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책 읽는 기간을 적지 않았습니다. 굳이 그걸 적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기록할 필요성이 최근 보였습니다. 왜냐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는 건 농담이죠. ㅋㅋ. 단지 어느 정도 집중해서 보았냐는 걸 스스로가 알고 싶어서입니다. 물론, 책을 빨리 읽는다는 게 집중해서 본다는 것과 등치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해도의 문제를 접어둔다면, 띄엄띄엄 보는 연속극보다 한편에 끝나는 영화가 더 기억에 남는다는 일반론에 기대어 대충 그렇다는 말이지요.
그런 의미에 10월의 책들은 ‘강렬’한 동기를 발휘했습니다. 10월 6일에 배송 받은 두 책을 10월 13일인 오늘 다 읽었습니다. 두 권 합쳐서 약 700p.정도의 분량인데 제 스스로도 상당히 빠르게 읽었다고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동기에서는 좀 다른 게, 하나는 자의에 의해, 또 다른 하나는 타의라기보다는 등 떠밀렸다고나 할까요? 전자는 김어준 총수가 쓴, ‘닥치고 정치’이고 후자는 천제물리학자 존 베로의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 가없고 끝없고 영원한 것들에 관한 짧은 기록’입니다. 이유는, ‘닥치고 정치’는 책 자체가 ‘흥미 돋아서’이고,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는 시간 지나면 ‘잊어 먹을까봐’입니다. 그런 뜻에서 저번 독서 일기의 추신을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독서 일기 대상은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가 되겠습니다. 잊어먹기 전에 써야 되겠다는 불안감이 급습하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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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존 베로, 해나무, 2011.
독서 일기를 쓰다 요번처럼 막힌 적은 오랜만이네요. 보통 일기라는 생각에 크게 부담 갖지 않고 죽죽 쳐나가는 타입이거든요. 그런데 요번엔 참 막막했습니다. ‘무한’이라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어떻게 소개할까 싶어서요. 독서 일기 사상 처음으로 존대어로 쓰는 이유가 이와 같은 ‘자신 없음’의 발로입니다. 제가 막연한 걸 ‘안다.’라고 쓸 정도로 제 낯짝은 그리 두껍지 않거든요. 흠흠. 물론 책에서는 참 잘되어 있습니다. 저 같은 초보자들도 나름 이해가 가니까요. 논리적 구조가 나오면 거의 그림으로 이미지화가 되어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칭찬할 만한 장점입니다. 글에 대한 예시가 사실 나열로 구성되었던 ‘화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비교하면 글에 맞는 직관적 구성은 초보자를 위한 충분한 배려라 봅니다.
저는 이 책에 대한 인상을 ‘사변적이라는 수식어가 오해와 같이 들어맞는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변적이라는 말은, ‘경험에 의하지 않고 순수한 이성에 의하여 인식하고 설명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다시 말해 구체적 경험과 철저히 유리된 추상과 논리의 머릿속 범주라는 뜻입니다. 일반인인 저로서는 보기에 참 난감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사물 하나도 글로 쓰기 어려운데, 그 설명의 대상이 보고 듣지도 못한 ‘무한·Infinite’라니요. 주위 몇에게 책의 내용을 대강 말해주고 감상을 물으니,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무한’은 그만큼 낯선 개념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오해와 같이 들어맞습니다. 일종의 선입관이죠. 사실 이 책은 ‘막연’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일상의 주제가 아닌 그 만큼 적확히 설명되어 있다고 봐야 됩니다. 언젠가 제가 ‘교양서의 첫째 단원은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라고 쓴 적이 있는데요. 이 책의 저자 또한 무척 고민했나 봅니다. 저자는 ‘무한’에 대한 연구는 ‘불멸’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갈구이고 곧 ‘신’에 대한 의문이라고 풀이합니다. 즉, 우리는 ‘무한’이란 개념에 무척 친숙한데, 단지 ‘신’이라는 탈을 쓴 모습만 바라보기에 쉽게 인지는 못한다는 거지요. 나름 공감이 갑니다.
제가 가끔 ‘개론이냐, 각론이냐’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책은 어디까지나 개론에 해당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다양한 무한에 대해서 소개와 설명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무한’이라는 오묘한 개념을, 신학으로, 철학으로, 수학으로, 물리학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선사합니다. 단, 저자가 천체 물리학자라서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각 단락마다 흥미로운 역사적 일화와 인물들의 재미난 발언도 예시되어 있어 간혹 웃음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이게 저자 본인의 의도인지 아니면 편집인의 의도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적절한 문구임은 분명합니다.
일명 제논의 역설이라 불리는 ‘유한한 무한’에 대한 이야기는 절로 흥미 돋게 만듭니다. ‘유한한 무한’이라니 말 그대로 역설적이죠?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눈앞에 폭이 좁은 100m의 길이를 가진 다리 하나 떠올려보세요. 그 위에 사람이 한명 있습니다. 굳이 다리가 아니더라도 ‘길이’가 있는 거면 다 괜찮습니다. 주어진 문장은 하나입니다. ‘다리 위에 있는 사람은 1초당 남은 거리의 반만큼만 이동할 수 있다.’ 처음 1초당 이 사람은 다리의 시작에서 절반(50m)까지 움직이겠지요. 다음 1초는 남은 절반 (25m)를 움직입니다. 또 그 다음 1초에는 절반은 12.5m를, 그 다음은 6.25m, 3.125m, 1.5625m…… 이렇게 무한대의 시간이 흘러도 사람은 결국 초 단위로 반절이 남아 다리 끝에 다다르지 못하게 됩니다. 100m라는 유한한 길이가 무한으로 나누어지는 거지요. 다른 역설로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도 있습니다만, 사실 억지지요.
그러나 이와 같은 무한의 역설은 ‘애매모호’한 사안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무한에 대한 정의는 그 당시 세계관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제공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주가 유한하다고 한 이유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도형이든 중심이 있다는 것은, 중심을 지정할 수 있는 일정한 경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말과 일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면 우주는 유한한 거지요. 물론 나중에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중심이 아니라 우주의 미아 중 하나다.’라며 뒤집기 전까지요. 그리고 ‘태양을 우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가? 2000년 가까이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고 믿어 왔는데 틀렸지 않는가?’ 등의 의구심도 자아냈습니다.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보면 지금은 익숙한 ‘패러다임’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패러다임이 다르면 동일한 현상이라도 달리 보고 엇갈려 해석하지요. 역사적으로 ‘무한’은 이런 패러다임 변화의 원동이 되곤 했습니다.
이 책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무한’이라는 관념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분야별로 조명합니다. 그리고 신학부터 철학, 수학, 물리학 나아가 앞으로 상대적으로 무한할 수 있는 인간의 삶까지 조망합니다. (중세시대 평균 수명인 35세에 비하면 현재의 1980년생의 기대 수명이 120세이니 무한까지는 아니더라도 까마득하지요.) 결국 무한은 인간의 삶 속에서 상상하고 정교화 시킬 수 있는 유한한 도구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옮긴이는 무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 이 근원적이고 역설적인 얽힘을 부르는 이름이 무한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무한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멀리 나아갈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한다. 왜냐하면 세계와 언어의 얽힘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자리가 바로 우리, 생각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무한에 대한 탐구는 나약하고 불안한, 잣대 없는 우리 존재에 대한 탐구인 셈입니다.
마지막 딴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소설과 교양서가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야 모두 일반인들이 굉장히 모호하게 여기고 있었던 부분을 잡아내어 명료하게 보여주는 거죠. 소설이라면 감성의 자극이겠고, 교양서라면 이성에 대한 자극이겠죠. 가끔 이런 골 때리는 교양서를 읽는 이유가 바로 그렇습니다. 사람은 본디 언어로 개념을 주고받는데 이런 ‘특이’한 개념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책들은 새로운 감동이기도 합니다. ‘아! 요 사람은 이렇게도 생각하는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거지요. 요번 ‘무한에 관한 안내서’는 저에게끔 많은 공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난해한 부분도 많고 이해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 여백을 저는 저만의 얼토당토안한 망상으로 채운 셈이지요. 읽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Ps. 결국 요번 달은 도서 구입에 추경 예산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이주나 남았는데, 읽을 거리가 떨어져 버려서... 돈 일이만원이 뭐가 무리냐... 라고 하시겠지만 저축을 한도까지 넣는 저에게는 왕창 무리입니다. ㅠ.ㅠ 여튼 오면 프리뷰 써 볼게요~. 닥치고 정치는 다음 번에...(한번 더 읽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 책이 왔네요. 추가 구입도서는,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어 셔키, 갤리온, 2008. 입니다.
Ps2. Titus Pullo님. 댓글 감사합니다. _(_.,_)_
감상쓰는것도 좋을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