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불꽃같은 3월이 (업무로서;;) 금세 지나가고 벌써 4월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만개는 아니지만 벚꽃 망울이 팝콘 튀듯 톡톡 터지는 게 눈에 절로 들어오네요. 참 상투적인 문구인, ‘어느새 바야흐로 봄이로소이다.’ 라는 표현이 그대로 들어맞아 보입니다. 진부한 묘사란 평가는 그 자체로 그 문구의 ‘classic’한 면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만큼 공감이 가는 표현이라는 거죠. 여하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저에게 봄은 생기로서 남들 보다 빠르게 보다 더 빠르게(;;) 생기로서 답해주는 듯합니다. 페달을 밟을 때 가르는 바람의 느낌이 어느새 겨울의 그것과 사뭇 다르거든요.
그래서, 독서일기에도 좀 더 속도를 붙일까 합니다. 겨울 내내 게으름과 싱크로율을 함께 했습니다. 훑어보기만 잔뜩 했지 제대로 리뷰한 도서가 없네요. 완독한 책이 없던 것은 아닌데, 막상 쓰는 걸 외면했습니다. 밀린 책과 벌려 놓은 책들이 많아 뒤돌아 볼 수록 한숨이 납니다. 일단 리뷰가 밀린 것은, ‘대중매체 이론과 사상’, ‘맹신자들’, ‘달려라 정봉주’ 정도가 있고요, 벌려 놓은 것은 더 많습니다. ‘철학 - 사람이 알아야 되는 모든 것’, ‘정치의 발견’, ‘르몽드 세계사 2’, ‘호모 루덴스’. 엄두도 못낸 것으로는, ‘세계의 역사 1,2’가 있습니다. 독서를 취미로 붙이면서 책을 이렇게까지 귀퉁이로 밀어 놓은 적이 없었는데요, 다행인 것은, ‘철학’이 마무리 단계이고, 호모루덴스는 반환점을 돌고 있는 터라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아무래도 5월에는 맛이나 보는 차원에서 한 권만 구입하고 밀린 것에 올인해야겠습니다. 잡설은 한상 긴데, 그럼 4월의 책 프리뷰, 시작하겠습니다.
※ 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푸른숲, 2012
나꼼수의 주진우 기자가 드디어 책을 냈습니다. 제목은 ‘주진우의 주기자’, 이 ‘주기자’라는 용어는 참 많은 걸 함의하는데요, 일단 본인의 직업인 ‘기자’에 대한 직업의식과 윤리, 그리고 기자라는 직업으로 고발해야 하는 수많은 사회 부조리들을 ‘주기자’라는 뜻으로 풀이 됩니다. 또한 파고 높은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치고 있는 주기자의 지금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비상식적인 기득권이 주진우 기자를 ‘주기자’라고 하는 실제적 엄포나 횡포도 언뜻 비추는 듯합니다. ‘주기자’란 단어가 이렇게 많을 뜻을 담을 수도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기억이 기록의 지배를 받듯이, 기호(text)는 맥락(context)의 지배를 받는 게 분명한 모양입니다.
서문부터 돋보이는 점은 주진우의 책임의식입니다.
‘나는 사회가 나아지는 데 벽돌 두 장만 놓아야지 이 생각 밖에 없다. 딱 벽돌 두 장.’
위의 말은 한 기자가 본인의 문제의식을 어떻게 책임으로 치환하여 행동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례의 허식과 가식도 없이 큰 명분이나 목표도 드러내지 않고 자기 눈에 보이는 그리고 자기 손 닿는 일부터 하겠다는 다짐이 뚜렷이 보입니다. 이른바 사회적 줏대인데요, 세상사 조그만 일도 ‘나’의 이익에 따라 왔다리 갔다리 하는 저 같은 범인(凡人)이 보기에는 주기자의 행보는 크고 아름다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 좌우명 중 하나가, ‘눈치는 없어도, 염치는 있겠다.’인데요, 이 갈대 같은 소신 하나도 지키기 어려운 일개 소시민인 저로서는 감탄을 금할 수 없네요.
책 형식에 대한 인상을 간략히 적자면, 도해집과 유사한 구성입니다. 서평에서는 ‘탐정 주 기자를 직접 따라다니는 듯한 긴장감 넘치는 추적극의 재미를 준다.’ 라고 쓰셨던데, 이 표현은 책의 극적 재미를 강조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그림 해설집처럼 전체 그림을 보여주고 돋보기로 하나하나 훑고 거기에 해석을 다는 식이 더 걸맞지 않나 여겨지네요. 물론 읽는 사람에 따라 인상은 다르겠죠. 하나의 사안에 대해 탐정의 돋보기를 들이대든, 도슨트(작품해설사)의 돋보기를 들이대든 어찌되었건 집약해서 씹는 재미는 쏠쏠합니다. 그리고 책의 재미를 떠나 다음 주진우 기자의 자조어린 끄적은 그의 응원자로서는 책을 구매할 수 밖에 없는 충동을 일으키게 합니다.
“내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폭탄을 터뜨리니 거대한 정보조직이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도 않다. 혹시 물리적 테러의 위협은 없나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대비라고 할 만한 건, 몇 년 전 들어 놓은 생명보험이 전부다. 전에 정봉주가 걱정하기에 난 가진 게 없어서 무서운 거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런데 가끔 걱정된다. 뒤에서 누가 때려서 죽지 않고 평생 불구로 살면 어쩌나……. 김어준도 정봉주도 가끔 이런 걱정을 한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조금만 열심히 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검사들이, 경찰들이, 기자들이 일은 안하고 눈치만 보고 사느라 바빠서 그렇지.”
Ps. 목아돼. 힘내세요!
※ This is Art-1,100점의 도판으로 설명하는 세계 미술, 스티븐 파딩, 마로니에북스, 2011
저는 천성이 남루하고 촌 때 줄줄 흘러내리기에 새끈한 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습니다.(저는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 두어년 사이에 미학에 흥미를 붙이게 되었는데요, 이유는 하나의 ‘말빚’ 때문입니다.
일화가 좀 있습니다. 제가 여자 친구의 채근에 못 이겨 ‘사진 비엔날레’를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우연히도 사진학과 교수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야외수업 나오신 걸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기계적인 느낌(좀 미안한 묘사입니다만)이 드는 작품 해설사를 외면하고 그 교수님 꽁무니를 종종 쫓아 다녔는데요, 제가 학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질문까지 웃으며 반겨주셨기에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걸 빌미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중국 작가의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사진들이 시사하는 점들은 중국 사회의 기형적 빈부 차였습니다. 때마침 제가 한참 보던 책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였습니다. 이걸 바탕으로 그 교수님과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 교수님께서 제 전공을 물어보시고, 감사하게도 나이보다 박식하다고 칭찬하셨습니다.(깔대기 죄송합니다. _(_.,_)_ )
당장 기분은 참 좋았는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칭찬은 그야말로 허공에 뜬 것이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하고 받은 칭찬인데도 불구하고, 저는 미술이나 사진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거든요. 말 그대로 무지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니 스스로가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당장 그 다음 달에 미학 관련 서적을 사고 그 뒤로도 종종 여유나는데로 구매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말빚을 갚기에는 조약할 따름이라……. 흠. 부끄럽습니다.
서론이 긴데, 여튼 위의 책은 참 좋은 책입니다. 제가 예전에 ‘르네상스의 비밀’이라는 중세 미술 관련한 도해집을 샀었는데요, 그 때 좀 미진하게 느꼈던 부분이 깨알같이 보충 되어 있습니다. ‘르네상스의 비밀’이 한 시대의 작품 경향과 개별 작품들에 대한 해설이 주가 되었다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세계 미술에 대해 각 시대별 특징과 대표 작품, 그리고 그 작품에 대한 설명, 다른 작품과의 연계, 그리고 눈에 띄는 건 하단에 이 작품이 전체 미술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연표도 정리되어 있어 책의 편성 자체가 독자들의 적극적 읽기를 권장케 합니다.
제가 도해집은 몇 개 본 적이 없어 쉽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세간에 주로 본격 입문서로 추천되는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보다는 좀 더 꼼꼼하고 디테일하게 구성되어 있는 듯 합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태생적인 구성의 한계라 거론하기에도 미안하지만), 당대 미술사에 대한 현상과 작품 해설에 대해 치중되어 있어 그 작품들이 표출되기까지 어떤 미학적 배경이 있었느냐에 대한 고찰은 미흡해 보입니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지만, 그건 당연히 작품해설서가 아니라 미학책을 통해서 익혀야 할 문제죠. ^^
자, 오늘도 잡설만 길었습니다. 사고 나서 보니, 미술사가 생각보다 두꺼워 이 달은 밀린 걸 보겠다는 결심이 벌써부터 벅차오르네요(;;). 쓰는 걸 좀 줄이고 읽어야 되겠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이렇게 말하는 재미도 쏠쏠하니……. 루리인이여~. 손을 타자 위에 두어 댓글로 나에게 힘을! (죄송합니다. 원기옥 패러디 쿨럭쿨럭. ㅠ.ㅠ)
댓글로 힘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