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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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독서 일기. [키보드워리어전투일지] (0) 2011/06/08 PM 08:47






※ 키보드워리어전투일지, 한윤형. p.3 ~ p.207 (다 읽음)


며칠 전 선배 부부네를 급습했는데, 오리고기쌈을 반주 삼아 와인을 홀짝이며(;;) 담소하던 중 여선배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독서가 중 책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하나는 ‘김훈’이요, 또 다른 하나는 고양이 빌딩으로 유명한 일본의 독서가 ‘다치바나 다카시’이다. 우선 김훈 스타일은 ‘책은 정보를 얻기 위한 도구’라는 이원론적 자세를 말하는데, ‘책의 겉모양 보다는 책의 정보 자체가 중요하며 정보를 습득한 이상 형태인 책은 크게 의미가 없다.’라는 식이다. 즉, 읽고 정보 수납 후 유용한 정보는 스크랩 나머지는 효율적 정리(폐기 및 중고매매)수순을 밟는 독서가가 이 부류인 것이다. 두 번째로 ‘다치바나 다카시’ 스타일은 ‘책과 내용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책의 외형 또한 책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이기에 책을 사랑한다면 내용을 포함한 책 자체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일원론적 태도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책을 다람쥐가 알밤 모으듯이 책을 모은다. 책을 구매할 때 책 디자인도 고려하고, 특히나 제본에도 신경을 쓴다. 책의 내구성에 대해서도 신경 쓰기 때문이다. 문제는 후자의 경우는 자칫 독서에 게을러지면, 책을 인테리어 구성물로 전락시킬 요소가 다분하다.


나는 명백한 후자이다. 책 구매할 때 제본 여부 확인은 필수이며, 같은 책이라 할지라도 항상 양장본 구매를 염두 해두는 편이다. 이런 나의 구매기준을 보고 여자친구는 일종의 ‘허세질’이라 폄훼하지만, 나도 나름 변명할 게 있는 것이 결코 읽어보지 않고 소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물론 아직까지는;;). 특히나 몇몇 책들은 특별판으로 동일한 가격에 ‘양장’으로 나오기도 하고(교보 30주년 기념본들 ex: ‘정의란 무엇인가’) 또 어떤 책들은 양장과 일반판과의 질의 차이가 너무 커서(ex: 칼세이건 ‘코스모스’, 200% 양장으로 구입요망) 부득이하게 구매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남자가 길가다 여자를 훑어보더라도 엄연히 눈높이가 있듯, 소소한 책쟁이에게도 어엿한 기준은 있는 법이다.


여하튼 내가 독서 일기 쓰다 말고 이런 이야기를 서설에 주저리 쓰는 이유는, 요번 ‘키보드워리어전투일지’는 그 외형에 실망이 이만저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작 200페이지짜리 책이 거금 ‘9000’원이나 한다는 사실은 내 선택에 대한 회환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주저리 널기엔 미안하긴 하지만, 책의 겉모습은 엉기설기 엮은 대학교재 ‘제본’의 인상이었다. 누구든 이 책을 보면, 온라인 구매의 폐해라고 여자 친구에게 울분 토하듯 징징거린 내 행동에 수긍할 수 있을 거라 본다(그래도 구입을 철회하지 않은 것은 젊은 진보 지식인에 대한 '응원'의 의미이다).


반면에, 책의 저자와 내용을 주목한다면 이와 같은 어설픈 책 외형을 이해할 만도 했다. 저번 프리뷰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의 저자는 ‘83년생’으로 나와 같은 ‘88만원세대’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세대이다(올해는 어찌되었는지 모르겠는데, 2010년까지 그의 신분은 ‘대학생’이다). 저자는, 불만도 많고 상대적 피해의식도 많고, 경직된 한국사회를 답답해하고 애달픈 열정으로 구호한번 질러보지만, 막상 본인은 아직도 ‘독립’하지 못하고 사회의 경계층에 머물고 있는 어쭙잖은 20대들의 대표적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공통분모가 동질감을 느끼기에 차고 넘칠 만큼 충분하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쓰고 사회를 비판하는 책을 낸다는 것은 20대 중에서도 ‘난’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같은 20대에서 ‘난’사람이 쓴 책. 강준만과 진중권이 별세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윤형은 2층 다락에서 창밖으로 별자리를 알려주는 또래 녀석이 아닐까 싶다.


항상 서설만 긴데, 이 책은 전통적인 노무현 · 유시민지지자들이 읽기에는 거북한 책이다. 김대중 정권 후반기 때부터 이명박 집권까지 벌어진 진보 지식인들의 분열에 대한 책임을 상당한 분량으로 ‘참여 정부’에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민노’계열과 참여정부간의 진보 세력 다툼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내가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그들의 ‘다툼’에 이해되지 않던 몇 가지 부분을 알 수 있었다. ‘안티 조선 세력’의 분열 이유와 이른바 ‘지식인 분열’이라고 일컬어진 ‘강준만과 진중권’의 2002년 서울 시장 후보 논평(강준만이 오명을 쓰면서까지 보호하려 했던 김민석은 이후로 정몽준에게 붙어 ‘김민새’라는 별칭을 얻는다)에 대한 납득할만한 ‘사연’을 알았고, 또한 ‘이라크 파병’과 ‘김선일씨 피살’에 대한 여러 시각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조금 아쉬었던 것은, 위에 거론한 내용 말고는 ‘그리고 그 이상은 없었다.’이긴 한데, 200p짜리 간략한 책에서 더 이상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이 책의 정체성은 ‘사회평론’이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깝다. 새천년 10년의 격랑에서 돗대 하나 잡고 휘둘린, 난파한 후 폭풍에서의 태도를 검토하는 잔잔한 반성문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민주화’라는 패러다임을 벗어난 이후의 진보세력의 방향성, 그것이 바로 ‘생존’과 결부되는 아이러니한 세태 속에서 진보가 어떻게 집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져 있다. 요즘 담론이 되고 있는 ‘반값 등록금’의 짜임새는 이 책에서 저자가 담담하게 거론한 한국 진보의 ‘반성’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진보의 ‘소통’에 대한 저자의 ‘자괴’가 눈에 띈다. 옮겨 본다.

“내 주변의 20대 좌파들은, 정말로 사교성이 없다. 사교성이 없어서 좌파가 된 건지 좌파질을 하다보니까 사교성이 사라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올해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그러한 조류는 운동권 바깥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는 거다. 내가 그들에게 발견했던 것은 일종의 우울증이었다. 동년배에게 공통의 화제를 찾거나 지적 자극을 받는 일을 포기한 그들은 각자의 환경에서 원자화되어 그로부터 파생되는 우울함의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고 있었다.”

“누구도 20대를 대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20대들의 세대론적 특징이 있다면 그들 스스로도 분열되어 있다는 것 정도다. 나는 냉소주의적 주체의 언어로 술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정식화했다. 386세대들은 뭔가 자기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공통된 헛소리를 지껄인다. 하지만 우리 20대들은 각자의 헛소리를 지껄인다. 우리들도 서로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20대의 이런 냉소가 어떻게 학습되어왔는지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반드시 해야할 시대적 과제라 본다. 특히 보수쪽에서는 이를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진취적 독립'을 요구하는데, 나로선 먹고 산다고 해서 인생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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