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셰익스피어
중학 시절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로미오와 줄리엣’이 포함되지 않는 이유가 무척 궁금했다. 물론 지금은 대중성이 곧 작품성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수긍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주위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리어왕보다는 햄릿을, 햄릿보다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더 잘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궁금증은 더했다. 그러다 학업에 치여 잠시 그 궁금증을 잊고 지냈었는데 대학에 들어온 뒤 생뚱맞게도 국제정치학 수업에서 그 의문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답을 간략히 요약한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정치적 요소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정치는 인간이 즐기는 최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다 .’라는 인용구가 있는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이상 이 답은 분명 설득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학에서 6년이나 문학수업을 들은 지금이야 로미오와 줄리엣이 4대 비극보다 극의 완성도가 부족하기에 (예로 주인공의 성격적 결함이나 극전개의 우연성, 그리고 작품 자체의 희극성 등) 5대 비극으로 꼽지 않음을 알지만 위의 설명이 그 어떤 문학적 해석보다 더 잘 이해됨은 정치가 가지는 희비극적 요소를 충분히 알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지 아닐까싶다.
‘햄릿’을 소설로 아닌 연극의 텍스트로 읽은 것은 요번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중고교 때 수능을 위한 독서를 열심히 한 덕택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 생각한다면 극작품을 소설로 익숙하다는 것 자체가 좀 우스운 노릇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그러기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금 되새김질 한다는 것이 조금 고역스러운 노릇이라 미루다 다른 북리뷰를 다하고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하지만 다 읽고 리뷰를 쓰는 지금으로서는 역시 극작품은 극작품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을 갖게 되었다. 그 이유는 우선 ‘대사’ 때문이다. 소설로는 제대로 음미할 수 없었던 ‘햄릿’의 비통한 마음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로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To be or not to be!’, 즉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대변되는 햄릿의 대사. 이어지는 그의 폭풍같은 말들 ‘죽음은 잠드는 일! 잠이 들면 꿈을 꿀테지. 이승의 번뇌를 벗어나 영원의 잠이 들었을 때, 그 때 어떤 꿈을 꿀 것인지 망설이게 된다. 그것을 염려하기 때문에 이 고해같은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는 것이다.’등의 대사를 직접 소리내어 읽었을 때, 그 운율과(물론 번역본을 읽어 원래의 운율을 알지 못하지만)과 절절한 내용은 이미 아는 작품이라는 지겨움을 쫒기에는 충분한 것들이었다. 이틀 전에 본 ‘순정만화’라는 연극에 흥이 절로났기에 자신이 배우가 된 것처럼 대사를 읊으며 독서한 내 행동은 남이 보면 쇼겠지만 나에겐 이 가을, 재미있는 독서의 한 방편이 되었다. 덕분에 어쩌면 따분하게 읽었을 과제를 흥겹게 마칠 수 있었다.
사실 ‘햄릿’은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인 복수를 주된 테마로 하고 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하는 아들의 분노와 갈등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공감할 수 잇는 측면이다. 그러나 중세 셰익스피어 시대의 복수관과 현대의 그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햄릿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완성하는 것은 현대의 인간에게는 맞지 않다. 현대는 분명히 법률이 있고 그 법의 집행으로만이 복수의 합법적인 완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와같은 측면에서 ‘햄릿’은 복수에 대한 현대인의 욕구불만을 자극하기에 아직도 고전으로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튼 우리가 햄릿에게서 공감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실 복수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사회와 사람들로부터의 단절감과 그 단절감 속에서의 겪는 가치의 혼돈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느끼는 단절감은 궁극적으로는 복수심에서 비롯되었지만 셰익스피어는 복수극이 전달하는 극적 효과를 넘어서서 혼돈과 대립으로 가득한 세상과 그 속에서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비극적 통찰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적 통찰은 햄릿의 이상적 가치와 대립하는 사회의 현실에서 비롯하여 그의 내면의 갈등과 혼돈으로 표혀되고, 결국 사회 전체의 혼돈과 파멸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의 복수는 단순한 개인적인 복수의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 전체의 잘못된 가치에 대한 대립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행하는 개인적 복수로 인해 비극적인 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햄릿의 비극은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찬 당시 덴마크 사회의 부패한 상황에서 진정한 옳음을 위해 고민과 갈등을 겪다가, 결국 자신도 그 일부임을 자인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햄릿이 겪는 단절된 사회, 즉 감옥의 이미지는 당대의 사회 나아가 인간의 삶 자체를 대변한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고 삶의 모순을 고독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죽음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내용으로 햄릿을 파악했을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다름아닌 우리의 분단 문학의 대표작 최인훈의 ‘광장’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광장의 주인공 명준 또한 자신에게 쓰여진 사회의 굴레를 결국 벗지 못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분명 햄릿과 명준은 닮았다. 이는 고전이 왜 고전임을 말해준다. 작품에 내포되고 있는 그네들의 삶이 작품의 시대와 배경을 넘어 아직까지의 현실에서도 새로운 독자들에 의해 재해석됨으로서 현실의 연장선상에 위치할 수 있어야 고전으로서 그 가치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햄릿의 고뇌는 현재의 우리의 고뇌이며 이 고뇌는 앞으로도 고민해야할 대상이 됨을 ‘햄릿’은 아직도 전하고 있는 것이다.
Ps. 요 근래 업무가 바빠, 새로 쓸 심리적 여유가 안나네요. 그래서 대학 때 쓴 걸 조심스레 올려봅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고마움을 느낍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_(_.,_)_
깊게 읽는다는게 이런 느낌인가 싶군요.
잘 보고 갑니다. 정치적 요소는 인간최대의 엔터테인먼트란 말도 기억에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