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8시경.
재활요양병원이라 대부분 환자들이 잠들고 인적이 드문 시간.
배변활동에 신호가 온 나는, 화장실에 앉아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시선은 스마트폰에 집중한 채, 손만 뻗어 휴지를 더듬었는데, 손 끝에 불길한 감촉이 전해져온다.
덜컹 덜컹 하고 빈 휴지심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보드라운 휴지의 감촉이 아닌 꺼끌꺼끌하고 단단한 휴지심의 감촉이 전해진다.
순간 식은땀이 등줄기를 흐른다.
아 조때따.......
보통 화장실에 앉기전에 확인을 하건만, 이날은 스마트폰의 웹툰이 재밌어서인지 어째서인지 방심을 하고 말았다.
인적이 드문 시간이니 침착하고 옆칸으로 건너가볼까 했지만, 이날따라 뭔가가 꼬인건지 내가 거사를 하려 할 때마다 노인 환자들이 들어와
쪼르륵 소변을 보고 사라진다.
노인환자분들께 말을 걸어 옆칸의 휴지를 달라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대부분 귀가 어두우셔서 듣지 못하고 가버리신다.
큰소리를 쳐서 로비의 간호사를 부르는건 어떨까?
조금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면 로비까지 들릴 것이다.
하지만 두가지 이유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1. 똥싸러와서 휴지가 없어요 를 층 전체에 광고 하고 싶지는 않다. 인사잘하고 예의바르며 재활에 집중하는 건실한 청년에서 한순간에 휴지 없어 쩔쩔매는 똥쟁이로 전락할 순 없었다.
2. 앞서 말했듯이 많은 노인들이 잠든 시간이다. 괜히 사자후를 날렸다가 그들의 잠을 방해하면 앞으로 순탄한 병원생활을 보장하긴 어려웠다.
결국 나는 내 옆 벽면에 달려있는 검은 벨을 고민하며 노려보았다.
[응급벨-위급상황에만 누르세요]
분명 이런 상황에 쓰라고 있는 단추가 아니다.
화장실에 왔다가 낙상을 당하거나 갑자기 현기증을 느껴 비틀거리거나 심정지가 올때 급히 눌러야하는 벨이다.
하지만 이도 저도 못하는 지금 남은 방법은 단 하나.
간호사분이 오면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정중하게 사과해야지 하고 마음을 굳히고
응급벨을 눌렀다.
저 멀리 로비에서 딩동 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과의 멘트를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반응이 없다.
아.. 다들 병동을 돌며 확인하느라 못들었나 싶어 다시 누른다.
사과의 멘트를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여전히 묵묵부답.
누른다.
안온다.
누른다.
안온다.
띵동띵동띵동띵동 띵딩동 띵동 띵동띵동
나는 마치 심정지가 온 환자처럼 여러번 계속 눌렀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는다.
내가 위급환자면 어떡하려고!!!!!!!!!!
이젠 내가 심정지에 걸린 것 같은 기분까지 들려는 찰나, 마지막 한번 누른 벨소리에 비로소 간호사분이 다가왔다.
화장실에 갇힌지 30분만의 일이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옆칸도 휴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