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제목에 낚이신 분들은 본 게시물 하단에 위 작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Page down go go~~.
※ 한국전쟁, 박태균. p.4 ~ p.407. (완독)
상콤한 6월의 독서 계획을 확 비틀어 놓은 문제의 책이다. ‘젊은 세대들이 6.25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가카의 똥꼬 깊숙이 파고드는 충격의 충고에 넙쭉 감읍하여 구입한 책인데, 그래서 간만에 기대보다는 의무감으로 봤다. 결론은 무척 볼만하다. 프롤로그부터 꽤 마음에 들었다. ‘이데올로기 편견을 걷어낸 이름. 한국전쟁’이란 제목은,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사이의 체제경쟁으로 반세기나 경직된 해석의 해빙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반면에, 반어적으로, 저자가 ‘이데올로기의 딱지뗌’을 전제하는 행위 자체가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실존적 자기모순의 반증이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전쟁을 ‘전쟁사’로 기술하지 못하는 현재진행형의 전쟁. 앞으로도 당분간은 ‘객관’의 이름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정체성 전쟁’. 그것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사실 이런 근현대사 기술서 같은 경우에는, 독서 일기의 쓰기 방향성 측면에서 어려운 부분이 많다. 원래 애당초 생각한 독서 일기의 작성 방법은 ‘쉽고 가볍게, 혼잣말하는 옹알이식 기술’인데, 역사서 같은 경우는 대개 ‘현재’로 자리매김 되기 때문에 ‘나’의 해석이 안 들어 갈수가 없다. ‘나해석’이 들어간다면 편향과 무게가 부가됨은 당연하며, 이렇게 되면 쓰기도 힘들고 읽는 독자도 수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하여야 할 부분이, 발췌와 편집의 문제이다. 중립성을 논한다면 저자의 기술보다 오히려 참고문헌의 선정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데, 여기 또한 ‘시각’이 빠질 수가 없는 것이다. 뭘 하든 ‘중립성’이라는 건 그리 말랑한 문제는 아니다.
간단한 독서 일기의 방향성에 이리 미련하게 골몰하고 소개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점이 ‘한국전쟁’의 저자의 고민에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진보적 · 보수적 해석자 모두의 논박을 피하기 위해 ‘원전(原典)의 직용’을 돌파구로 삼았다. 즉, 사건에 대한 이차적 기술을 하기 전, 한국전쟁 당시 각종 문서를 우선적으로 원용함으로서 양 쪽의 돌팔매질을 용이하게 피해갈 수 있는 집필 방식을 취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본다.
※ 자료 43. 제3차 유엔 총회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안 (1948. 12. 12)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총선거와 감시협의를 실시할 수 있었던 남한지역에서 효과적으로 통제 및 사법권을 보유한 합법정부가 수립되었으며, 이 정부는 선거가 가능한 한반도 내에서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승인한다.(중략)
7개국 한국임시위원단은 한국 인민의 자유로 표현된 의사에 기초하여 장차의 대의 정부 잘전에 유용한 감시와 협의를 수행할 것이며, 한국 전역에서 여행, 협의 및 가시의 권한이 부여 될 것이다.
(영문 원전 수록)
출처: Doument 42. Department of states, United States Policy Regarding KOREA 1834~1950. 아시아문화연구소 엮음. <미국의 대한 정책 1834~1950>, 한림대학교 출판부. 152쪽.
잠시 설명을 붙인다면, 위의 유엔군 정부 승인안은 그 파급력이 어마하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에 상충되기 때문이다. 즉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을 동일한 정치체제로 인정하지 않으며 북한의 영토 또한 미수복 지역으로 규정하는데 반해, 유엔의 합의문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자체가 “선거가 가능한 한반도 내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규정하기에 남한 정부는 38선 이남 총선거가 실시된 지역에서만 영향력을 미치며 통치 범위가 한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 북한 모두 국제법상 수립된 ‘합법적 정부’라는 결론이다. 이와 같은 합의문을 바탕으로 남북한유엔동시가입이 1991년에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인 역사교육을 받아온 평범한 국민이라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데, 실상은 그렇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여담으로, ‘국제법상 북한체제 인정의 당위성’.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에 이 점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신 분이 고 리영희 선생님이신데, 그 때문에 ‘빨갱이 탈’을 톡톡히 쓰셨다. 학자적 양심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의 폐해임이 분명하다.
여하튼, 논쟁점이 분명한 부분의 원전 표기는 이 책의 최고의 미덕이다. 내용은 둘째치고서라도 방법상의 기술법이 오히려 일반적인 독자에게 해석의 다양성을 보장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약점도 있는데, 흔히 ‘밀덕’이라 불리는 밀리터리 마니아층에게 이 책은 그리 좋은 책이 될 수 없다. 이 책은 ‘~육군전사’처럼 전쟁의 발단과 전력의 비교, 전황의 이해, 전투 해설, 전쟁 지도 등의 군사 고증 등의 ‘장면의 단편’을 소개하는 측면보다, 전쟁의 역사적 배경, 발단 기원론, 발단 시기의 필연성 고찰, 전쟁 전개에서의 양측 간의 오판, ‘진격전’에서 ‘고지전’으로의 전환 계기, 그리고 후방 민중들의 피폐상 등을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비유하자면, 마치 빙하와 마찬가지로 수면 위 ‘결과로서의 전쟁’을 관찰한다기보다 수면 밑의 사(史)적 배경에 대해 내밀하게 고찰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줄 요약하자면, ‘전사(戰史)’보다 ‘역사(歷史)’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지극히 바람직한 도서이다.
읽다 흥미로웠던 부분을 요약한다.
※ 이승만제거작전 p.282~292. (p.284 자료52: 미 합동참모본부가 동경 극동군 사령관에게 보낸 전문 수록)
- 이른바 에버레디작전(Plan Everready)으로 ‘항상 준비되어야 할 계획’이라는 뜻이다. 한국전쟁 도중 국민방위군 사건과 거창양민학살사건 등과 같은 정규군 외의 민간인 학살에 이승만 정권이 연류됨에 따라 미군과 함께 전쟁에 참여한 국가들의 대사관과 UNCURK에 참여한 각국 대표단의 항의가 주한미국 대사관, 유엔군 사령부, 워싱턴에까지 쏟아졌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북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자국의 귀중한 젊은이의 생명을 희생하며 까지 한국을 돕고 있는데, 정작 한국 정부는 독재체제로 독주를 시작하니 이들로서는 참전의 명분이 없어지는 셈인 것이다.
미국은 사태해결을 위해 이승만을 만나 여러 형태로 ‘협박’을 가했다. 한국 국회의원들의 조속한 석방과 헌법 절차에 따른 국정운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만약 그러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유엔군이 철수할 수도 있다고 했으나, 이승만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는 이데올로기 전쟁 중인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를 버릴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승만의 태도를 가리켜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라 일컬었다. 이런 와중에서 미국은 내정간섭을 할 계획을 짰는데, 그 형태는 유엔군 사령부가 배후에서 지위하는 한국군에 의한 쿠데타가 되어야 함을 원칙으로 했다. 이 계획에는 이종찬 참모총장과 이용문 장군, 그리고 박정희를 비롯한 일부 영관급 장교들이 개입되어 있었다.
(5·16 군사쿠데타 계획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5·16이 박정희의 독단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최소한 간접적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추정. 단 현재까지 밝혀진 자료로는 5·16 군사쿠데타의 미국 조종에 대한 증거는 없다.)
※ 기네스 북에 오른 유엔군의 최대 참전 p.386
- 한국전쟁에 투입된 유엔군의 최다국 참전은, 그 명분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자유진형의 통합적 결단’이라 치장되지만, 실제로는 1950년 7월 30일 미국이 유엔군에 협조하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는 ‘마셜 플랜 원조’를 중지할 것이라 결정 · 선언한 배경이 한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