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군대에 있을때 수첩에 끄적거리며 소재를 망상하곤 했다.
단편적인 것도 있고 꽤 공을 들여 기획한 것도 있어 군대 수첩은 아직도 책장한켠에 소중히 보관되고 있는 물건 중 하나였는데
(파견 근무시 했던 조리 레시피도 있어서 이때 했던 제육볶음과 삼겹찜은 지금도 가장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주 메뉴 중 하나)
여기에 적었던 소재 중 하나를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꺼내게 되었다.
마침 술집 티비에서 [ㅁㅁ생명! 보험의 대혁신 선언!] 이라는 광고를 보고 피식 비웃으며 내가 입을 열은게 시작이었다.
나
-GR하고 자빠졌네 ㅋ 보험의 대혁신 할거면 내가 예전에 말한거 기억나냐?
-레스큐 보험(가제) 이런 정도는 되야지
친구
-뭔데 언제적 얘기냐?
나
-어.. 한 제대하고나서니까
친구
-10년은 넘었네 기억나겠냐
나
-ㅋ
-여튼 광고는 그것도 비슷해.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난기류를 만나서 비행기가 추락하는거지
-어떤 사람은 염주를 굴리며 신에게 기도하고, 누군가는 메뉴얼 보며 산소마스크를 끼고, 누군가는 울고불고 패닉에 빠지고
친구
-그런데?
나
-근데 한 중년신사는 그들을 보고 미소지으면서 팔찌에 찬 [RESCUE] 버튼을 누르고, 잠시 후 비행기를 쫓아온 로봇이
-비행기 벽면을 도려내고 남자를 구해서 사라지는거지
-그리고 문구가 나오는거지. [돈으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직접 구해드립니다.]
친구
-그건 보험사가 망하겠는걸?
나
-왜?
친구
-완전 책임 떠넘기기 좋잖아. 생각해봐.
-추락중인 비행기인데 기장이 베테랑 40년 경력자라 안전착수 할 수 있었어.
-설리 허드슨강 기적 영화 알지?
나
-어.....
친구
-그런데 정체불명 메카닉이 와서 비행기에 구멍을 냈어? 400명 전원 사망?
-이건 누구 책임? 레스큐 보험책임이라고 항공사에서 거품물기 딱좋지.
-만약에 해상사고를 구조한다고 쳐봐
-레스큐 보험이라는 놈들이 와서 가라앉는 배에 구멍내고 고객만 구해갔어.
-그럼 어떤꼴 날 것 같냐?
-막말로 유병언이 안죽고 티비나와서 다이빙벨 올때까지 기다리면 됐는데 레스큐 때문에 다죽었다고 하는거 본다니까?
나
-?!?!?!?!
-야 근데 너 이거 그때도 까긴 했거든? 그때랑 논조가 바뀌었다?
친구
-어떻게?
나
-그때는 직접 구하는 보험이 보험으로써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했었는데
-이제는 타 기업의 책임떠넘기기로 당하는걸로 바뀌었네 ㅋ
친구
-나이먹으면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이거 아니겠냐.
-여튼 그쪽 회사는 고객만 구하느니 차라리 비행기 전체를 구하는게 싸게 먹힐거다 이거지.
나
-원래 주인공 부인이 사고로 죽은 트라우마 때문에 주인공이 회사 방침과 다르게 무보험자도 구해서
-회사와 갈등을 겪는게 작품의 주제로 생각했는데...
친구
-그냥 차라리 니가 아까 얘기한 [24시 성생활용품 편의점]이나 짜는게 어때? 그게 잘팔릴 것 같은데 ㅋㅋ
*24시 성생활용품 편의점.
-친구랑 술먹으려고 거리를 걷다가 간판 중 [24시 성생활용품 편의점] 이라는 간판을 보고 삘받아서 짠 성인웹툰 소재.
-알바 구하기 힘든 시대. 파릇파릇한 대학 새내기 청년인 주인공은 시급 조건이 아주 좋은 알바를 찾아 오게 되었으니
-[24시 성생활용품 편의점] 이었다.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 같은 매혹적인 미녀 점장님과 엉겹결에 같이 알바를 하게 된 풋풋한 과동기 아가씨와 함께
-남들에겐 설명하기 쑥쓰러운 물건들을 접하고 판매하며, 이를 사가는 고객들의 사연과 트러블이 나오는 성인웹툰
을 생각해보았지만(과동기 아가씨에게 흑심을 품은 나쁜선배가 스토킹을 하다가 과동기 아가씨 알바를 알아내고 협박을 하는걸 해결한다던지,
부부관계가 안풀리는 남편이 물건을 사가며 과거를 이야기한다던지 등등)
문제는 [남들에게 설명하기 쑥쓰러운 물건들]에 대해 나부터가 모른다.
아마 안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