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윗그림은 가림다 문자의 형태라 주장되는 문자 체계입니다.
언제 적었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우연한 계기로 발견해 올려 봅니다. ^^;; 제 기억이 맞다면 07년이지 싶어요.
가림다 기원설에 대해 현재의 국어국문학계의 통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림다 문자는 그 글자의 일람표가 환단고기라는 책 속에 나오지만 훈민 정음 이후 후에 조작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발해 문자라고 알려진, 한자 또는 여진 문자와 비슷한 문자가 압자와(글자가 새겨진 기왓장) 파편에서 수십 자 정도 확인된 바 있으나, 아직 확실한 것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원래 하나의 독립된 문자라는 성립하려면 여러가지 조건이 검토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글자 몇 개만 발견되었다고 해서 문자 체계 전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운론적 측면에서 문자가 음운이랑 어떤 연관을 맺고 있었고, 그 문자가 단어, 즉 형태론적으로 어떻게 쓰였으며, 통사론적으로 문장의 구조가 어느정도 파악되어야 비로소 문자 체계라 분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단고기를 믿으시는 님들은 증거 부족이라는 이와 같은 논의에 일제 시대에 이에 대한 자료가 모두 훼손된 되어 증거 자료가 남지 않았다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인 자료 이전에, 한국어의 변천사에 비추어 볼 때도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가림다 문자에는 ㅇ, ㄴ, ㄱ, ㄹ 등의 한글과 비슷한 글자가 보이나 ㅈ, ㅊ, ㅍ의 글자도 분명 있습니다. 이게 논리에 맞지 않다는 겁니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고대 한국어란, (자료 기준의 분류로) 자료가 처음 나타난 5세기 초부터 13세기 말까지의 한반도 일대에서, 주로 한자 차용 표기 체계에 의해 기록을 남긴 한국어를 말합니다. 고대 한국어의 음운 체계는 여러 자료를 분석하고 특히 전통 한자음을 분석해서 얻은 결론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음: ㄱ, ㄷ, ㅂ, ㄴ, ㅁ, ㅇ, ㄹ, ㅅ, 반자음 j, ㅎ, ㅈ
모음: ㅣ, ㅓ, ㅏ, ㅗ, ㅜ
물론 위의 글자는 현재의 발음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ㅎ,ㅈ'음은 삼국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음소로 정착되었다고 추정됩니다.(너무 전공적인 내용은 생략할게요. ^^) 자료의 검토로, 'ㅎ'음은 12세기 초 <계림유사>를 바탕으로 형성된 듯 보이고, 13세기 중반의 <향약 구급방>을 검토하면 'ㅈ'음이 이때쯤 음소로 확립되었으리라 믿어집니다. 'ㅎ'음이 생겨야 비로소 지금의 'ㅋ,ㅌ,ㅍ,ㅊ'의 유기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림다 문자에서는 자음'ㅈ,ㅊ'이 존재할 뿐더러 중세 한국어 시대야 생기는 'ㅑ,ㅕ,ㅛ,ㅠ,ㅒ' 모음도 적혀 있습니다.(세종대왕님 때만해도 'ㅔ'를 'ㅓㅣ'라고 읽었습니다. 당시에도 ㅔ라고 썼지만 실질적으로 'ㅔ'라고 발음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 때의 표기가 지금의 'ㅊ',이나 'ㅔ'의 발음에 그대로 대응한다고 확언할 수 없으나, 일반언어학적 측면에서 볼 때 가림다 문자가 한글의 어버이 뻘인 문자체계가 되려면 위의 표기가 최소한 비슷한 음으로 발음되어야 됩니다. 여기서 가림다설의 모순이 생깁니다.
한국 자료 뿐만 아니라 중국 자료 및 기타 자료등을 모두 포함한 종합적인 자료들이 5세기 무렵에 'ㅈ,ㅎ,ㅑ'등의 발음이 한국어에는 아직 생성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데, 어떻게 가림다 문자에 ㅈ,ㅊ, ㅑ, ㅒ 등의 문자가 있을 수 있습니까? 물론 모음의 경우에야 실질 표기와 발음이 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음의 경우, 특히 'ㅎ'음의 발생 시기와 유기음과의 관계로 비춰 볼 때 한글의 가림다 기원설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Ps. 여기 나오는 고대 한국어에 대한 관점은 영남학파(김동소)의 관점입니다. 경기학파(이기문)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순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큰 틀에서 볼 때 전체적인 개요는 엇비슷함을 알려드립니다.
아래 피엠졸님 댓글에 대한 상세 답변도 적어 봅니다.
훈민정음이 분명 세계 문자 사상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문자라 할지라도, 이전의 어떤 문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무에서 창조는 신의 영역이라고 할 수밖에;;)
현재로서는 중국의 한자와 파스파 문자의 장점을 많이 도입했으리라 믿어집니다. 한자의 경우는, 훈민정음이 음소 문자이면서도 음절단위로 모아 쓰는 점을 들 수 있고(모아쓰기 방법은 한자 외에도, 서하 문자, 거란 문자, 여진 문자에도 있었고, 세종이 이를 분명 검토해봤을거라 추측됩니다.) 한자보다 더 중요하게 참고 했다고 믿어지는 문자는 '파스파' 문자입니다.
[세종실록]의 102권, 세종 25년 12월조 끝에, "이 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셨는데, 그 글자는 '고전'을 모방한 것이다."라고 적혀 있고, [훈민정음해례]의 발문에서 훈민정음 학자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도 "1443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어 간략히 용례와 뜻을 들어 보이시고, 이름하여 훈민정음이라 하셨다. 형상을 본뜨되 글자는 '고전'을 모방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고전(古篆)'이라는 글자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길이 없어, 훈민 정음의 문자 계통을 지금까지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훈민정음 학자들이 그 이전의 국내외 여러 문자를 수집하여 장단점을 비교, 검토하고 참고해 보았을 것은 명확한 일일 겁니다. 그들이 참고 할 수 있었던 문자는 한자를 비롯하여, 범자(산스크리트 문자), 티벳문자, 거란문자, 서하문자, 여진문자, 일본문자, 몽고 문자, 파스파 문자 등이었을 것인데, 이 중 훈민 정음의 자형이나 구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글자로 흔히 '파스파' 문자를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위의 '고전'이라는 말로 인해 파스파 문자가 어떻게 '고전'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308년 원나라 시대에 출판되었고, 훈민정음 학자들과 특히 신숙주의 [사성통고]의 편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믿어지는 [몽고자운]이라는 책머리에 '전자모(篆字母)'라 하여 98개의 파스파 문자의 전자 총괄표가 실려 있었습니다.
(파스파 문자의 모양 참고는 아래의 링크에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jorang2642?Redirect=Log&logNo=59852616
이 중에서 우리는 'ㄱ,ㄹ,ㅌ,ㅈ,ㄷ,ㅿ,ㅂ'등과 비슷한 모양을 가진 글자들을 쉽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또 파스파 문자가 '사각형을 하고 있는 문자(Quadratschrift)'라는 점도 그렇고, 그 이전의 여러 문자와는 다르게 한 글자가 한 음소만을 나타내는 완벽한 음소 문자이면서 초성 글자를 종성 글자로 쓰는 점 등은 파스파 문자와 훈민정음 사용법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만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세종실록]이나 [훈민정음 해례]의 '고전'이라는 말이 혹시 '몽고 전자(蒙古篆字)' 줄임말인 '몽전(蒙篆)'의 우회적인 표현이 아닐까 추측되기도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며 분명하게 알 길은 없습니다. ^^;;
간나새끼같은 일본새끼들 이론, 산크리스트어, 가림토, 한자등등 싹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