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찾아 빛 따라, 김동소, 경인문화사, 2009.
지호는 책을 덮었다. 부엌의 날카로운 소리가 독서를 방해한다. 요즘 주전자는 어떻게 조형했길래 이렇게나 신통방통하게 제 울림을 정확하게 표현할까? 가벼운 의문과 함께 지호는 싱크대 안짝에 구석에 대강 던져진 다시 주머니를 열어 언제부터 놓여있는지도 가물한 보리를 주섬 담았다. 데일까 조심스레 뚜껑을 들어 올리고 기포 가득한 주전자에 가볍게 다시 주머니를 띄운 후 불을 껐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림. 앞으로 보리 알갱이는 자신이 수개월간 담은 시간을 천천히 녹여 내리라.
순간 지호는 헛웃음을 켰다. 원 참, 보리차 한 주전자 끓이고 뭔 잡생각이 이리 많은지 괜히 센치해진 자신이 꽤나 난감했다. 사실 책 때문이었다. ‘말 찾아 빛 따라’, 2009년에 경인 문화사에서 나온 책으로 지은이는 김동소. 지호가 오늘 뗀 책은 그의 대학 시절 선생님 책이었다. 2009년에 나와 아직까지 1쇄. 교양서 탈은 썼지만 사실 자서전에 가까운 글모음이니 참 그럴싸한(?) 스코어임이 분명했다. 제자인 지호 또한 지난 몇 달간 계속 보관함에 넣어두고 구매를 고민 했으니 다른 이들이야 오죽하겠나 싶었다. 그리고 책 내용 또한 일반적인 독서가들의 풍미를 자극할 만한 건 못되었다. ‘말 찾아 빛 따라’, 이 제목을 내용으로 소개하자면, 언어학에 평생을 몸 바친 노 교수가 자신이 연구한 한국어 및 여러 언어에 대한 연구 실적과 가톨릭 신자로 평생 신실했던 자신의 일화를 소탈하게 엮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학술서와 산문집의 경계에 언어학자의 삶이 오롯하게 놓여있는 셈이다.
벌써 십년에 다다른 추억이다. 지호의 머릿속에는 이 노교수에 대한 일화가 생생하게 미화되어 있다. 어느 일은 분명 사실이고, 어느 일은 해석이며, 어느 일은 애정 어린 과장일수도 있다. 특히 지호가 대학 생활을 다른 이에게 말할 땐, 마지막 세 번째의 경우가 잦았다. 존경의 다른 모습이라 변명해 보리라. 그러나 어느 기억이건 선을 넘을 만큼 부풀린 게 아님은 분명했다. 이 노교수의 강의를 들은 이라면 대개 비슷한 자세를 가졌으리라 여기면서 말이다.
첫 수업. 3월의 어수선함에 수강 변경 기간까지 겹친 이 기간은 다수의 학생들에게 날림의 대상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앞으로 한 학기나 들여다 볼 수업을 한 시간 늦게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하지만 노교수의 첫 시간은 달랐다. 이 교수는 수업의 첫걸음을 책으로 디뎠다. 이는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열의에 들뜬,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심드렁한, 책 예찬론이 아니었다. 책에 대한 상세한 기술(記述)이었다, 양장 · 반양장 · 문고판과 같은 흔히들 아는 겉장으로의 구분으로부터 시작하여 책의 크기 · 두께 · 종의 질로서의 분류, 속지 · 덧지, 띠지, 가름끈 등의 책 부분 부분의 명칭까지. 나아가 지은이 소개를 ‘읽는’ 법, 책의 출판요문 보는 방법(첫 장 혹은 마지막 장에 있는 책에 대한 전체적인 기록. 출판인, 편집인, 출판일 등이 기록된 부분), 그리고 책의 뼈대인 주석과 참고문헌, 또한 색인을 통해 잘 쓰인 책 구별하는 방법 등 책 자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한 시간이 넘게 설명했다. 빗댄다면 정육점에 걸려있는 식용 부위로 표시된 한우 그림처럼 그렇게 앳된 제자들에게 책을 ‘보여 준’ 셈이다.
그리고 그 다채로운 수업의 마무리 말은, ‘여러분이 사랑을 한다면, 누구든 그 대상을 외형부터 관찰하는 게 시작입니다. 오늘 첫 시간은 여러분이 한 학기 동안 사랑할 대상을 살펴보았습니다. 한 학기 동안 함께 열심히 부둥켜안아 봅시다.’ 창 안으로 스며드는 물오름달의 꽃 시샘에도 대학의 낭만은 살아 있었다. 그 뒤로 지호에게 교수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는 수업외 사담에서도 꽤나 소탈한 모습을 보였는데, ‘교수님과 선생님’의 쓰임에 대한 구분은 참으로 일품이었다.
“이른 바, 가르치는 이를 두고 부름말이 교수니 뭐니 하는데, 이는 지칭과 호칭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해서 그렇다. 교수는 직함이니 지칭이고, 그 교수를 부르는 말은 바로 ‘선생님’이다. 가르치는 이를 부르는 말은, 초등학생이건 중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대학생이건 모두 호칭은 ‘선생’이다. 왜 그런 줄 아느냐? 그들이 선생인 건 다만 ‘먼저 태어났기 때문이다.’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아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누구든 다음 세대에게는 선생이다. 이걸 구분하지 못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교수’소리 듣기 좋아하는 부류들은, 직함은 교수일지언정 ‘선생’은 되지 못한다. 더욱이 국어국문과에서 이걸 못 나눈다는 게 말이 되나?”
덕분에 적어도 지호의 과에서는 대다수 호칭으로 교수님이란 말을 붙이지 않았다. 사람 대 사람으로 대면하는 자세로, 가르치는 그들을 애정과 존경을 담아 ‘선생님’이라 불렀다. 이는 지호의 과에 전통 아닌 전통이었다. 물론 과의 다른 ‘교수’들은 듣는 사람 입장으로서 좀 아니꼬웠을 수도 있겠고, 학생들 또한 융통성 있게 ‘우리 과’ 안에서만 한정으로 호칭과 지칭을 구분했다.
그런 그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탈하다. 크게, ‘언어, 한국어, 문자’로의 한 부분, 그리고 독실한 신자로서 돌아본 순례기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이제는 몇 만명 단위로서만 살아남은 만주어, 일본의 소수 언어인 아이누어 그리고 그가 일생을 바쳐 연구한 한국어에 대한 연구를 그는 그의 여행담과 함께 녹였다. 여기에 박학다식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수 문자에 대한 이해(여기에 짤막하게 소개되는 문자를 나열하자면, 라틴 문자, 키릴 문자, 그리스 문자, 아라비아 문자, 이스라엘 문자, 인도 문자, 몽고족의 문자, 이디오피아 문자, 티벳 문자, 동남아 소수 부족의 문자, 일본 문자, 그리고 한글이 있다)를 덧붙여져 언어와 문자를 바탕으로한 각 문화로서의 말과 글 그리고 그 사용자에 대한 저자의 존중을 엿볼수 있게끔 한다. 다음 장에 이어지는 신앙에 대한 자기 성찰과 고백도 결국 다른 이에 대한 '존중'으로 귀결된다.
사실 책 자체는 교양서로는 두 가지 정도 지적될 만 했다. 형식으로는 수필에 가까운 글 모음이라 앎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양이 적고, 다음으로 인생의 어느 단계를 거친 이가 그동안 개간지를 통해 발표해 온 글들을 모음이라 시간의 틈이 길었다. 신장구 시버 자치구에 쓰이는 만주어를 소개하는 뒷글에 ‘1989년 8월 현재’라는 출처 기록을 보니, 한창 재미있는 드라마의 뒷부분이 궁금한 것처럼, 지금 이십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그 ‘언어’와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의문이 절로 일었다. 이는 순례담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심양 천주교회를 둘러보는 그의 소회도 89년 즈음에 머물러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념으로서 종교를 아편 취급하는 사회주의국가에서 자생한 믿음의 뒷이야기가 궁금할 법도 한데, 물리적 시간의 터울로 인해 여정의 나래가 닫혔다. 그리고 그건 이 책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반면, 책의 장점도 명확하다. 자신의 삶을 한번 뒤돌아 보는 여정에 선 지식인의 끊임 없는 호기심과 나이를 잊은 열정을, 지식에 대한 겸손과 미지에 대한 숭앙을, 평생을 접한 앎의 테두리를 마치 불을 처음 발견한 원시인의 자세로 대하는 저자의 태도는 어느 관점으로 보아도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책을 편 순간 지호는 다시 3월의 샛바람 스며드는 교실에 앉아 있는 듯 했다. 조용한 몸가짐으로 항상 사물과 인간에게 존중을 보였던,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의 조곤조곤한 음성을 다시 듣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막 강단에 서기 시작한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교수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책에 대해 말을 꺼냈다. 후배는 살짝 웃으며 답했다. 그 책. 자기가 교정본다고 꽤 힘들었으며, 교수 날인이 분명하게 찍힌 책 있는데 자기에게 일찍 말했으면 보내 주었을 것이라 했다. 지호도 웃었다. 제자 된 입장에서 책을 사야 선생님께 인세라도 가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교수는 은퇴한 지금도 도서관으로 부지런히 출근도장을 찍으며 책에 대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것도 왕성하게 말이다. 후배의 끝말로 최근 고뿔이 심하게 들다 나았는데 아직 뒷기가 있다고 했다. 지호는 서재에서 자신이 십여년도 더 전에 배웠던 전공 도서를 다시금 훑었다. 몇 권을 뽑아 가까운 시일 내 날인을 받으러 갈 생각이다. 때마침 3월이 근처에 있었다. 지호는 고개를 들어 창을 바라보았다. 아직 구름이 짙고 눈님이 오시리라 생각될 만큼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 마음만은 보름 정도 먼저 달리고 있었다. 추억은 생각보다 성큼 다가와 맴돌고 있었다.
Ps. 대학 때 제 선생님 책입니다. ^^. 여타 리뷰와 달리 좀 웃으면서 썼습니다. 형식의 과함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 일화 말고도 제자들에게 배움과 영감을 주신 일들이 많았는데요, 다 적으면 책과 아주 멀어질까봐 줄였습니다. 그리고 책 표지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는데, 한국 희곡계의 선구자인 김영보 선생이 사실 김동소 교수의 아버님입니다. 한국 최초의 희곡집 '황야에서'와 같은 표지를 사용했습니다. 신여성으로 대변되는 모던함이 눈에 띕니다. 수업 내외에 있어 김동소 교수는 본인 아버지 이야기를 종종하셨는데요, 이게 김동소 교수님의 학문적 인생과 얽혀 때론 재미있고 때론 숙연해 집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또 기회되면 해 볼게요.
요 근래 컴퓨터 이야기로 매번 마이피에 글을 올려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도음 말씀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독서 일기 관심있게 봐주시는 분들 항상 고맙게 여깁니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 _(_.,_)_
저번 내용에서 책에 대한 소개가 적은 듯 해 약간 부가해서 다시 올립니다.
- 저번 게시물의 댓글 (독서 일기는 쓴 양이 아까워서, 한 게시물당 대략 2회 정도 업로드 합니다. ^^;;)
매스티 // 매스티는 댓글 달기를 망설였다. 여기 자주 오는 마이핀데...
키로틴 // 독서 계속 하시는 거 존경합니다. 저는 독서 중단한 뒤로 다시 읽는 것이 힘드네요 ㅠㅠ
꼬라박지호 // 매스티: 아. 문장이 좀 낯간지럽죠. 이거 좀 추억을 풀어보려니 허세가 끼여서.. ㅡㅡ;;
키로틴: 맘먹고 한번 잡으시면 다시 쭉 갈겁니다. ^^ 사실 제 독서 습관은 이 교수님 영향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