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이하기 전날.
배터리 자가 교체에 실패한 나는 카톡으로 지인들에게 푸념을 했고, 특히 다음날 만날 수 있는 회사 동료들에게 징징이를 시전했다.
징징의 목적은 하나. 혹시라도 T핸들 있으면 빌려달라는 무언의 아우성이었으나, 대부분 그런 공구를 갖고 있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에 고교 선배 과장이 그 도구를 갖고 있어 다음날 아침에 나는 T 핸들을 영접하여 드디어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올랐는데.............
그날 밤. 자신만만하게 목장갑을 끼고 랜턴을 입에 물고 본네트를 들어올린 나는 절망감에 빠져 울먹이고 말았다.
천신만고 끝에 구해온 그 T핸들이... 선배 과장님이 자기차는 잘 갈았다고 해서 안심했던 그 T핸들이.....
볼트 위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작았다!!!
작았다고!!!!
나는 울먹이며 이걸 어떻게든 볼트에 끼워보려 애를 썼으나 볼트를 돌리지도 못하는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
맞지 않는 공구를 끼울 수 있을리 만무했으니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 사라지려는 바로 그 찰나
보다 못한 어머니가 지하실에서 공구세트를 들고와 내 옆에 펼쳐놓았다.
나는 최후의 희망을 걸고 공구세트를 뒤졌으나 그곳에도 T핸들은 없었고, 전동 드릴 또한 그 틈새로 들어가긴 너무나 컸을 뿐더러
구형 전동드릴이라 뚫고 부수기만 되지 심을 갈아 볼트용구를 끼울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절망만 더해갔다.
결국, 깊은 한숨을 쉬고 좌절감에 휩싸인채, 본네트를 닫고 목장갑을 벗으며 '내일 렉카를 불러야하나..' 하고 읊조리던 그 찰나!
서울구치소 쪽에서 날아온 우주의 기운이 번개처럼 정수리에 꽂히며, 설날에도 독방에서 시름하고 계실 그분의 음성이 내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내차를)살려야한다....."
그리고 그러한 목소리의 인도에 따라 공구상자를 다시금 뒤져보자 T핸들은 아니지만
손잡이로 반대방향을 드르륵 돌리면 그만큼 푸는 방향으로 돌려 힘을 줄 수 있는 해체 공구가 있는 것을 발견!(이름이 기억이 안나고 사진도 안찍어서)
배터리 앞의 엔진 필터를 열고 거기에 소켓을 맞추어 아무튼 여차저차 잘 돌려서 배터리를 빼내고
새 배터리를 집어넣고는 쁘라스마이너스를 연결하자마자 차가 푸식 푸식 털털털 하더니 라이트가 켜지는게 아닌가?!
역시 우주의 힘을 집중하면 아니되는일이 없다.
후기
어머니
-그래도 우리 아들이 애인줄 알았는데, 상남자네 결국 그런걸 해내고
나
-ㅎㅎ 그정도야 껌이지
어머니
-장가만 가면 좋겠는데
왜 기승전.... ㅠ.ㅠ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