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동녘, 2012.
황혼에 선 철학가가 전하는 현대인을 위한 조언입니다. 부제에서 보이듯 저자는 ‘현대’라 불리는 이 시기를 ‘유동하는 근대’ 라 부르는데요. 이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이 이 철학가가 주창하는 핵심입니다. 펼친다면, 근대는 뿌리의 사회, 불변의 사회, 자아 정체성이 공고한 사회, 사고(思考)의 사회라면, 현대는 이와 대척점을 지닌 흐름의 사회, 변화의 사회, 타자에 비추는 사회, 반응의 사회라는 정의입니다. 이 변화에 저변에는 자본주의가 급류처럼 내달리고 있고 그 가속은 한 개인이 자신에게 침전하고 반성하고 그로 인해 자존감을 획득하는 ‘고독’으로서의 여유를 앗아간다는 거죠. 급변하는 시대를 맹목적으로 따르도록 내몰리는 대중은 스스로의 힘으로 멈춰 홀로 줏대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점차 잃어 갑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개인으로서 맞이하는 실존적 허무가 무엇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카카오 톡이나 페이스 북 같은 기술로서 규제된 유대에 점차 매몰되어 가죠. 결국 개인으로서의 고독을 잊기 위해 군중으로서의 고독으로 뛰어 들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파편과 같은 유대 관계 속에서 돋보이는 아니 겨우 잊히지 않는 한 조각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죠. 그래서 본인의 정체성은 오히려 타인이 선호하는 허상으로 에워싸이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떠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쉽게 닉네임을 갈아타는 것처럼, ‘온라인에서의 개인의 정체성은 날씨에 맞춰 입고 벗는 가벼운 외투처럼 언제든 처분 가능한 것이 되었고, 사회적 유대관계는 장기적이고 고정적인 게 아니라, 내가 원할 때 맺고 끊는 일시적인 접속으로서 언제든 처분 가능한 것’이 되었다고 글쓴이는 지적합니다. 작용 · 반작용의 법칙은 물리의 세계에서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나의 편리는 곧 내가 편리하게 이용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래서 지은이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러 개의 가면을 쓰게 된 현대인들에게 충고 합니다. ‘삶을 얻기 위해 고독을 찾으라.’라고요. 스스로 거머쥔 고독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선택한 가난은 영혼의 자유로움을 갖게 한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철학이란 산은 관대해서 어느 길이라도 선택하여 등반하면 어느 정도의 높이에서는 일정한 깨달음을 갖게 하는 모양입니다. 여하튼, 작가는 자신이 걸어 온 그 철학의 여정에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을 더해 깨달음을 툭 던져주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액체근대에서 겪는 소외감과 불안감의 여러 증상, 예로 급격한 세대 차이(근대와 액체 근대의 차이는 시간상으로는 한 세대에 불과하지만 갖는 함의는 몇 세기를 뛰어 넘는 근본적 차이임을 기술합니다), 트위터로 대변되는 약한 유대, 소멸하는 프라이버시, 깊어지는 경제적 불평등, 그로 인한 계층의 고착화, 다수를 이루는 서민들의 공포, 그 공포를 파고드는 종교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여러 이슈를 가지고 때로는 스쿠버 다이버처럼 깊게, 때로는 빠르게 원형을 그리는 수상 스키처럼 다양한 소재를 포집하며, 그 증상들이 어떤 형태로 빗어 나오는가를 주의깊게 살핍니다. 그리고 하나의 시사점을 던집니다. 적극적으로 선택한 규범과 질서는 개인을 자유롭게 하며, 이와 같은 자율은 삶에 대한 자세에 절제와 중용을 더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는 말받침을 전달합니다. 어려운 내용인가요? ^^ 뭐, 저에게도 어려운 내용입니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 자체가 딱딱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이 책이 편지 모음으로서 단촐한 형식미를 책 전반에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책은 기획 단계서부터 이탈리아 일반 여성 독자들을 상대로 한 잡지의 정기 기고문을 목적으로 한 터라 까다로운 철학 개념도 일반적인 수준의 흥미를 가진 사람이면 접하기 쉽게 일상적인 비유와 예시로 꾸며져 있습니다. 반면, 단점 또한 일정한데요. 우선 번역서 특유의 딱딱함이 책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나오는 일화나 용어 대한 주석이 다채롭지 못해 읽는 도중 흐름을 끊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번역서를 볼 때 아예 전자 사전을 손 옆에 두고 읽는 게 습관이라 흐름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만, 대개의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오기에 충분한 경우도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꼭 한 번 접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간다면, 이 책은 독자들에게 지식을 전하는 것도 그 목적이겠지만, 결국 독자가 이 책을 읽음으로서 복잡다난한 일상사에서 잠시 벗어나 자의적으로 ‘고독’을 영위하게끔 하는 태도를 기르는 데 목적이 있다 볼 수 있습니다. 44편의 편지글은 적어도 한 달 동안 44번의 고독과 벗 삼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고로 자정이 다가오는 11시쯤 핸드폰을 끄고 스탠드 불빛에 기대어 읽어 보시는 게 어떨까요? 가을이 어울릴 법한 책이지만, 선선한 바람이 부는 지금 같은 초여름 밤도 괜찮습니다. 웃세대의 부드럽고 진중한 조언에 귀기울이기 딱 좋은 시간대이지 않습니까?
Ps. 휴. 여러분 제가 돌아왔습니다. (기는 커녕 너무 오랜만이라 아직도 독서 일기를 기억하시는 루리분이 있을까 걱정입니다;;) 적은 양이라도 꾸준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관심 있게 읽어주시고 정겹게 댓글 달아 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_)_
클라시커 // 오 간만이어요. 잘지내시나보군요 ㅎㅎ
루카스777 // 좋은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꼬라박지호 : 클라시커// 옙! 살만 뒤룩뒤룩 찌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님께서도 잘 지내시죠? ^^
루카스77// 아니요. 관심있게 봐주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