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다치는 바람에, 당분간은 예전에 썼던 북리뷰를 재탕할까 합니다. 물론 제 입장에서는 재탕입니다만, 읽는 분 입장에서는 새 글이긴 합니다. 연암 박지원에 대해서는 흥미있는 분들보다 없는 분들이 더 많죠. 그래도 의무교육의 덕분에 이름은 다들 들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연암을 재미나게 알려면, 이 책보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그린비, 2003.] 이 훨씬 더 낫습니다. 문장도 맛깔나고 특히나 연암 박지원을 입체적으로 구성하는데 성공했다고 평가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대 상황에 비추어 연암의 괴짜본능을 유쾌하게 설명합니다. '철딱서니 없는 연암과 그 뒤치닥꺼리를 도맡는 개인 노비와의 관계는 어땠을까?'하는 재미있는 상상도 붙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책을 리뷰하자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오늘의 책은, 김혈조씨가 연암의 산문집을 엮은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박지원지음 김혈조 엮음, 학고재, 1997] 입니다.
-----------------------------------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라는 이 책자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선생의 산문을 가려 뽑고 번역하여 엮은 것이다.
옮긴이 김혈조는 원로 한학자의 말을 빌려, ‘우리의 한문학이 연암 박지원에 이르러서 망했다.’는 평을 내린 바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옮긴이는 연암의 한문학 작품이 역사상 최고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연암 이후에는 그러한 수준의 작품이 더 이상 나올 수 없으리라는 뜻을 역설적으로 찬탄한 표현이라 말했다.
배운 바, 연암은 18세기 조선이 꽃피운 최고의 실학자 중 한명이다. 그의 관심은 다양한 분야 걸쳐 학문적 탐구의 결과로 기록으로 남아있다. 후대 학자들이 그를 탐구하는 분야로, 철학, 종교학, 인류학, 정치학, 경제학, 수사학, 민속학에 등의 다양한 범주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연암이 박사 수백 명을 만들어 냈다.’라는 농은 더 이상 농이 아니지 싶다. 특히나 그의 걸작인 『열하일기』는 이점에서 조선조 한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 받으며 아직도 풀어내야할 수많은 담론을 품고 있다.
그러나 한학기라는 짧은 시간에 한국문학사의 전체적 개괄이라는 방대한 작업을 위해서, 어찌 다른 작품들이 다를까 만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또한 겉치레로 넘어간 듯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스스로가 이에 대해 발표를 준비하였기에 수업에서 어쩔 수 없이 미진했던 점을 나름대로 보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발표 준비가 마냥 그러하듯 학식의 부족의 ‘논문’이라는 이차적 텍스트의 나열에 그쳤다는 점이 항상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북리뷰로 이 책을 선정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 있다. 일차 텍스트, 원전에 대한 그리움일 터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한문학의 대작이라는 수식어에서 나타나 있듯 『열하일기』는 한자로 쓰이어져 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은 일반 독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공간』의 저자 고미숙도 한자 자체의 난해함과 한문 해석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김혈조 선생의 해석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 덕에 우리와 같은 이차 텍스트의 해석에도 벅차하는 일반 독서가들은 원전의 향기를 그대로 맛볼 수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는 비록 고전의 재해석이 아닐지라도 완벽한 번역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하겠다.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연암의 산문은 매우 다채롭다. 옮긴이의 말을 빌자면, 김혈조는 “기왕의 학계, 독서계에 소개된 연암의 작품은 주로 소설적인 전(傳)작품이나 『열하일기』가 대부분이다. 「양반전」 등과 같은 소설적 작품이나 『열하일기』 역시 연암의 작품으로서 탁월한 성과에 속하지만, 아무래도 연암의 심오한 철학적 사유와 고묘한 논리성은 그의 산문에서 더욱 드러난다.”고 하며 기존의 출판된 연암 글에 대한 미진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기존의 단편적인 번역집에 있어 이 책의 특징은 바로 연암의 산문을 주제별로 구분지어 편집해 놓았다. 나열해 본다면, ‘마음으로 보라’, ‘학문과 문학의 길’, ‘조선의 현실과 북학’, ‘복어알 같은 벼슬살이’, ‘나의 벗들’, ‘제비바위의 정경’의 6개의 장으로 나눌 수 있다.
제 1장은 연암이 사물에 대한 관찰과 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모아놓았다. 그 중에 「상기」와 「일야구도하기」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제 2장은 연암이 추구했던 학문을 엿볼 수 있는 단락이다. 「법고창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장은, 연암이 당시 도그마처럼 되어있었던 주자학에 대한 반성과 특히나 문장에 대한 그만의 결론을 내놓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3장은 박지원 사상의 하이라이트 ‘북학’에 관련된 내용이다. 한국의 저명한 사학자인 전해종 선생은 그의 저서에서 조선 시대 가장 대표적인 실학자 다섯 명을 열거하고 그들을 비교 ․ 연구한 바가 있다. 그는 이렇게 지적했다. “유독, 연암만이 이용후생으로써 경세치용을 대체하였다.” 율곡 등 다른 네 명과 다른 점은, 연암이 실용과 실천을 중시하고 농 ․ 공 ․ 상의 각 직업을 동등하게 대하여 그 생업을 보장할 것을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연암의 실학, 즉 북학파의 실학은 유가 사상을 핵심으로 여기는 (정통파) 실학 이론과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이 3장에 집약되어 있다. 「북학」, 「깨진 기왓장과 똥거름」등은 연암의 사상을 더욱 명료하게 알 수 있게 한다.
4장은 벼슬에 대한 박지원의 생각들을 모아놓았다. 박지원이 능력에 비해, 벼슬자리를 꺼려했다는 기록은 모두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옥새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대목은 그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매우 급진적이고 위험한 사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이를 주장한 박지원 선각자적인 깨침과 그 깨침을 써내었다는 뱃심은 감탄할만하고 후대의 독자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하겠다. 5장은 벗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다. 연암의 벗, 이덕무, 박재가, 홍대용 등 당대의 걸출한 인물은 거의 연암의 벗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약용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고미숙이 지적한 바와 같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나, 당시 정세로 볼 때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연암의 이들과 깊은 교류를 나누었다. 또한 이들이 사회적 질곡에 인해, 그 능력을 썩히고 있는 것에 대해 분개했다. 또한 그는 그 시대의 다양한 계층에 모두 관심을 보였다. 「예덕선생전」을 보면 똥지게 나르는 이와의 우정도 소탈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6장은 그의 생활에 대한 잔잔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글의 내용이나 분위기를 보아 연암 말년에 쓰여진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는데,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한 「나의 누님」은 박지원의 애잔한 사랑을 잘 느낄 수 있게 한다.
인물의 덕은 그의 친구로 알 수 있고, 인물의 지식은 그의 글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는 박지원의 덕과 지를 모두 알 수 있게 하는 번역집이다. 박지원 그가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알았으며, 어떻게 생각하고, 그리하여 행동했는지 그의 글, 이 책자를 통해 생생히 알 수 있다. 18세기 도그마로 가득 차있는 기존의 허례허식을 맹렬히 비판하고 실학을 통해 민중의 삶을 구원하고 나아가 조선의 발전을 꿈꾸었던 연암의 삶이 이 책에 녹아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를 읽는다는 것은 의외로 간단할 지도 모르겠다. 연암의 글을 읽는다면 말이다. 끝으로 졸문이나마 내가 쓴 발표문의 말미로 이 책의 저자, 박지원을 갈무리 짓도록 하겠다.
흔히 우리는 시대의 위인을 거목이라 지칭하곤 한다. 시대 앞에 당당히 뿌리 묻고 버티어 수많은 잔뿌리로 당대를 흡수하고, 후세의 사람들에게 울창한 수풀로 그 영향력을 다하는 거목. 그러나 연암은 절대 거목이라 표현 될 수 없다. 그는 바다이다. 다가오는 모든 것을 흡수하여 마치 태초부터 그것이 자신의 것이었다는 듯 마냥 으스대는 앙탈 맞은 밤바다이다. 시대를 정리하고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녹아들어 당대의 돌쩌귀 하나, 서까래 하나에 자신의 자취를 남겨 놓은 살아 있는 지식인이다. 연암은 그러하다.
Ps. 되돌아 보면, 이 맘 때 쯤 썼던 문장은 왜 이렇게 당당했는지;; 머쓱하기 그지 없네요.
행복 한 주 되세요.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