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아주 우연하게 일어났다.
회사를 옮기신 전 대리님이 전화를 걸어 술한턱을 쏘신다는 얘기를 받고 동료 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과장님이 하신 말씀이 발단이 되었다.
"ㅁㅁ씨. 나 현금없는데 돈 좀 빌려줘. 대리비가 없거든. 내일 돌려줄게."
큰액수도 아니고 문제가 있는 부분도 없으니 당연히 드리겠노라 말씀드리고 잔액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 뱅킹에 로그인을 했다.
그리고 카드 결제일도 얼마 안남아 카드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 카드사에도 로그인을 했는데 아뿔싸, 금액이 펑크가 날 위기였던 것이다.
분명, 며칠전까지만해도 통장에 여윳돈이 있을만한 계산이었고 카드값도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고 계산이 끝났는데
카드값이 갑자기 불어있었다. 아마 최근에 등록한 헬스장과 그외 교통비가 추가된 것을 계산에 두지 못했던 것이리라.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다.
바로 명절에 지출될 금액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명절에 부모님께 드려야할 돈을 생각해보자 넉넉했던 통장의 잔액은 순식간에 -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봐도 돈이 생기지 않았다.
과소비를 하지도 않았고, 나름 잘아꼈는데 겨우 한두가지 돌발상황에 무너져버리는 빈약한 통장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결국 고민을 하다가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에게 누나는 둘이 있었는데 각각 7살 5살 차이가 나는 누나들이었다.
그중 5살위인 둘째누나는 우리집 이층에 살고 있어서 매일 얼굴을 보지만 큰누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전화한 누나는 바로 평소에 연락을 못하는 그 큰누나였다.
작은누나는 매일 얼굴을 보는 만큼 지갑사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일 살림이 넉넉하고 돈을 많이 버는 큰누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담배 두대를 태우고 나서야 전화를 했다.
평소엔 연락조차 하지 않는데.. 막상 아쉬울때가 되니 누나를 찾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또 찾는 문제가 돈이라는 부분이 너무나 화가났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받는 누나는 조금 피곤한 목소리였지만 반갑게 맞아주었다.
형식적인 안부인사를 전하고, 누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 라는 소리를 하고 설에 보겠다라는 얘기를 하고 더 할말이 없어지자 누나가 용건을 말하란다.
그제야 결국 숨길게 없어진 나는 누나에게 한숨을 쉬며 전화한 목적을 얘기했다.
'그냥 돈이 없어. 돈좀 빌려줘. 하면 될 것을 왜 안부인사나 하고 난리였나... 이 가식적인 녀석.'
'돈얘기 말고는 누나를 찾지도 않지'
등등의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자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과 자존심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어우러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계좌를 받아적더니 바로 돈을 보내주었는데, 내가 부른 액수의 두배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왜 두배를 주었냐며 다음 월급날에 꼭 갚겠다고 하자 누나는
"설날 용돈이야. 안갚아도 돼" 라고 연락을 주는게 아닌가
그래서 다시 문자로 누나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갚겠다고 하였는데
다음날 누나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기운내. 그깟 돈이 뭐라고 기죽어.
지금은 비록 작은 월급쟁이지만 곧 능력 인정받는 전문가가 될거야 ^^]
라는 내용이었다.
고마워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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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엄마나 누나나 다 나는 그 손바닥 안에 있는지도..........
내색을 안해도 자존심 상해하고 있는지 분해하고 있는지 귀신같이 알고있으니..
얼굴 안본지 꽤됐는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