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병실에 어제 새로 들어온 환자분이 있었다.
이 노인 환자분은 거동도 잘하시고 말씀도 잘 하시고 아주 멀쩡해보였고, 첫날이라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기에
다른 병세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그 환자분은 첫 밤을 맞이하였는데.......
잠을 잘때 코를 심하게 시끄럽게 고는 나는, 병실의 다른 환자분들 숙면을 위해 보통 새벽 1시까지 영화를 보거나 망상을 하며
잠을 늦게 자곤 했는데, 그날도 밤 11시까지 네이버 무료 영화로 받은 [말할 수 없는 비밀] 리마스터 판을 보며,
남녀 주인공들의 염장행각에 질투를 부들부들 떨고 있을 그때였다.
커튼너머 옆자리에 누운 새 환자분이 돌연 시끄럽게 떠드는게 아닌가?!
[추.. 추워!! 오쥼 매려!!!]
거동 잘하시는 분인걸 알기에 속으로 '화장실에 안가시고 뭐하시나' 하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는데.... 이어폰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소리를
고래고래 내기 시작했다.
옆에 누워계시던 간병인 여사님은 눈을 살짝뜨시더니 말하신다.
[총각 아무래도 저분 치매끼가 있으신가벼. 내비두고 자]
[에이 다같이 쓰는데 매너가 없으시네...]
이런 불평 대화를 나누다가 여사님은 다시 코를 골고 주무시고, 그외 다른 병실 환자들도 모두 귀 어두운 노인이기에 코를 골며
잠을 청하는 듯 했다.
그런데 이번엔 옆자리 환자분이 아까보단 많이 작지만 또 중얼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엔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계어를 웅얼웅얼 거리는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떼.. 떼 떼 떼 파 파파 파 회 회회 회
이런 식의 말을 내뱉길래 도대체 뭔가 하고 커튼을 살짝 걷어 옆자리를 보니 웃통을 벗은 노인 환자가 침대에 걸터 앉아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기에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전에 있던 치매끼 있던 노인도 밤에 난리를쳐서 간호사가 와서 침대째로 데려가서 로비에서 재운적이 있기에 그런 조치를 바라고
간호사 긴급호출 버튼을 눌렀다.
[여기 8XX호인데요. 옆 환자분이 이상합니다. 빨리 와주세요.]
나의 호출에 간호사들이 달려왔다. 그때까지도 할아버지는 떼 떼 떼에 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고 계셨다.
달려온 간호사 중 하나가 소스라치는 소리를 낸다.
[혈당 주사 줄이 빠져있었어!! 저혈당 쇼크야!!]
알고보니 이 환자 분 당뇨병을 앓고 계셨고,
자다가 고함을 지른 시간부터 간호사들이 와서 포도당 주사를 놔주기 전까지의 기억이 없다고 하신다.
그날 새벽 환자분 부인이 소식을 듣고 오시고 다음날 아침에 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간호사를 부른걸 아시곤
고맙네, 잘하셨네 하며 감사를 하신다.
그냥 얼마 지나면 조용해지겠거니 하고 무시하고 잤으면 큰일이 났을 거라고....
어제까진 잘 몰랐는데 마이피나 이곳저곳에서 당뇨 얘기를 듣고서야 어제 상황이 꽤나 위험했다는걸 깨달았다.
인생 참....
다행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