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하고 돌아와보니 여조카(10세) 거실에 앉아 학습지를 풀고 있었다.
아마 누나 퇴근이 늦어져 데려가는 시간이 늦어지게 되서 누나 올때까지 풀고 있는 모양이었다.
몇페이지 남았냐고 묻자 4페이지 남았다는데, 티비를 틀고 풀고 있으니 진도가 나갈리가 있나
옷갈아입고 씻고 나와보니 두문제도 안풀고 있길래 짐짓 엄하게 말하며 티비를 끄라고 했다.
학습지를 다 못풀면 혼나는건 결국 이녀석이니까
다 자기를 위해 이야기해주는건데 조카녀석은 입을 삐쭉 내밀며 불만인 표정이었다.
티비를 볼때 만큼은 호통을쳐도 못알아듣는 경이적인 집중력을 보이는 녀석이지만, 문제를 풀때 만큼은
그런 초능력은 발휘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할일이 생겼다며 자기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내일 일정을 물어보지를 않나,
나랑 어머니가 하는 대화에 참견을 하지를 않나,
계속해서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에 나는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너 자꾸 집중안하면 방에 들어가서 문제풀라고 할거야?
-지금 5분 지났는데 몇문제 풀었어. 한페이지도 못넘어갔잖아.
-삼촌 어렸을때라면 이거 5분안에 다 풀어버리고 실컷 놀았을거야.
그러자 어머니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어머니
-웃기고 자빠졌네 니가 뭘 집중을 잘했다고 너도 똑같았어 이놈아
나
-엄마!!
조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웃지마!
-임마 삼촌은 말야! 공부 엄청 잘했어!!
그러자 요 조막만한 녀석이 낄낄거리며 어머니를 쳐다보는게 아닌가?
조카
-할머니. 말해주시지요.(진짜 10살짜리가 이렇게 말함)
어머니
-아이고 ㅋㅋㅋㅋ
나
-얘 말하는거보게 ㅋㅋㅋ
조카
-빨리 말해주세요 ㅎㅎㅎㅎㅎㅎ
어머니
-삼촌은 공부 잘했지
나
-거봐
조카
-말도안돼!!
어머니는 내편이란다 짜슥아
어머니
-컴퓨터 사기 전까지는
나
-엄마!!
조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머니
-삼촌이 어렸을땐 책을 진짜 엄청 많이 읽었어
-할머니가 책 사오면 그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으니까
조카
-근데 이젠 책 안봐요?
어머니
-안보고 게임만 하잖니
나
-어흠. 그건 말이지. 삼촌은 이미 어렸을때 세상의 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더이상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단다.
조카
-요즘 새 책이 나오잖아! 삼촌이 읽은건 옛날 책이고!
-새 지식을 접하지 않잖아!
나
-요즘 나오는 새로운 책들도 말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옛날 고전의 재탕이란다.
-옛날에 완성된 사상과 이론을 가지고 새 이론을 만들고 그런 것이기 때문에
-결국 옛 고전만 알면 다 되는 것이지.
조카
-엉터리 같아
나
-니가 책을 읽지 않아서 모르는거야
어머니
-엄멈이란다. 말만 잘해 하여간
나
-어무니. 그때 읽은게 밑바탕이 된거에요.
-내가 고등학교때 책 안읽고도 전국 시문학대회랑 소설대회 나간거 잊었어요?
어머니
-본선까진 나갔지 그래.
-거기서 떨어졌지
조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