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도 화창하고 사촌동생 결혼식도 갔다오면서 친척들도 만나고, 또 오랜만에 양복을 입어서 옛날 생각이 나는 고로 또다시 재미없는 옛날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이번에 생각나는 이야기는 내가 전경대 생활 중 파견나갔던 시절의 또 다른 이야기이다.
장소는 아마 충청도 태안쪽이었던 걸로 생각된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은 안됐지만 8년정도 전의 이야기이고 글쓴이가 워낙 머리가 나쁘니 지리 정보가 불명확한건 어쩔 수 없다)
당시 계절은 가을 무렵이었다.
그때 내가 있던 지구대는 좀 특이한 성격의 시골 지구대였다.
앞서 실화 1,2를 겪은 지구대가 어느정도 시내에 위치했던 반면, 이 지구대는 그야말로 시골.
시골중의 시골로 근처에 슈퍼 마켓과 식당 몇개를 제외하고는 참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었다.
그래서 나와 같이 갔던 고참은 이것저것 사먹거나 구경거리가 없어서 섭섭해 하는 대신, 시골이라 딱지와 음주단속 근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점을 위안삼기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런 시골 지구대에는 다른 지구대에서 겪지 못한 특별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무기고에 민간 사냥꾼들의 사냥총들을 십수 자루를 보관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국내 도검 및 무기 취급법상 총포는 자기가 사냥하고 싶은 지구대에 보관하고 사냥철이 되면 지구대에 와서 인증을 받고 신분증을 맡기고 총을 찾아가 사냥을 하는 것이었다.
때는 가을이고 사냥 허가철이었는지 조용하던 시골마을에 각지에서 몰려온 지프차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고, 매일매일 사냥꾼들이 아침마다 인사를 하고 총을 찾아가는 신기한 광경이 이어졌다.
내가 주로 하던 일은 직원이 신분증을 받고 총번을 부르면 지구대 무기고에서 엽총을 싸고 있는 포장가방의 라벨을 뒤져가며 총번을 보고 포수에게 총을 건내는 일이었다.
그리곤 대충 '많이 잡으세요' 하는 식으로 웃으며 인사를 하곤 했고, 저녁이 되면 포수들이 돌아와 신분증을 받고 총을 다시 맡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멀리서 여가를 즐기러 온 포수들에게 총을 나누어주고 나서 정상적인 일과를 하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하루가 흘러갈 것만 같은 그런 날이었는데,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다들 평소처럼 와서 총을 반납하는데, 신분증 몇개가 남는 것이었다.
아직 총을 반납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었는데............ 조금더 시간이 지나자 서에서 순찰차가 아닌 승합차가 우리 지구대를 찾아왔다.
보통 전경들은 형기마(형사기동대차)라고 부르는 차량인데, 말 그대로 형사들이 출동할때 쓰는 그런 차량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승합차 뿐만 아니라 엠뷸런스도 오고 조용한 시골 지구대는 갑자기 십수명의 사람들이 들이닥쳐 요란스런 분위기가 되었는데, 형사 하나가 나에게 와서 남은 신분증들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신분증을 보여주었더니 그중 하나를 보면서 혀를 차면서 하는 말이 '이사람 맞네. 이사람이 죽었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정을 파악해보니, 나에게 총을 받아간 아저씨 중 하나가 동료의 오인 사격으로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동료는 '수풀 속에서 움직이길래 고라니나 멧돼지라고 생각했다'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하는데, 형사들이 보는 서류 비슷한걸 뒤에서 흘끔 보니 A4용지에 사람의 형상이 있고 목과 얼굴, 어깨의 범위에 빨간점들이 무수히 찍혀있었다.
저게 뭐냐고 지구대 경장님께 묻자, 포수들이 쓰는 총은 산탄이기 때문에 맞으면 저렇게 퍼진다는 것이었다.
즉, 그 빨간점이 전부 총상 부위란다.
우리 지구대에서는 서류작업만 벌어지고 쐈다는 포수도 죽었다는 포수도 보지 못했지만, 자주 보며 인사를 하던 사람이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에 뒷맛이 대단히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요즘도 인터넷 뉴스에 가끔 포수가 군인을 오인사격, 동료를 오인 사격 하는 그런 뉴스가 나오면 그때 생각이 나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