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있는 모든 것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태어나면서 이디아만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힘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디아는 길을 열어준 숲에 감사를 표하고는, 숲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숲은 어둡고 축축했다.
성벽같이 웅장하게 자란 십 수 미터쯤 되는 나무들의 무성한 잎사귀는 대낮에도 햇살을 가려서 밤처럼 어두웠고, 그 덕에 다른 식물들은 좀처럼 자라지 못해 바닥은 축축한 이끼와 기생 가시 넝쿨로 가득 했다.
하나같이 사람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험악한 환경이었지만, 숲의 도움을 받는 이디아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숲으로 막 들어선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다 찢어져가는 천막들과 곳곳에 널려진 쓰레기들, 바로 과거 이곳에 도전하려 했던 모험가와 젊은이들이 곳곳에 세워 두었던 캠프로 무모하고 비참한 도전의 말로를 보여주는 상징들이었다.
침묵의 숲을 정복하기 위해, 숲에 발을 딛었던 모험가들 중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들도 도망치듯 떠나갔기 때문에 숲의 입구 어귀는 이렇게 버려진 물건들이 지금까지도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다.
‘편히 잠드시길...’
짧은 묵념을 마친 이디아는 아윈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아윈이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이디아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소까지 찾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윈만큼 숲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햇빛을 가려 낮에도 밤처럼 어두운 이 숲속에서 함부로 움직이다간 길을 잃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디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윈이 남겨둔 표시에 의지해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 있네!’
숲의 나무에 새겨진 표식을 보고 이디아는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나무 곳곳에는 과거 이곳에 도전한 모험가들이 남겼던 무수한 표시가 낙서처럼 남아있었지만, 이디아는 그중에서 아윈의 표시만을 쉽게 찾아냈다.
다른 표시들과는 달리 아윈의 표시는 한참 아래쪽, 어린이의 키높이에 맞춰서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디아는 아윈이 남긴 표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아윈의 표시 위에는 많은 모험가들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이디아는 되도록 그 표시들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과거 모험시대 때부터 남겨진 모험가들의 표시들은 각각 그들의 비참한 말로를 들려주는 것 같아 어리고 여린 이디아로서는 볼 때마다 겁에 질리곤 했기 때문이다.
하나 예를 들자면, 어떤 표시는 같은 자리를 빙빙 맴돈 듯, 이미 한 표시 밑에 똑같은 모양으로 또 한 번, 또 한 번, 이렇게 여러 나무를 원을 그리며 긋다가 결국 사라진 것도 있었고, 또 어떤 것은 방향을 잃고 절대로 가까이 가서는 안 되는 무서운 존재가 숨죽이고 도사린 방향으로 다가간 것도 있었다.- 아윈조차도 그 방향으로는 결코 다가갈 엄두를 내지 않았다.-
어떤 표시는 대륙 공영어로 적혀있었는데, 일기처럼 매일 매일의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으로 글을 모르는 아윈이 무슨 이야기인지 알려달라고 매번 졸랐지만, 이디아도 선생도 끝끝내 그 내용을 알려주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디아는 처음 내용을 읽고 일주일간 밖에 나가지 못했다.-
결국 이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어지럽게 적혀있던 나무위의 낙서들이 깨끗하게 사라지고, 아윈의 표시만 남게 되는 시간이 오는데...
이 순간이야 말로 이디아에게 있어서 한 여름의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도 가슴 깊이 한기를 느끼며 온몸에 오돌오돌한 소름이 돋아나는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젠 아예 지금처럼 나무 위쪽은 보지도 않고 자기 키 높이에 그려진 아윈의 표시만 집중하며 길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아윈의 표시만 찾아보며 한 낮에도 새벽 같은 어두운 숲 속을 얼마간 나아갔을 때,
이디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드디어 도착했다!!’
성벽 같이 울창한 나무 사이로 내려오는 밝고 찬란한 빛줄기!
이디아는 숲의 가장자리, 바다와 맞닿은 절벽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저 빛의 너머엔 여기까지 이디아가 수고스러운 발걸음을 하게 만든 장본인인 마을 최고의 말썽꾸러기이자, 그녀의 유일한 친구 아윈이 또 다른 사고를 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윈...............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나무에 단단히 묶여진 어린아이 손목만한 굵기의 밧줄을 보며 이디아는 머리가 욱신거렸다.
더욱 골치가 아팠던 것은 그 밧줄이 엘피르가 알려줬던 대로 절벽 밑으로 향하고 있지 않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어. 머. 나~~.”
밧줄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 이디아의 고개가 저절로 높은 하늘을 향했다.
“세~~ 상~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에 저 멀리 작은 형상으로 허우적거리는 아윈의 모습이 보였다.
이디아는 부유기구를 떠올렸다.
언젠가 힐로아 전역에 지독한 흉년이 닥쳐와 풍년기원제를 연적이 있었다.
그때 영주도시에서 불려온 마술사가 천으로 만든 기구에 바람을 불어넣어 광장에 띄운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말썽꾸러기 아윈은 한사코 그 위에 매달려 보겠다고 기회를 엿보다가 이디아에게 들켜 어른들에 의해 끌려 나간 적이 있었다.
부유기구를 타지 못해 못내 아쉬워했었던 아윈의 표정을 떠올리며 이디아는 작게 박수를 쳐 주었다.
“소원성취 했구나. 아윈. 축하해줄게.... 자, 그럼.”
언제까지고 하늘에서 꼴사납게 허우적거리는 말썽꾸러기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이디아는 하늘을 바라본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을 향해 소리 없이 다가오는 사내를 향해 말했다.
“저 말썽꾸러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생님?”
그야말로 고양이처럼, 울창한 숲의 바닥에 깔린 넝쿨과 잡목을 밟으면서도 소리하나 없이 접근하던 남자는 이디아의 목소리에 그만 어흠 하는 헛기침 소리를 내었다.
“나무들이 다 얘기해 줬다구요. 뒤에서 살금살금 접근해 오는 아.저.씨가 있다구요. 오셨으면 말씀을 해주셔야죠.”
“아, 아저씨라니 말이 심하군요. 이디아양.”
“제가 그런 게 아니라 나무들이 그런 건데요?”
자기나이보다 한참 어린 소녀의 말재간에 사내는 더 이상 대꾸해봐야 본전도 건지기 힘들다는 것을 직감하고 숲의 그늘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중요한건 따로 있지 않던가?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방금 이디아가 부른 이름 그대로, 마을에서 선생이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마을 어른들보다 비정상적으로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바다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빛 피부, 알려지지 않은 이름과 출신 등, 시골마을 사람들이 보기에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남자였지만, 오랜 모험 생활로 쌓아온 지혜와 경험으로 마을의 위기를 몇 차례나 해결해 지금은 마을의 수호기사와 함께 가장 믿음직스러운 마을의 해결사로 존경을 받아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선생은 어수룩하게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도대체 아윈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분명 엘피르가 찾아온걸 보면... 아윈이 사고를 저질렀을 텐데요..?”
이디아는 대답대신 나무위에 묶인 밧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밧줄은 하늘을 향해 뻗어있었다.
선생의 고개도 밧줄을 따라 하늘로 향했다.
항상 보일 듯 말 듯 실눈을 뜨던 그의 눈이 커졌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항상 기상천외한 사고를 친다 싶었는데.. 이번에도 예상을 뛰어넘는군요. 아윈은.. 이디아양? 어떻게 된 걸까요?”
“저도 모르죠. 처음부터 날고 있었어요. 엘피르는 절벽 밑으로 기어내려갔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와봤더니...”
“그 반대라 이거군요.”
선생의 말에 이디아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뿜어내었다.
“정말! 열 세 살이나 됐으면, 이제 애가 아닌데 철이 없다니까요? 아무튼 내려오면 죽었어 아윈!!!!”
이디아의 말에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지금 저대로 내려오면 아윈은 죽습니다.”
“지금 설마 농담하신건가요?”
“모험가의 농담이죠.”
이디아도 아윈과 마을사람들처럼 선생의 많은 부분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이디아가 절대로 존경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선생의 유머감각이었다.
‘아윈이 딴건 다 배워도 저것만큼은 안 배웠음 좋겠어....’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세차게 고개를 저어댄 이디아는 팔짱을 끼고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쨌든! 중요한건 저 녀석이 떨어지기 전에 구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야 그렇지만....”
선생은 나무로 다가갔다.
수 백년은 족히 되었을 십 수 미터 높이의 굵은 나무에는 어린 소년이 묶은 것 치곤 아주 단단하게 묶인 밧줄이 아윈이 하늘로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버텨주고 있었다.
하늘 높이 뻗은 밧줄을 잡고 몇 번 힘을 써본 선생은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떨어질때까지 기다리죠. 이디아.”
“네?”
또 질 나쁜 농담을 하는 건가 하고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디아를 보며, 선생은 대답대신 팽팽하게 하늘로 솟은 굵은 밧줄을 손가락으로 튕겨 보였다.
“이디아 양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이래봬도 일반 남성들보다 훨씬 힘이 셉니다. 모험자니까요.”
이디아는 반박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선생은 힘깨나 쓰는 인물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중병을 앓는 환자처럼 창백한 납빛 피부와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다리에 비해 멀대처럼 큰 키만 봤을 땐, 처음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양실조 직전의 환자로 판단할 것이 선생의 겉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디아는 알고 있었다.
마을에서 두 번째로 존경받는 남자, 선생이 번번이 마을의 위기를 구해낸 배경엔 뛰어난 모험 경험뿐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체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힘도 있었다는 것을 세계 제일이자 왕국 3검사로 이름 높은 아버지에게 지겹도록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은 이디아와 아윈도 직접 목격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선생조차도 지금은 난감한 듯, 곤란한 표정으로 어렵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제가 이 밧줄을 당겨도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마을 사람 어른 열 명 이상의 힘이 아윈을 공중에 붙잡아두고 있는 셈이죠. 그게 바람의 힘인지 마법의 힘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만, 분명한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거죠.”
“그럼...”
“마을로 가서 도움을 청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겨우 도착해도 실력 있는 마술사를 찾아가려면 최전방 바닷가, 심해관문까지 더 가야합니다. 결국 지금 당장 아윈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이디아양 뿐이죠.”
아직 어린 이디아는 마술에 대한 소양이 없었다.
따라서 마술을 부려 아윈을 구해낼 수는 없다.
선생보다 힘도 약하기에 완력으로도 아윈을 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연약한 이디아가 이 숲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재주 하나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생 역시 그 재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이디아는 마지못해 깊은 한숨을 내쉬곤 지금까지 옆에 누가 있었다는 것처럼 이름을 불렀다.
“휘라. 거기 있어요?”
이디아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절벽의 끝자락에서 바람 한줄기가 불어와,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살아있는 모든 것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이디아만의 힘.
그녀의 부름에 응하듯 바람의 요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비록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바람의 정령은 부드러운 살랑임으로 이디아의 주위를 쓰다듬듯 빙글빙글 춤추며 주위의 풀들을 흩날려 보였다.
이디아는 오른팔을 쭉 뻗어 하늘을 가리켰다.
“말썽만 부리는 친구가 저 위에 있어요. 다치지 않게 도와줘요. 부탁할게요!”
이디아의 주위를 춤추듯 노닐던 바람의 정령은 그녀의 부탁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상냥한 손길로 장난스럽게 이디아의 머릿결을 살랑 흔들어준 다음, 곧바로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 순식간에 아윈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바다에 열려있던 구멍이 닫힘과 동시에 아윈을 하늘로 밀어 올리던 강한 바람도 사라지고 말았다.
아윈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휘라!!!!”
까마득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림잡아 수십미터는 족히 되고도 남을 침묵의 숲 거목들의 끝자락에 닿을락말락할 위치까지 끌려 올라간 아윈이었다.
그러나 그 높은 곳에서도 떨어지는 속도는 너무나 빨랐다.
애타게 요정의 이름을 부르는 이디아의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윈은 이미 그녀의 눈높이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끔찍한 참사가 벌어지기 일보직전!
그러나 휘라는 더 빨랐다.
아윈이 떨어지자마자 허공을 박차고 순식간에 따라잡은 그녀는, 소년이 바닥에 곤두박질치기 직전에 그 목덜미를 낚아채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끔찍한 대참사는 가까스로 면할 수 있었다.
땅에서 고작 손바닥 한 뼘 떨어진 위에서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로...
“푸-하!!!”
길게 참았던 숨을 거칠게 토해낸 장본인은 바로 아윈이었다.
얼굴가득 식은땀으로 세수를 한 흔적이 역력했던 소년은 가까스로 땅위에 서자마자 참았던 탄성을 내질렀다.
“살았다!!!!!!!!!!”
아윈이 만세를 부르며 오도방정을 떨고 있을 때, 이디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착한 이후로 내내 한심하다는 태도로 아윈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걱정한 것도 이디아였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디아는 아윈이 멀쩡히 서서 만세를 부르는걸 보고나서야 잔뜩 움츠러들었던 굳은 어깨를 축 늘어뜨릴 수 있었다.
‘다행이야...........정말..’
안도와 함께, 바람의 정령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한 이디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아윈에게 다가갔다.
“오~ 그랬어요? 살. 았. 어. 요? 이 웬수야.....”
잔뜩 걱정했던 모습도 아윈이 다치지 않아 안도했던 모습도 내색하지 않고 건네는 이디아의 말에는 잔뜩 가시가 돋아있었지만, 아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건 위험을 마주하고 있었건만, 그런 사실은 이미 기억 속 저편으로 날려버린 아윈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싱글벙글 미소 짓고 있었다.
“이디아!! 선생!! 나 봤어!!”
도대체 무엇을 보았는지, 이디아와 선생이 되묻기도 전에 아윈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가슴팍에 모은 채,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진짜 있었어!! 파란 바다는!! 하늘처럼 파란 진짜 바다는 진짜로 있었다고!!!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야!!”
“진짜 바다를 보았다구요..?”
“맙소사 아윈...”
선생과 이디아의 반응은 달랐다.
선생이 손으로 턱끝을 매만지며 진지하게 되묻는 반면, 이디아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으며 두통을 느끼고 시작한 것이다.
“또 그 소리니? 아무리 선생님이 진짜 바다 얘기를 했다곤 해도, 그건 전설속의 얘기야. 본 사람도 간 사람도 없다고, 진짜 바다란 건 저기 있는 저게 진짜 바다야.”
“또 그 소리라니! 바다를 봤다는 얘기는 오늘 처음 했어!”
“그게 그 말이지 이 말썽쟁이야!”
“고집불통 이디아!!”
두 아이의 말다툼이 심해지자 선생은 자자 하고 두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다.
“우선 이디아. 아윈의 이야기를 차분히 끝까지 들어보도록 하죠. 아윈, 상대가 믿어주지 않는다고 매도하는 건 좋지 않아요. 모험가는 어떤 사람이라고 했죠? 우기는 사람이던가요?”
“아니...”
선생의 질문에 아윈은 기세를 약간 누그러뜨렸다.
“모험가는 믿어주지 않는다고, 따르지 않는다고 화내고 우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꿈을 끈기 있게 모두에게 증명해 보이는 게 바로 모험가죠. 아윈은 우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요?”
“아냐! 난 모험가가 될거야!”
“말로는 뭔들 못하겠니.”
이디아가 핀잔을 걸자, 선생은 이디아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이디아양도 마찬가지예요. 존경받는 아버님 아브 폰 페르젠님처럼 마을의 모두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었죠? 아브님은 마을의 그 누가 아무리 허무맹랑한 소리를 해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라는 걸 잊으셨나요? 사소한 의견도 포용하고 수용하는 게 필요한 자세라고 제가 가르치지 않았나요?”
선생의 산들바람처럼 꾸짖는 어조에 이디아도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네.. 라고 답했다.
두 아이의 기세가 모두 수그러들자 선생은 품에서 담요를 꺼내 자리를 깔고는 가방에서 종이봉투를 꺼내들었다.
봉투에선 향긋하고 달달한 냄새가 풍겼다.
“여기 오기 전에 마을의 바바라 아주머니가 아침에 구운 빵을 주셨어요. 자, 다들 앉아서 먹으면서 얘기하죠.”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느라 지친 아윈도, 다급하게 숲으로 찾아온 이디아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두 아이 모두 자리에 앉아 큼직한 버터 빵을 하나씩 집어 들고 덥석덥석 베어 물었다.
두 아이의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선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차분히 아윈의 이야기를 보죠. 먼저 가장 중요한 것부터 들어봅시다. 절벽 아래엔 왜 내려간 거죠? 아윈?”
아윈은 빵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새알 가지러 갔다고 하면 안 믿을 거지?”
“아윈이 하는 말이라면 믿습니다. 하지만, 모험가는 어떻다고 했죠?”
“위험을 동반할 땐,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아윈의 답에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새알에 모험을 한 거라면 실망할겁니다. 아윈.”
아윈은 배시시 웃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번 모험을 위해서 며칠이나 준비했는걸!! 짜잔 사실 이것 때문인데.....”
웃으며 가슴팍의 주머니를 뒤지던 아윈의 안색이 변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더니 황급히 절벽으로 달려가 밑을 내려다보고는 힘없이 자리로 돌아와 이디아의 눈치를 살폈다.
“뭔데...? 왜 날쳐다보는데..?”
“그게... 잃어버렸어... 미안..”
“응? 잃어버린 게 뭔데? 왜 나한테 미안해?”
아윈의 말을 미처 알아듣지 못한 이디아가 되묻자, 아윈은 속상함과 창피함으로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고개를 격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아냐! 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냐! 너하곤 아무 관계없어! 말이 허 헛나온거야!!”
“뭐야? 도대체...?”
갑자기 돌변한 아윈의 태도가 못마땅한 이디아는 흥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선생만이 대충 알겠다는 듯 훈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윈. 잃어버린 게 절벽을 내려간 이유와 관계가 있나요? 뭔지 알려주면 함께 찾아보도록 하죠.”
선생의 말에 아윈은 자신의 모험가수첩을 펼쳐 선생과 이디아에게 보여주었다.
글씨라곤 단 하나도 없는 그림투성이의 메모에 이디아는 현기증을 느꼈지만, 선생은 용케 알아볼 수 있었다.
“설마........... 잃어버린 게 요정의 꽃이었습니까...?”
“그걸 알아볼 수 있어요? 아니지! 요정의 꽃은 뭐에요?”
“요정의 꽃을 설명해드리기 전에 아윈도 이디아양도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시나요?”
선생이 이디아와 아윈 모두에게 묻자, 아윈도 이디아도 서로를 마주 쳐다보고는 질세라 앞다투어 대답했다.
“온 세상에!!”
“마법이 깃들고 있다는 얘기 말이죠?!”
“둘 다 훌륭합니다. 잘 기억하고 있었어요. 이 세계 일랜드의 곳곳엔 마력이 가득하고 특히 바다에는 해류를 타고 마력이 흐르고 있다고 얘기했었죠.”
“그리고 그 마력으로 배들이 떠다닌다고 할머님께서 알려주셨어요!!”
미리 예습을 해온 건지, 잔뜩 흥분한 이디아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배가 저 위를 떠다니는 건 기본이잖아. 선생이 모험할 때 배를 탔다고 얘기했었어.”
“저 위가 아니라 바다겠지!”
“저건 바다가 아니라니까 바보야!!!”
“아윈, 이디아. 둘 다 계속 다투실 건가요? 아니면 제 얘기를 계속 들으실 건가요.”
선생은 사뭇 엄하게 둘을 책망하고선, 헛기침과 함께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자. 저 탁한 바다를 타고 흐르는 마력의 흐름은 일랜드 곳곳을 누비며 순환을 계속하지만, 흐름이 정체되거나 육지를 만나 마력이 묻고 묻어 지속적으로 쌓이는 곳이 있답니다. 그리고 그 마력이 어느 정도 이상 쌓이면 꽃이 되어 피어난다고 하죠. 그것이 바로 전설의 꽃. 요정의 꽃이랍니다. 그리고 이 요정의 꽃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전설이 모험가들 사이에 전해져 오고 있답니다.”
“굉장해요!”
소원을 이뤄주는 전설의 꽃이라는 말에 이디아가 눈을 반짝였다.
“후후 이디아양은 간절한 소원이 있나보군요.”
“그건...”
선생의 말에 이디아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 몸을 꼬다가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저택은 너무 갑갑해! 아버님도 할머님도 어머님도 모두 좋은 분들이지만 언제나 항상! 못하게 하시는 게 너무너무 많아요. 저택을 나가 마을을 나가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아요. 영주도시에도 가보고 싶고, 왕도에도 가보고 싶어요! 세상엔 볼게 많다고, 신기하고 멋진 게 많다고 바로 지금도 바람들이 얘기해주고 있는걸요!!”
이디아의 이야기를 들은 선생은 아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윈은 눈을 감은 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없어. 소원 같은 거.”
선생의 눈썹이 놀라움으로 살짝 치켜 올라갔다.
“아윈은 이루고 싶은 게 있지 않습니까? 모험가가 되어 아버지를 만나고, 진짜 바다를 찾으러 가는 게 소원 아니었나요?”
선생의 말에 아윈은 웃으며 말했다.
“선생도 참. 세상 모든 걸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어린 열세살의 사고뭉치. 호기심 왕성한 아이는 자신의 오랜 꿈을 얘기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 건 목표라고 하는 거야. 난 훌륭한 모험가가 되고 싶고, 진짜 바다를 찾아간 아빠를 만나고 싶어. 그치만 아빠보다 더 훌륭한 모험가가 되어 먼저 바다를 찾고 싶기도 해. 근데 이런 건 다른 누가 이뤄주는 게 아냐. 누가 내 앞에 갖다놓는 것 따위 바라고 싶지 않아. 내가 겪고 내가 보고 싶어.”
“내 소원은 남이 이뤄줄 수 없어. 나만이 이룰 수 있어. 남에게 빌 소원 따위 나에겐 없어.”
소년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선생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강인한 면모를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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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편이라니 미친 속도다.... 뭐하다가 지체됐을까....
이제 좀 빠릿빠릿하게 써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