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를 팝니다, 김용민, 퍼플카우콘텐츠그룹, 2011.
이제 김용민의 별명은 십쇄돼지에서 이십팔쇄돼지로 바뀌었다. 나는 꼼수다를 듣는 분들은 이 말의 뜻을 다 알리라. 총 판매권수는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책 3권(조국 현상을 말하다, 나는 꼼수다 뒷담화, 보수를 팝니다)으로 28쇄를 팔아제끼는 시사평론가는 그리 흔치 않다. 물론 이런 매출은 책의 탄탄함보다 방송이 한몫 더하는 전형적인 미디어 판매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애당초 그 미디어를 만들었다는 사실로 평가받기 때문에 하등 문제 될 건 없다. 저자에 대한 호감을 구매로 이끈다는 것 자체가 저자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중학교 1학년 교과서 같다는 점이다. 이 말은 폄하가 아니다. 원래 집필의 목적이 일견 어렵게 보이고 따분한, 그리고 현실과 유리되어 보이는 지금 당장의 정치를, 구미에 ‘없는’ 사람에게 흥미 돋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애당초 독서지형에서 정치가 비권역권인 사람에게 정치서적을 읽게 만드는 일은 흡사 종교인이 비종교인에게 전도하는 행동과 유사하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 그럼 접근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쉽고 재미난 풀이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우선 되어야 할 점은 명확한 개념 정립 그리고 그 개념에 대한 선명한 구분이다.
'보수를 팝니다.'는 이 두 가지 일을 잘 해냈다. 복잡다난한 한국의 정치지형을 굳이 설명하는 게 아니라, 오늘 뉴스를 틀면 나오는 이름들을 잣대로 보수의 무리개를 지어 일단 묶어 놓고 거기에 맞게 설명을 붙였다.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갖는 이미지의 도해적 접근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 듯하다. 한국의 보수를 모태보수, 기회주의 보수, 자본가 보수, 그리고 무지몽매 보수로 나누어 대상에 대해 대명사를 단다. 모태보수의 박근혜, 기회주의 보수의 이명박 · 김문수, 자본가 보수의 이건희, 무지몽매 보수의 가스통 할배. 이런 식의 접근은 우리가 정확히 알지 못해도 어떤 특성을 지니는지 막연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설명 또한 이해하기 좋다. ‘박근혜는 왜 침묵을 하는가? 모태보수라서 그렇다. 모태보수는 워낙 가진 게 많아서 끝까지 관망하고 또한 그 결정이 잘못되어 손해 보더라도 손 털면 그만이다. 뒤돌아보면 집자산은 많다. 그래서 큰 결정도 쉽다.’ 반면, 기회보수는 ‘가진 게 없다. 본인이 일구었기 때문에 먹는 것도 전적으로 본인 몫이다. 자신이 먹을 걸 늘리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반드시 먹을 걸 늘려줘야 나눠준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낙수효과를 주구장창 외치는 것이다. 이 정점이 바로 이명박이다. 반면 김문수는 궤가 살짝 다르다. 진보는 권위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란 게 다 자기 몫을 주장하기 마련이고, 진보는 권위 이상은 보장하지 않으니(그러니 진보는 지속적으로 자기 이름값이 여전하다고 스스로 증명해야한다) 이게 속 터지는 거다. 그래서 삐졌다. 그리고 자기 몫은 확실히 챙겨주는 보수로 변절!’ 이런 식으로 ‘돈이면 다 되지만 재주와 욕은 곰(정치 보수)이 돈은…… 내가.’ 라는 자본가 보수, 일단 떡고물부터 주워 먹어야 생존이 가능한, ‘내 밥 주는 사람 왜 건드려!’ 그래서 강자의 논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무지몽매 보수를 설명한다.
그 뒤이은 이야기는 보수의 판매 방법, 보수의 몰락 방식에 대한 건데, 소소하고 꼼꼼하게 재미있기는 하나, 본질적으로는 나는 꼼수다에서 한바탕 설명한 이야기다. ‘왜 가카와 한나라당은 빅 엿을 서로 주고 받는가?’의 물음에 대한 확대 업데이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첫 장의 소년 보수 김용민에 대한 소개는, ‘나꼼수 뒷담화’와 겹치는 부분이고, 마지막 장, ‘등을 보이지 말고 당당하게 유쾌하게 웃으며 싸우자.’라는 말은 나꼼수의 메시지 그 자체이다. 물론 이 메시지가 빛을 발하는 이유는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 나꼼수 4인의 ‘쫄지마 씨바!’의 실천 때문이며 이 책도 그 실천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여튼, 이 책은 잘 알지는 못하지만 현실이 부당하다고 느끼고 분노하는 시민에게 좋은 안내서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자기가 싸워야 하는 상대에 대해 감을 잡게 해주며, 더욱 중요한 점은 울분은 있지만 명분이 없어 싸움을 주저하는 이에게 같이 동참하자고, 그리고 동참할 이유를 납득가게 설명할 수 있는 방편이 된다. 물론 그게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보수를 팝니다.’는 한국 보수 지형의 ‘현상’에 대한 설명이다. 역사와 결부한 한국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기에는 많이 모자란다.(다음 단계로, [현대정치의 겉과 속, 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사, 2009.] 추천) 어디까지나 초급용 입문서 역할. 근데 그건 당연한 게 애당초 떡볶이로 나왔는데, 여기에 2만원 더 낼 테니 비싼 고기 · 해물 풍성하게 추가해 달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안그래도 맛있는 떡볶이에 굳이 왜?
Ps. 약속 기다린다고 서점에서 다 본 게 조금 아쉽긴 합니다. 사기에는 형편이... ㅠ.ㅠ
한 줄 요약한다면, 편가르고 선동하며 세뇌시키기 좋은 책. (물론 좋은 의미로;;)
ps2. 택천쾌님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