거래처에서 집까지 그렇게 먼길도 아니었을 뿐더러, 최근 건강검진에서 주치의가 건강에 대한 주의를 준 것도 있었다.
아직 나이 73세. 늙었다면 늙은 나이지만, 남자의 뜨거운 자존심은 남아있을만한 충분한 나이였다.


[네이버 지도로 15분이면 충분히 걸을만 하군...]


15분 거리를 걸어가지 못한다면 라이벌 윤회장이 두고두고 놀릴게 틀림없었기에 고집을 부려서라도 걷고 싶은 점도 있었다.


"먼저 들어가게. 안사람한텐 내 얘기하겠네."


몇번이고 다짐을 받고서야 물러난 운전기사를 보고 노신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30대 일때도 40대일때도 어머니가 간섭을 해왔다.
이제 나이는 70줄. 진인사대천명에 접어든 나이인데도 운전기사의 간섭에 시달려야한다니 어찌 어른이라 할 수 있는가
변한게 없단 말이지..... 하고 한숨을 내쉬며 노인은 낯선 언덕길을 걸어 올라간다.

25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던가
어릴적 뛰놀던 동네언덕길은 이미 변한지 오래되어 숲은 간대 없고 아파트 단지만 무성하다.
힘겹게 언덕길을 오르던 노신사의 눈에 초등학교 문방구 앞의 오락기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어린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모여 게임을 하고 있다. 요즘 한창 인기 있는 격투게임이 틀림없었다.
노인은 잠시 쉴겸 이마의 땀을 훔치고 서서 아이들의 게임을 지켜 보았다.

아직 어설픈 솜씨지만 승리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뜨거운 아이들.
아이들의 캐릭터는 갖가지 현란한 기술을 뽐내며 승부를 다퉜고 어릴적부터 게임을 좋아하던 노인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그러고보면.... 난 아도겐을 쏘지 못했어..........'


아이들의 현란한 필살기와 장풍의 난무를 보며 노인은 마른침을 삼킨다.
언제였을까
노인은 동네에서 게임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일인자의 자리에 오른 사나이였다.
갤러그는 물론이요 보글보글, 핑퐁, 테트리스 등등 수많은 게임에서 그 누구도 노인을 넘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으니............ 오락실에 스트리터파이터2가 들어온날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다.
사랑하던 말숙이는 "이제 슈퍼마리오는 질렸어" 라고 외치며 노인을 떠났고,
노인은 말숙이를 되찾기 위해, 동네 게임왕 자리를 되찾기 위해 스트리터파이터2에 과감히 도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노인은 아도겐을 쏠 수 없었다.
제 아무리 레버를 휘저어도 노인의 류는 자리에 앉았다 점프만을 계속 할 뿐.
아도겐을 쏘지 못했다.
다른이가 조종하면 화려한 주인공,
노인이 조종하면 혼다에게도 패배하는 얼간이.
그것이 류의 위치였다.

아도겐을 쓰지 못하자 다른 격투게임의 스킬역시 쓰지 못했다.
처음엔 스트리터파이터2이후 다른 작품은 괜찮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킹오브 파이터에서도 던전 드래곤에서도 야구왕 닌자베이스볼 에서도


모두가
모두가
모두가


아도겐이 아니면 기술이 나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땐 그게 그렇게 중요했었지...............'


노인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의 게임을 지켜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들의 승부도 마무리되어 한 아이가 제기랄 투덜거리며 아이스크림을 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나름 귀여웠던 노인은 지갑을 열고 문방구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이 아이들의 아이스크림을 사겠소."


그 말에 덤탱이를 썼던 아이는 주춤거렸지만, 말쑥한 노신사의 모습에 안심하곤 만세를 불렀다.
그리곤 나름 은혜를 갚아야겠다, 싶었는지 자신있게 가슴을 펴며 말한다.


"오늘은 재수 없어서 졌지만 제가 동네 최고라구요. 다음엔 꼭 이길거예요."


노인은 그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래 그래 꼭 내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구나."
"할아버지도 게임 잘했어요?"
"잘했다마다. 장풍만 아니면 할아버진 게임 왕이었지."


격투게임 외에 슈팅게임 건게임에서 대리만족을 위해 지존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노인은 과거를 회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꼬마는 노인이 한가롭게 과거를 떠올리도록 가만 두지 않았다.


"장풍도 못써요? 그거 진짜 쉬운데."
"후후 쉬우면 할아버지한테 가르쳐 줄 수있겠니?"


노인의 말에 아이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으로 허공에 휘저어 보인다.


"조종기를 이렇게 아래에서 위로. 그런데 위로가면 안되고 옆까지만 가게. 90도로 휘면 장풍 나가요."
"할애비는 말이다. 아무리 해도 그게 안됐단다."
"할아버진 어떻게 했는데요? 손으로 해보세요."


꼬마의 말에 노인은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열심히 해보인다.
이제와서 뭔가 될 것 같진 않았지만, 아이의 열성적인 모습에 노인은 저도 모르게 따라하고 있었다.


"에이. 그러면 안되죠. 끝까지 올라가면 안된다구요. 중간까지만."
"중간까지만이............................라고?"


아이의 말에 노인은 모짜르트처럼 허공에 휘젓던 손을 멈췄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다시한번....다시 한번 말해주겠니?"
"중간까지만 가야한다구요."


노인의 입에 미소가 사라졌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갑을 뒤지기 시작했다.
두툼한 지갑에 있는 돈은 모두 신사임당. 노인은 황급히 문방구에 들러 돈을 바꾸고, 100원짜리를 꺼내어
오락기에 돈을 집어 넣었다.


'중간'
'중간까지'
'중간까지만'
'중간까지만이라고????'


킹 오브 파이터를 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노인의 격투게임 시계는 스트리터파이터에서 전혀 나아간적이 없었다.
그러나 노인은 돈을 넣었다.
캐릭터를 고른다.
류는 아니다.
그러나 아이가 갖고 놀던 장풍을 쏘는 캐릭터임에는 분명했다.
아이의 말을 몇번이고 되새긴다.


'중간'
'중간'
'중간'
'중간'


그리고 레버를 돌린다.
레버를 돌리고 강손.
레버를 돌리고 강손!
처음엔 점프를 뛴다.
아이의 말을 다시 되새긴다.


'중간까지'
'중간까지'
'중간까지!!'


레버를 돌리고 강손!!


아이들은 어쩔 줄 몰랐다.
다큰 어른은 울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컴퓨터한테 진게 그렇게 슬펐는지 장풍 한번 쏴놓고
오락기를 부여잡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흘리다 못해 서럽게 꺽꺽 울기 시작한다.

이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아도겐을 못쏘는건 제얘기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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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하면서 아도겐을 못쓰는 것과 두발자전거를 못타는 것 중에 어느쪽이 더 심각한 문제일까요?(저는 자전거를 못탑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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