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김동훈, 바다출판사, 1999.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어찌되었건 솔깃한 말이다. SKY로 대표되는 학벌체제가 사회 계급화로 직결되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대학아, 좀 망해라.’라는 말은 실현 여부를 떠나 감정적으로 상당히 접근성을 지닌다. 일례를 들어보자.
최근 고교 평준화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평준화 자체를 ‘인재들이 다 썩는, 능력차를 무시한 공산주의적 강제 규제’라고 폄하하는 부정적 시각부터, ‘입시 지옥이란 용어를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긍적적 시각이 혼재하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 고교 평준화는 ‘모든 공교육의 질은 동등하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는 이상적 전제이다. 즉 전제 자체가 현실을 무시한 처라라는 것이다. 이것이 고교 평준화의 최대 약점이다. 현재의 고교 평준화는 교육 대상을 학력차에 의한 선발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력차에 의한 선발로 몰아가 고 있다.
흔히 대치동엄마로 대표되는 in강남, 즉 강남 학생의 대학진학 실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강남의 일반계 고교 학생 수는 전국 대비 5%이다. 이에 산술적인 측면의 고려와 교육 수준의 지역차라는 현실적 요소를 감안할 때, 강남의 명문대 합격 비율은 최대 전체 합격자의 20% 미만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한계례 21』의 2004년 조사로는 이화여대와 연세대 수시 1학기 강남학생비율은 각각 36.1%, 35.3%라 나타났다. 즉 고교 평준화는 교육 기회의 균등화라는 이상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면에서 역설적으로 교육 계급화를 초래해 왔다. 다시 말해, 평준화 이후에는 아무리 머리가 좋고 공부를 열심히라더라도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한다면 가난한 집 아이는 동네 열악한 학교를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부유한 상 ․ 중산층들은 오히려 경제력과 학력이 결합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가고 있다. 즉 고교평준화로인한 8학군의 가속화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현재의 평준화 정책은, 교육을 사회 계층 이동의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계급의 세습적 ․ 기계적 되물림의 고착화로 만들어가고 있다.
여기까지라도 현실과 괴리되는 제도의 탓이라고 억지춘향격으로 규정해 본다하더라도, 고교 평준화의 대안이랍시고, 몇몇의 상위 대학이 주도한 ‘고교 등급제’는 저자가 제시한 ‘대한민국 대학이 왜 망해야 하는가’에 대한 멋진(?)예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04년 전교조는 10월 12일 기자회견에서 수도권 10여개 대학들이 심층 면접 및 논술시험을 통해 변칙적인 본고사를 실시해왔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특히 “일부대학이 ‘대학의 선발권’이라는 미명아래 자의적 기준을 적용히여 부유층 학생들에게 부당한 특혜를 주어왔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이들 대학의 도덕 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비난했다. 이에 해당대학은 “시험 어렵다고 대학 탓 말고 학생 공부나 더 시켜라”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10월 21일 한국 교육 개발원이 발표한 「고교등급제의 실상과 문제점」이라는 정기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대학의 강남 지역 학생 선호는 부유층 자제 확보를 통해 잠재적으로 대학 재정 확보에 기여하는 학생 선발 및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을 통학 대학 발전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고교 등급제를 둘러싼 이와 같은 일부 대학과 전교조를 비롯한 사회단체들간의 대립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할지라도 이미 대학이 교육기관이라는 본연의 기능에서 이탈해 있음을 증명하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수도권 일부 대학외의 다른 지방 국공립 및 사립대학의 졸업장이 이미 사회 계급의 낙인 효과를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에서 이와 같은 일부 대학의 작태는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대학의 개혁은 현 사회에 만연해 있는 학벌위주의 풍토를 개선해 나가는 것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저자가 제시한 해결 방안은 다음과 같다. 저자는 ‘재벌을 해체하듯 대학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요지로 대학을 현재의 포괄적인 서열구조를 기반으로한 신분적 질서를 유지하는 신분집단에서 고유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능집단으로 세분화해야한다고 본다. 이의 실천적 방안으로 대학을 교육기관과 학문기관으로 역할 분배후 재배치해야 하며, 실례로 예체능계 대학을 독립시키고, 직업교육을 위한 전문대학원의 설립과 전문인을 위한 교양과정의 설립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의 핵심인 연구활동은 응용학문의 경우 그 연구 성과물의 실질적 수요자인 정부 또는 기업이 출연한 연구소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시장논리를 도입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은 순수학문의 경우 정부가 나서서 공공재의 인프라 구축처럼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한 이와같은 해결책은 몇몇 공감할만한 부분도 눈에 띄나, 대부분 현실적으로 도입하기 힘든 제안도 다수 있다. 그러나 ‘기울기의 기울기’라는 측면, 즉 과격한 좌파활동으로 인해 온건한 좌파활동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는 측면에서 저자의 주장은 분명 경청해야할 가치가 있다. 대학에 대한 불신으로 대학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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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005년 쯤에 쓴 글인데요, 이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데다가 아예 정적을 찍고 내려올 생각을 안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고착화된 계급 진입을 위해 배틀로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의 대표적 표상이 취업문을 열 수 있는 대학이죠. 그래서 사회적 아젠다로 대학의 해체는 거론되기 힘든 구조입니다. 그런데 근래들어 소신있는 몇몇 학생들은 '자퇴'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있지요. 이는 그 결과가 어쨌든 간에 굉장히 용기있는 행동입니다. 우석훈 교수가 88만원 세대에서 토익책을 내려놓고 짱돌을 들어라고 했는데, 83년생 한윤형은 그것 또한 기성세대의 낭만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 어쩌면 위의 학생들은 분노의 첫 세대 혹은 낭만의 마지막 세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퇴로없는 경쟁이 세대간 싸움(2040vs50)과 세대안 싸움(20대 취업전쟁, 50대의 은퇴후 생존전쟁)으로 공존하며 한국 사회의 시민의 실존을 여지 없이 갉아 먹고 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사회적 담론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치'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해 봅니다.
점심 맛나게 드세요. (아... 글은 이따위로 써놓고.. 밥 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