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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1) 2012/02/21 PM 01:38

※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 로버트 O. 팩스턴, 교양인, 2005.
간략평: 한국의 숨겨진(혹은 드러난)파시즘 태동을 바로 보게끔 하는 '관점의 기준'이 되는 책


작년 4월에 독서일기를 처음 시작하면서 나날이 쓰던 내용을 책 별로 묶었습니다. 애당초 독서 일기의 시작은 하루 읽은 걸 하루에 쓰자였는데요, 게으름이 미어터지기 시작하면서 1권 읽으면 총평하는 걸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써두었던 내용을 이어붙였습니다. 상단의 날짜의 읽은 일, 그다음은 간략한 내용 정리입니다. 파시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태생적 병영 국가인 한국 사회(전 국민의 징병제;;)에서 파시즘이 얼마나 준동하기 쉬운 것인가에 대한 새삼스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특히 남성의 경우는 2년여의 군생활을 거치며 알게 모르게 전체주의에 대한 내적 순응도가 높아지죠. 이게 무의식의 저층에 남아 특히 아래 위가 명확한 직장에서 발현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화가 아니라,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개개인의 반성 및 자기객관화인데요. 아직까지는 요원해 보입니다.


여튼, 아래의 내용은 '파시즘'의 날짜 별 요약입니다. 사실 올해 2월분 내용을 올려야 하는데, 두꺼운 책들이 많은지라 쉽지가 않네요. 이것이나마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내용이 참 많습니다만, 찬찬히 읽어보시면 제 생각이 어떤 식으로 흘렀는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봐도 내가 이런 생각을 했나 싶어 새롭기 그지 없네요;;


[영화 '디벨레'를 보시면, 교육현장에서 우리가 무심코 해온 외형적 교육 방법이 얼마나 전체주의적인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독일(그러나 미국 실화를 따온)내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이즘'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는데, 체험 수업을 해보자고 합니다. 그 체험이란, 나란히 걷기, 같이 행진하기, 같은 옷 입기, 선생에게 존대하기 등인데요. 이런 외적 변화가 인간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제가 놀란 것은 그 쪽 사회에서 전체주의적 행동이라 껄끄러워하는 게 우리내 사회에서는 일상 생활이라는 거... '디벨레' 추천합니다.]



2011. 04. 13

[파시즘] 오늘 안 읽음.

보통 한달에 책 두권~ 세권을 사는 편인데, 한 권 정도는 조금 어려운 원론책을 사는 편이다. 그래서 꼬이면 대책없이 꼬인데, 요번 달이 꼬인 케이스다;; 세계 철학사를 읽으면서 이 책을 읽는 것은 힘이 부친다. 그래도 읽어야지 어쩌겠어.. ㅠ.ㅠ

파시즘 준동에 대한 실제 사건으로서의 접근이 주된 방법론인 책이다. 흥미롭다. 세계1차대전 근저의 싸움은 '맑스의 계급론이냐 근대 국가 형성에서의 민족주의냐'라는 건데 그 사이에서 파시즘이 자랐다는 것이다. 정의 중 특기 할 만한 건 파시즘이 이데올로기 없는 이데올로기. 모든 이데올로기를 적대하면 자라난 이데올로기라는 거다.


2011. 04.16

※ 파시즘.

오늘 아직 안 읽었다. (AM 11:25)
그런데, 어제 읽은 내용 정리한다고 해서 쓴다.

세계철학사 19C부분과 파시즘의 준동 부분은 시대적으로 교집합을 이룬다. 이 책의 저자는 파시즘을 '정의'해놓고 분석하면 파시즘의 본 모습을 놓치기 쉽다라고 하지만, 설명의 용이를 위해 일단 정의해 두고자 한다. 영국학자 로저 그리핀이 주장한 파시즘의 정의는, "파시즘은 정치 이데올로기의 일종이며, 그 이데올로기의 다양한 변형 속에 존재하는 본질적 핵심은 대중주의적 초국가주의(populist ultranationalism)다." 그렇다면, 이를 근저에 깔고 그 시대 철학과의 연관 관계를 보자.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헤겔'이다. 절대정신이라는 상위 가치를 두고 인간은 절대정신의 파편이다. 라고 해서 개개인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낮춘다. 또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타 이데올로기를 '점령'하기 위한 명분을 준다. 두번째로는, 스펜서다. 스펜서는 다윈의 진화 개념을 인간 사회도 동일하게 치환시켰다. 적자생존 확대이다. 즉, 파시즘의 준동 자체가 파시즘의 존재 근거가 되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마르크스의 맑시즘이다. 맑시즘은 파시즘에 비해 반대 급부적 촉발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19C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둘다 극단으로 가면 전체주의를 지향한다. 근대화의 민족주의적 국가관이냐, 아니면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이냐의 갈림길이다. (해방직후의 한국 상황과 동일하다. 임정이냐 인공이냐), 혁명의 대중화도 파시즘에 영향을 줬다. 네번째, 쇼펜하우어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의지'의 발현의 생의 '목적'이라 본 쇼펜하우어의 '본능예찬'이 파시즘의 광기에 미학적인 면을 더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이는 의문부호가 붙지만.)


다섯번째, 과학을 발전이다. 앞서 이야기한 진화론의 적자생존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게, 루이 파스퇴르다. 먼저 진화론 부터 꼽자면,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래시스 골턴(1822~1911) 과학이 인류에게 '최상의 인간'을 재생산함으로써 인종을 개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우생학'이라는 말을 고안해냈다.(우리가 흔히 혈액형 성격론이 여기서 기인한다. 거기에다가 일제의 탈아입구론이 더해진다. 개인적으로 혈액형 운운하는 사람보면 한숨이 나온다.;;) 다음으로 루이 파스퇴르(1822~1895)와 멘델(1822~1884)이 영향을 미쳤다. 파스퇴르는 전염병에서 박테리아의 역할을 규명했고 멘델은 유전의 매커니즘을 발견하면서 파시즘이 적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즉, 전염병 본균자, 불결한자, 유전적으로 병들었거나 범죄성향이 강한자가 내부의 적이 되었다. 이를 외부로 확대하면, 바로 유대인이다.



2011.04.28 목 16:21

※ 파시즘, 로버트 O. 팩스턴, 교양인, 2005

p.125 ~ p. 190.

0 8년 6월 6일. 나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서 있었다. 한쪽에는 북파공작원 모임이 위령회를 진행 중이었고, 반대편에는 촛불문화제가 흥겹게 진행되고 있었다. 위령제와 문화제. 이 상반된 분위기의 경계는 조그만 선이 전부였고, 이는 상이한 두 집단의 충돌을 의미했다. 또한 검은색 복장의 다 어린 전경들도 있었고 그 보다 더 어린 교복의 학생들도 있었다. 이 다양한 군상 속에서 공통점은 이들 모두 (전경을 제외하고) 집단적 의사표현의 행동적 양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 보고 어느 정치인은 '대중 독재론'의 아류라 이름 붙이기도 부끄러운 '천민민주주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고, 또한 학계에선 이런 역동성의 폭발력이 두려웠는지 '일상적 파시즘', '우리안의 파시즘' 논쟁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과연 '파시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책의 머리글에는 이제 파시즘이란 개념이 기호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고 기호 표현만 남은 무의미한 말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와 같은 파시즘의 남발은 오히려 파시즘의 정체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고 강조한다. 파시즘을 정확한 기술적 용어로 쓰지 않고 일종의 유행어로 안이하게 남발하는 것은 파시즘을 예방하기보다는 오히려 파시즘의 독성에 무감각해질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진짜' 파시즘이 출현하더라도 우리 모두 양치기 소년 증후군에 중독되어 파시즘을 알아 보지 못하게 될 우려가 다분한 것이다.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의 '한국편'에서, 한, 중, 일을 단 한자로 표현하자면, 중국은 一, 일본은 和, 한국은 忠으로 정의 내렸다. 여기서 충은 전통적인 지배체제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어느 사안이든 그것에 극도로 기운다 라는 의미에서 忠의 의미인 것이다.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어느 사상이 들어오면 조선의 사상이 되어야 하는데, 사상의 조선이 되어버리고 만다.' 는 발언으로 이에 대해 경계하셨다.


특히나, 한국인은 양면적인 모습을 보인다. 공공재의 취득에 있어서 개인의 손해가 났을 때는 배타적 태도를 보이면서, 기존의 구축된 특정한 시스템으로 입은 손상을 극복하고 했을때 벌어지는 반대급부적 측면의 손해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개인성을 바탕으로한 역동적 응집성은 한국인을 파시즘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는 충분한 토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여러 의문이 이 책을 들게 만들었다. 이 책 파시즘을 파시즘의 준동, 탄생, 뿌리내리기, 권력 장악, 권력 행사, 급진화 정상화, 다른 장소 다른 시대의 파시즘을 모두 고찰한 후에야 비로소 파시즘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지금까지 파시즘에 관련된 책들이 무솔리니나 히틀러의 개인적 파괴력에 집착하고 있다면, 이 책은 파시즘의 양태에 대한 전반적 상황 특히나 배경 사상이나 지지층에 대한 분석을 모두 분석함으로서 어렴풋이 보이는 '파시즘'에 대해 현미경을 대고 특정 상황을 핀셉으로 집어낸다.


오늘 본 페이지는 파시즘의 전조와 뿌리내리기 부분이었다. 결론을 간략하게 쓴다면, 자유주의 질서의 위기 + 경제공황 + 중앙정부의 통제력 미비 + 대중 선거의 확대 + 그리고 공산주의 확대 등이 파시즘이 준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를 케이스 별로 분석했는데, 성공한 이탈리아와 독일, 그리고 실패한 프랑스의 명백한 대비로 이 준동요건에 대해 철저히 분석했다. 읽을 수록 흥미진진한 책이다.


2011.05.19.

※ 파시즘 p.190 ~ p.269

파시즘 3장 후반부와 4장을 읽었다. 파시즘이 1차 세계대전 후 각 국가에 어떤 과정을 거쳐 뿌리를 내렸고 또한 작은 기반을 바탕으로 어떻게 권력을 획득했는가에 대한 서술이 되어 있다.


파시즘은 엄연히 태생적으로 ‘군부 독재’와는 다름이 강조되어 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로 대변되는 파시즘에 대한 인상은 대개 흑백 영상에서 볼 수 있는 군인의 ‘사열’과 ‘행진’일 것이다. 그래서 흔히 우리는 파시즘을 군부 독재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위의 내용에는 파시즘은 엄연히 의회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어 왔고, 대중이 바라는 바를 부추겨, 그리고 대중의 적을 생산 · 확대하여 파시즘에 유리한 여론 형성에 힘을 쏟았다. 이런 점이 ‘쿠데타’로 대변되는 ‘군부독재’와 다른 점이다. 즉, 권력 획득 과정이 (군부 독재에 비해) 일반적이고 적법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이 대중 기반으로 한 권력획득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게 이채롭다. 1932년 7월 독일에서 벌어진 의회선거에서 나치당이 37.2%의 득표율을 획득하며 독일 의회에서 제1당의 위치를 차지했으나, 1932년 11월에 치른 선거에서는 지지율이 33.1%로 하락했다. 그리고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임명되어 전 독일을 지배했던 1933년 3월의 의회선거에서도 과반수에 못 미친 43.9%의 지지율에 그쳤다. 즉, 나치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독일인 2명 중 1명 이상은 나치당에 반대표를 던진 셈이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당도 1921년 5월에 참가한 자유의회 선거에서 535석 중 불과 35석에 그쳤다.


하지만, 문제는 이와 같은 대중의 다수지지 획득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은 권력의 상층부에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는 게 또 아이러니이다. 파시즘은 의회 교섭력을 획득하는 데 실패했기에 그들은 의회제도 자체의 신용을 잃도록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무질서를 선동하는 것은 보수층의 지지를 잃는다고 판단하였기에 그 전 지지세력이었던, ‘돌격대’를 숙청하는 과정을 거친다. 즉, 파시즘은 행동 민중기반 세력에서 보수적 엘리트주의로 협력 대상을 바꿨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수 엘리트주의자들이 왜 파시즘과 손을 잡았느냐는 건데, 그에 대한 해답은 공산주의의 대두에 있다. 노동계급 기반인 공산주의가 기존의 지배체계를 흔드는 것에 대한 본능적 공포가 보수 세력의 악수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즉, 기존의 엘리트층은 피지배계층의 혁명에 대비해 파시스트들과 공동의 명분, 다시 말해 볼프강 시더가 말한 헤르샤프츠콤프로미스(‘지배를 위한 타협’)로 결합했다. 결국 정치 및 경제 체제의 위기가 파시즘이 들어설 틈을 열어 주기는 했지만, 파시스트들을 실제로 그 틈 안에 밀어 넣어 준 것은 일부 강력한 기득권자들의 악수였다.


6장부터는 파시즘의 권력행사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2011.05.23 월 16:26

※ 파시즘 p.273 ~ p.333 제5장 권력행사

앞서 일단 먼저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파시즘의 권력 획득 과정이다. 파시즘은 집권 세력으로 나아가기 위해 초기의 지지계층이었던 노동조합 등으로 대표되는 급진적 경향의 민중파를 배격하고, 당대의 집권세력이었던 보수 엘리트 계층과 점진적으로 손잡았다. 보수 엘리트층은 불어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폭풍 속에서 자신의 집권을 고수하기 위해 파시즘과 손잡았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오산이었다. 시골뜨기라 폄하했던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대중 장악력을 가늠하기엔 그들이 대중과 소통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5장에서는 파시즘의 권력행사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이런 권력행사의 근간에는 대중의 묵인과 또 묵인을 조율해낸 파시스트의 역량에 대해 논의되어 있다. 우선 저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수한 파시즘 체제는 존재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파시즘 정권들은 당과 강력한 보수 세력 사이에 맺어진 모종의 협약이나 동맹관계에 의지했다. 파시즘의 태생 자체가 ‘안티테제’의 총합으로 당대 고전적인 자유주의적 국가관에서 버림받은, 일탈한 계층의 분노를 기반 했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일종의 타협이며 진화라 할 수 있다.


파시즘 체제의 복합적인 성격은 망명 학자 에른스트 프랭켈의 ‘이중 국가(dual state)’라고 표현한 대목에서 잘 나타나 있다. 히틀러 정권 때의 합법적으로 구성된 정부 당국과 기존의 관료조직으로 구성된 ‘표준국가(normative state)’와 당의 동형 기구로 만들어진 ‘특권국가(prerogative)’가 권력다툼을 벌였다고 썼다. 프랭켈의 나치 통치 분석 모델에 따르면, 파시즘 정권의 ‘표준 영역’은 계속해서 정당한 절차에 따라 법을 집행했으며 관리의 임명이나 승진 기준도 능력과 근속년수라는 관료주의적 기준을 따랐다. 반면, ‘특권적 영영’에서는 지배자의 변덕이나 당 활동가들에 대한 보상 혹은 ‘선택된 민족(Volk, razza)’에게 예정되어 있다고 가정된 ‘운명’외에 특별한 규칙이 없었다고 한다. 표준국가와 특권국가는 갈등을 빚으면서도 어느 정도 손발이 맞는 협력 속에서 공존하였으며, 그 결과 관료주의적 형식주의와 독단적인 폭력이 혼합된 기묘한 형태를 띠었다. 이에 대한 실례로 히틀러는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을 위해 마련된 헌법을 공식적으로 한 번도 폐지하지 않았으며, 독일에서 표준 국가를 완전히 해체해버린 적도 없었다.


지도자 ‘개인’으로 집중하여 분석한 부분에서 무척 흥미로운 건, 히틀러의 ‘악명높은 게으름’이 나치즘의 열기를 식혀버리기는커녕 하급자들이 유례없는 극단적 급진주의로 치닫게 하는 토양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최고지도자의 ‘나태’가 파시즘 체제 내의 끝없는 긴장, 다시말해 파시즘 통치를 ‘폴리오크라시(polyocracy)’ 즉,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여러 세력이 권력 중심을 이루어 항구적인 경쟁과 긴장관계 속에서 협력하는 통치 형태라고 보는 해석이 존재한다. 한스 몸젠은 그를 ‘허약한 독재다’라 부르기 까지 했다. 몸젠은 나치 정권이 관료주의적 효율성이라는 합리적인 원칙을 토대로 조직되지 않았으며, 정권이 보여주었던 어마어마한 살인적 에너지의 분출은 히틀러의 지휘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찾아냈다.


그러나, 위와같은 ‘이중국가’ 모델은 여론을 배제해버린다는 약점이 있다. 파시즘 정권에 대해 위로부터 권위를 행사하는 방식의 연구로만은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나치 독일과 파시즘 이탈리아 양쪽 모두에서 정권에 대한 국민의지지 및 협조 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 파시스트들의 공공연한 폭력행사는 대다수 독일인들의 미움의 대상이었던 유대인, 마르크스주의자, 그리고 ‘반사회집단(동성애자, 집시, 선천적 심신장애자, 상습 범죄자)’을 겨냥했기 때문에, 독일인은 폭력을 두려워하기보다 만족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더 많았다. - 이에 대해 현 한국사회에 시사점이 크다. 특히나 무리 짓기의 유용성을 역사적으로 학습해 온 한국 사회에서, 개인은 집단의 범주에서 타 무리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갖는 것은 쉬운 일이며, 또한 이가 종교적으로 결합할 경우 파시즘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또 그런 조짐이 보인다.


파시스트들이 원하는 것은 ‘영혼의 혁명’, 다시 말해 이탈리아의 로마니타, 독일 민족 담론, 헝가리즘처럼, 공동체의 운명과 그 특권에 대해 거듭 강조하고자 했다. 파시스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군, 생산능력, 질서, 부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파시스트들은 선거 정치와 특히 좌익의 계급투쟁 및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도 때문에 공동체의 분열과 쇠퇴가 야기되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공동체들이 처한 위기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인간 이해관계의 작용’만으로는 단결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적극적 행동을 통해(테러를 불사하더라도) 공동체를 단합시켜야 하며, 국가적 행동에는 가능하다면 설득과 조직화, 필요하다면 강제력을 동원해야 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이를 ‘기계적 결속(기계적 결속은 구성원들이 동일한 가치와 규범을 기반으로 결속된 상태이며, 그 반대인 ‘유기적 결속’은 전문화된 개인들이 상호의존성을 기반으로 결속된 상태라 말했다)’이라 정의했다. - 그러하기에 현재 한국에서 위와 같은 행태를 보이는 집단에 대해 냉소에만 그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견제할 필요성이 있다.


파시즘이 복지 체제를 특정인종을 혜택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법으로 왜곡 · 축소하려 했으나, 복지국가에 대한 해체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11. 05. 25.

※ 파시즘 p.337 ~ p.607.

일단 장별로 써본다.

[6장 급진화인가? 정상화인가?]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의 결정적 차이가 이 장에서 조명된다. 즉, 파시즘 세력이 집권 이후 조직체의 내적 열기의 폭주를 어떤 방식으로 조정하는가에 대한 내용인데, 무솔리니의 경우는 ‘정상화’의 방향으로, 히틀러는 ‘급진화’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대개 파시즘의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극적인 공약을 내세웠다. 첫째, 공동체를 통합하고 정화하고 활기차게 만든다. 둘째, 부르조아 물질주의의 무력함, 민주주의 정치의 혼란과 부패, 외국인과 외국문화로 인한 오염으로부터 공동체를 구한다. 셋째, 좌파가 주장한 소유의 혁명을 회피하고 가치의 혁명으로 대처한다. 넷째, 타락과 쇠퇴로부터 사회를 구한다. 지도자는 이러한 위기에 대해 전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내부와 외부의 적들에 대항한 폭력 행사, 개인의 완전한 공동체 귀속, 혈통과 문화의 정화, 군비 재무장 및 팽창주의 전쟁이 그 해결책이었다. 파시즘 정권들은 위의 약속을 완수하기 위해 질주하는 힘, 다시 말해 ‘영구혁명’의 인상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의 제약은 이탈리아 파시스트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 내에 최종적으로 (나치즘 내부적 갈등을 제외한) 히틀러의 통치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집단이 없었던 반면, 무솔리니는 교황을 등에 업은 기독교민주당(DC)과 이탈리아 왕인 에마누엘레 3세의 왕당파눈치를 지속적으로 봐야만 했다. 즉, 파시즘의 양대 축이라 할 ‘민족’과 광신적 ‘열기’를 두체는 독점할 수 없었다.


여기서 이해되어야 할 내용은 ‘동형조직’이란 말인데, 동형조직이란 적법적인 관료체계를 대신하는 친위조직을 의미한다. 즉, 행정력의 바탕이 되는 사법권, 경찰력 나아가 군 조직을 포함한 대부분의 관료체계를 비합법적 당적 조직이 이를 대신 혹은 병행해 민주주의적 위탁권력을 횡행한다는 말이 되겠다. 추출되기 전까지 기존의 보수 집권세력에게 끊임없이 협조를 부탁할 수 밖에 없었던 무솔리니는 이 ‘동형조직’을 제도권 하에 두려고 했고, 반면 히틀러는 기존 관료체제를 동형조직화 혹은 대처했다.


여튼, 거시적 측면에서 볼 때 이와 같은 통치환경의 차이가 이탈리아 파시즘과 히틀러의 나치즘을 갈랐다. 또한 지도자의 개인적 성격도 영향을 미쳤다.


[7장 다른 시대, 다른 장소의 파시즘]

2차 세계 대전 추축군의 패망으로 ‘파시즘’은 막을 내렸는가? 전통적인 학자들은 파시즘의 시대가 1945년에 막을 내렸다고 주장해왔다. 1963년 독일의 역사학자 에른스트 놀테는 ‘파시즘의 시대’를 다룬 자신의 유명한 저서에서 1945년 이후에도 파시즘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파시즘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 파시즘의 종말 주장은 의심받게 되었는데, 발칸 반도의 인종 청소,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동유럽에 나타난 배타적 민족주의의 심화, 영국, 독일, 스칸다나비아 및 이탈리아에서 이민자 대상으로 한 ‘스킨헤드족’의 폭력 행위, 그리고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에서 권력에 새롭게 접근하는 극우 정당의 대두 등의 현상이 바로 그 원인이다.


특히나 극우 정당의 대두가 위험현상으로 주목받다. 앞서 말한 이민자 · 동성애자등의 소수자 집단에 대한 산발적 집단 폭력은 현상 자체는 과격하지만 파시즘의 1단계라 볼 수 있고, 동부 유럽의 인종청소는 극단적이긴 하나 ‘인종적 차이’라기보다 역사·문화·종교적 차이에 가까웠기에 전통적인 파시즘의 ‘인종 배격’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극우 세력의 세 집결의 경우는 파시즘 2단계에 해당되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일반 국민의 극우지지는 보통 장기적 경제적 침체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에 이는 아직도 발전적 현상이라 볼 수 있기에 우려는 더하다.


만약, 종교적 파시즘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면,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자보다 이스라엘 내에서 파시즘이 출현할 가능성을 검토해 봐야 한다(이는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은 지금 역으로 팔레스타인들의 반 이스라엘 봉기에 ‘민주주의적 민족주의의 양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8장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간략하게 쓴다. 이 책의 저자는 파시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치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 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 법적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 라 할 수 있다.



Ps. 이 책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도 파시즘의 발현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본다.

양극화로 인한 경제적 침체의 가중화와 더불어 서민 계층의 상대적 박탈감, 다문화 정책에 대한 획일화된 정부의지, 집권 세력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부재,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인 보수층이 보기엔) 공산 세력과 진보 세력이 뒤엉켜 집권세력에 대한 도전 가속화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몇 가지 다행인 점은 가속적인 ‘특권국가’의 원천이 되는 ‘동형조직’의 부재와 ‘촛불시위’등에서 볼 수 있는 두 차례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비판세력존재 등이 진정한 의미의 ‘파시즘’국가로의 한국의 방향성을 제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은 전통적인 파시즘의 2단계 현상에까지는 이르지 않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낙관과 비관이 항상 혼재할 만큼 역동적이다. 새로운 세대들에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후에나 ‘비판적 시민의식’을 지속적으로 강조할 필요성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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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길죠? 행여나 읽으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_(_.,_)_


Ps. 다음엔 2월의 책으로 뵙겠습니다. 파렌하이트님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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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ㅋ 요약한거 잘 보고 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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