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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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2. (7) 2011/12/16 PM 04:37

※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2.


사실 무리였다. 겨우 이틀의 시간으로 900p가 넘는 대작을 보기란 게으름의 핑계를 넘어서더라도 꽤나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책에 대한 이해나, 앎에 대한 지적만족이나, 스토리에 대한 감동보다 오직 ‘해냈다!’ 라는 자부심이 앞섰다. 책에 투자한 얼마의 소비를 뛰어넘는 그 무엇이 충족감이자 만족감으로 가슴을 두들겼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는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수업시간에 동명의 영화를 흥미롭게 본 나로는 원전을 본다는 건 상당히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영화의 이미지가 잔상처럼 남아 독서 자체로서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겹겹이 쌓여있는 책 두께를 재어보며, 호기롭게 몇 페이지 훑어본 결과 영화를 먼저 본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수많은 주석과 해석과 설명들. 책 내용을 떠나 일단 독자에게 답답함을 선사하는 훌륭한 성채였다. 독일의 어느 교수가 주석에 대해 비유하길 ‘책에 있어 주석이란 부부(독자와 책)가 한낮에 본능적인 충동으로 결합하려는 찰나 야멸치게 초인종을 눌러대는 우편배달부와 같다.’라 한 적이 있다. 딱 그 꼴이었다. 그래서 평소 독서 습관에 맞게 주석은 대부분 무시하고 읽기로 결정했다.


책과 영화는 사뭇 달랐다. 영화가 윌리엄 수도사의 추리력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스릴러물이라고 한다면 원전은 복잡한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온갖 사상들이 날틀을 타고 종횡무진 공중전을 벌여 도대체 어떤 갈래인지 구분이 힘들었다. 이 글을 번역한 번역가 이윤기씨는 글의 재미를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재미와 중세 종교 소설로서의 재미, 기호학적 재미(굳이 풀이하자면 비언어적 기호의 해석)등으로 나누고 있는데 초입독자인 본인이 생각하기엔 ‘장미의 이름으로’라는 책은 글 전반에 흐르고 있는 윌리엄 수사 그 자체의 캐릭터성과 그의 사상이 독특한 매력으로 독자를 휘어잡는 듯 했다.


모든 소설의 중점엔 시간과 공간이 있고 공간이 존재하면 시간은 부차적인 것이고 캐릭터는 그 시공간내의 일종의 조형물이라 한다지만, 이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고 그 환상적 공간에서 숨 쉬고 생활하는 캐릭터가 흥미롭지 않다면야 기껏 구상해낸 시공간이 허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 바로 소설이다. 그런 면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으로’의 전체를 움켜잡을 수 있는 최적의 캐릭터를 완성한 셈이다.


윌리엄 수사는 신성과 이성에서 이성을 신봉하는 근대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윌리엄 수사가 살았던 시대가 14C이기는 하나 본격적인 르네상스가 14세기후반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한다면 윌리엄 수사는 약 한 세기를 앞서 나간 선지자적 인물이다. 글의 전체를 아우르는 음울한 흑백논리의 유령이 순진한 독자들을 뇌쇄적으로 유혹하는 가운데 항상 뛰어는 통찰력으로 다원성의 신념을 뻣뻣하게 내세운 윌리엄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을 아드소로 둔갑시켜 버리고 있다.


이 글의 화자인 아드소 또한 매력적인 인물이다. 순박하고 순진한 어린 수도사의 호기심과 스승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 사랑에 대한 번민, 글 사이사이 숨어 있는 어이없는 자가당착, 또 그 자가당착에 대한 회의 등등은 바로 어린양, 독자 본인들을 비추는 거울로서 충분한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 내고 있다.


‘장미의 이름으로’는 정확하고 방대한 사전조사나 촘촘한 구성, 급박한 스토리 등등의 다양한 악기들의 훌륭한 화음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독자들의 가슴을 두드리는 요소는 윌리엄 수도사가 내뱉는 일종의 잠언이나 수도사들 간의 논쟁에서 나타나는 경구의 짧은 대목들이라 하겠다.


수업 중 교수님이 말씀하신 ‘인간은 거인의 무동을 탄 난쟁이’라는 구절도 구절이거니와 내가 감명 받은 몇 가지 구절을 적자면,

“진정한 앎이란, 알아야 하는 것, 알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알 수 있었던 것 알아서는 안 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유능한 조사관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도 진실을 말하는 이유에서 혐의를 두는 법이다.”

등등 의 진중한 말도 있었지만 의외로 마음에 남는 말은,

“육체의 아름다움은 가죽에서 머무는 법이다. …… 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점액과 피와 체액과 담즙이니라 …… 손가락으로 똥을 만지기는 싫어하면서 어째서 너는 똥자루를 안고 싶어 하느냐!”

라고 이름 없는 여자를 안타까워하는 아드소를 꾸짖는 우르베티노의 호통이었다. 이 말은 글 중에서는 아드소의 상념을 깨우기 위한 말로 쓰이기는 하지만 왠지 나에게는 외모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을 꼬집는 것 같았다.


움베르토 에코가 완벽한 고증으로 14C의 중세 수도원을 현대에 옮겼다고 하지만 시대와 문화가 다른 나에게는 그 정확성이 오히려 독서에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아드소가 경탄의 눈으로 경외와 환희를 담으며 묘사한 수도원의 외형이나 화려한 조각상들은 나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가 전혀 펼쳐지지 못하게 하였다. 그 덕에 아이러니하게도 꽤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황제나 교황간의 반목이나 그 시대 교구간의 갈등의 세세한 설명보다 교수님이 공판 과정이라 설명하신 베르나르 기와 윌리엄 수사간의 우회적인 논리 싸움이나 제 5일 1시과에 벌어진 두 교파간의 소유권에 대한 여러 해석 중 나타나는 이전투구의 말싸움이 글의 흥미를 더하게 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백미인 것은 p654-p660에서 보여 지는 윌리엄의 세속법의 한계와 그 처벌의 범위에 관한 해박한 방백이었다. 또한 글의 막바지에 벌어지는 노수도사 호르헤와 윌리엄 수사의 대결은 앞서 지적한 미스터리 소설의 결정(結晶)임과 동시에 논리와 논리의 숨 막히는 부딪힘으로서 글의 긴장을 최고조로 높여 놓고 있어 글의 풍미를 양 것 더하고 있다.


‘장미의 이름으로’는 한 번의 독서로 쉬이 감상문을 적을 수 있는 그런 가벼운 소설은 결코 아니다. 각 사상을 이해하고, 그 시대를 이해하고, 당시 상황적 배경을 하나하나 정확히 인지하여야지만 작가의 뜻에 한 발짝 더 내딛을 수 있는 그런 글이다. 하지만 또한 그런 것은 아니다. ‘장미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에 대한 작가의 변이 말하듯 소설은 발표되는 그 순간 작가의 품을 떠나고 에코의 말을 빌리자면 해석은 독자 개개인의 몫으로,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창조해야 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감상이라는 독자만의 긍정적 횡포로 얕게나마 글을 재해석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 이 글은 글을 쓰는 인간의 행위가 인간의 가치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에 대한 모범적 답변이 되었다. 책을 덮는 순간 움베르토 에코가 윌리엄 수사가 되어 내 앞에 선 듯 했고, 나는 마치 아드소인 냥 그의 뒤를 졸졸 밟고 싶다는 충동이 불연 듯 들었다. 이 같은 갈증은 또 다른 독서로 자연스레 나를 이끈다. 달리 해석하는 예지만, 윌리엄 수사가 '꿈은 곧 성서이다. 그리고 성서의 많은 기록은 곧 꿈 이야기지.'라고 아드소의 환상을 달랬다. 그렇다면 움베르토 에코는 지혜라는 막연한 환상을 '장미의 이름'이라는 일종의 성서로 여과하여 나에게 전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일까? 의외로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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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저학년 때 시간에 쫓겨 마구잡이로 쓴 글입니다. 부끄럽지만 올리는 이유는, 다음 독서 일기가 의외로 시간 간격이 생길 것 같아 그 틈을 이렇게라도 메울가 싶어서입니다. ㅠ.ㅠ

모자란 글 읽어 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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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뇌세포    친구신청

장미의 이름 읽으셨으면 이제 푸코의 진자 읽으셔야죠

앙대나요?    친구신청

읽기 정말 힘들었지지만 공 들여 읽을만큼 가치가 있었던 책

배경?상황? 묘사가 기막혔던걸로 기억
책인데 현장감이 ㅎㄷㄷ함

잿빛 뇌세포    친구신청

움에 이 양반 책 읽으면서 항상 느끼지만 진짜 뇌 안에 뭐가 그렇게 꽉꽉 차있는지 한번 구경해보고 싶음

푸뇽푸뇽    친구신청

푸코의 진자는 집에 있지만 읽어보질 않았는데
오늘 시험도 끝났겠다 도전해 볼까요 ㅎㅎ

쿱붑쿱    친구신청

고딩때부터 보려다가 몇번이나 실패한 책.

꼬라박지호    친구신청

잿빛 뇌세포// 읽어야 되는데... 하면서 뜸만 들이고 있네요. ;;

앙대나요?// 저는 현장감 보다 스토리를 중시하면서.. 그 수많은 지식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에는 제 뇌용량의 한계가. ㅠ.ㅠ

푸뇽푸뇽// 저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쿱붑쿱// 번역이 잘 된 편이라 맘먹고 읽으면 읽힙니다. 파이팅!

검은나나    친구신청

푸코의 진자
장미의 이름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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