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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마초, 페미니즘과 질주하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다시쓰기 (1) 2015/05/30 AM 11:04

1. 마초, 페미니즘과 질주하다.

황량한 사막. 풀 한포기 보기 어려운 모래벌판 위에 쌍두도마뱀을 우걱우걱 씹는 남자가 있습니다. 주인공 맥스죠. 물과 기름이 절대 권력의 원천이 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회에서 맥스는 방향성을 상실한 유령 같은 존재입니다. 반복되는 혼팅(haunting)과 함께 밀려오는 죄책감만이 그의 삶을 지탱할 뿐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이미 예전에 지인들의 죽음과 함께 묻어버렸습니다. 핸들 없이 질주하는 8기통 엔진의 머슬카.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전작의 동시대, 1980년대 횡행했던 마초 영화와의 차이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매드맥스’로 표현되는 마초상은 ‘남자가 여자를 보호한다.’는 행동의 겉모습만 유사하고, 그 남자다움은 인물이 지향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단지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의 중첩이나 극중 벌어지는 우연 속에서 살기위해 아등바등 설친 결과에 불과합니다. 대개의 ‘가족과 가치의 수호’라는 목적의식이 뚜렷이 보였던 여타 영화의 주인공들과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이죠. 이번 작,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의 맥스는 정말 재수 없게 지나가다 몇 대 맞고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휘말린 경우에 불과합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은 작품 전반 속 남자 주인공의 성향에 대해, ‘매드맥스는 삭막한 세상에서 남성이 살아가기 위해 취해야할 정당한 태도를 보여준다. 여성을 보호하고 지킨다. 그리고 그 여성은 스스로 일어서서 싸운다.’라 평하며, 이번 영화는 남성 위주의 관점을 유지한 채 여성주의를 끌어안고 있다고 표현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남성에 대한 묘사를 주인공을 중점으로 풀이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번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주인공을 제외한 여타 다른 인물들을 봤을 때, 성별로서의 선악구분이 굉장히 명확한 작품입니다. 올해 최고의 페미니즘 영화라 평가받는 원인은 이런 성별의 이분법적 도식화를 영화 전개의 주요 원동으로 한 설정에서 비롯된 거라 봅니다. 줄여 말한다면, 이 작품은 여성성이 여러모로 ‘희망’입니다. 새로운 여성상으로 돋보이는 ‘퓨리오사’부터 임모탄의 번식도구로 사육당하길 거부하는 여성들, 그리고 이들을 조력하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모계집단의 할머니들까지. 영화는 여러 여성상을 보여줌으로서 결국 모성의 회복이 사회의 구원임을 강조합니다. ‘엄마의 우유’라는 소품(?)이 젖줄로서 내내 부각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임모탄’으로 정점을 찍는 남성성은 폭압적인 지배계급이자 불완전한 ‘주류’입니다. 영화 내내 남성은 지독할 정도로 핏줄의 영속에만 에너지를 쏟죠. 공동체의 그 많은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여성들을 뒤쫓는 주된 까닭도 여성에 대한 ‘감정’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그 여성이 지닌 ‘자손’에 있습니다. 그 핏줄에 대한 집착은 어떻게 보면, 남성 자체의 본능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 지점에서 감독은 남성성에 대한 또 다른 묘사로 집착의 사연과 집착이 빗어내는 행동의 근원을 설명합니다.


임모탄의 집단, ‘워보이’의 지배계층은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모조리 장애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기 같이 왜소한 눈, 비만으로 얼룩진 발, 건장한 체구지만 콧줄을 달고 지적능력에 의심이 가는 근육으로 표현된 여럿처럼 말입니다. 이와 같은 묘사는, 죽음 남자 아이에 대한 그들의 외침으로 결말이 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완벽한 남성은 모체와 함께 죽어버린 ‘태아’입니다. 남성성으로의 미래는 완벽히 거세되었다는 사실의 상징이라 보입니다. 거기에다 이 완벽한 남성에 대한 집착은 어떻게든 이름으로 남기려는 집단의 외침으로 마무리 되죠. 너무도 처참하게 비루해서 내 안의 가부장을 한번 게워낸 것 같은 역설적인 개운함마저 느껴집니다. (덧붙여, 남성은 내세의 천국을 갈망하고 여성은 현세에 낙원을 이루려는 지향의 차이도 참 이채롭습니다)


영화를 벗어나 말씀드린다면, 아무래도 올 한해는 여성이 강조되는 해라 봐야겠습니다. 특히나 미국에서 말이죠. 지금 그곳의 박스오피스에선 여성 중창단의 이야기를 다룬 ‘피치 퍼펙트2’가 1위이고, 그 뒤를 따르는 작품이 바로 ‘매드맥스’입니다. 슈퍼맨의 여성화인 ‘슈퍼걸’이 케이블 드라마에서 화제로 떠오르는 것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이는 그 동네 전반에 걸친 이해로도 이어지는데요, 미국 민주당의 유력주자인 힐러리가 대세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으로 굳어지는 경향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공화당내 선거 브레인들이 여성주의 문화 확대를 경계한다는 후문이 그리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바탕으로 둡니다. 영화가 ‘세상의 창’이라 불리 게 빈말이 아닌 경우죠. 여러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재미를 줍니다.


물론, 이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페미니즘을 위한 영화가 아닙니다. 여주인공 샤를리즈 테론은 시사회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적 시각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밀러 감독이 지닌 인간에 대한 이해 때문에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에 영화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남성성을 인류문명의 문제점으로, 여성성을 그 해결책으로 대척점을 두는 고착화된 이분법적 구조해석에는 동의 할 수 없지만, 역사적으로 이어온 가부장적 사회(가부장적 사회가 남성성과 등치되지는 않겠죠)엔 분명히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성적 패러다임의 전복(顚覆)에 항상 이유와 의미를 두고 싶은 건 이 때문일 것입니다.



2. 한도를 넘나든 스타일, 그리고 속도.

미친 영화란 표현을 우리는 자주 쓰게 됩니다. 그런데 제목부터 미쳐버린 이 영화는 이변이 없는 이상 올 한해 가장 확고하게 미쳐버린 작품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예상이 됩니다. 펄떡 뛰는 날것의 스타일로서 말이죠.


극 초반은 괴랄한 공포 영화의 클리세를 그대로 따르는 듯합니다. 한바탕 액션 뒤에 답답할 정도로 눌러대는 암흑과 그 속 기괴한 모습의 좀비 같은 사람들. 그리고 맥스의 등에 새겨지는 끔직한 문구와 끓인 쇳덩이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낙인은 관객을 불쾌감의 가운데로 몰아세웁니다. 마치 필름 사이사이를 난도질 한 것처럼 끊어지는 컷 신과 그 신 사이를 비집고 득달같이 쏟아지는 메탈 연주는 탈주의 긴박감을 온몸으로 체험케 합니다. 황량한 사막과 생존욕구만 그득한 풍경들을 덤으로 두고 말이죠.


매드맥스는 굉장한 속도감을 작품 내내 유지합니다. 내달린다는 묘사가 딱 들어맞는 건, 먼저 ‘카체이싱’을 소재로 영화의 기본문법으로 꾸몄다는 게 근본 원인이겠습니다만, 그것만은 아닙니다. 배경 구성과 사건 전개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점이 더 크다고 봐요. 매드맥스는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나 액션의 전개는 4차선 고속도로에서 벌어지듯 엄격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퓨리오사의 큰 전투차량을 중심으로 폭력의 초점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위에서 벌어지고 그 위에서 떨어지죠. 이와 같은 장소의 제한인 듯 제한 아닌 제한 같은 구성은 포커스의 집중을 낳는데요, 준비된 장비에 비해 자잘한 액션 컷이 돋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덕택에 액션영화치고 장면 사이사이에 의외로 인물들의 표정연기가 강조됩니다.


다음으로 모든 사건 전개가 단막극의 연속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도 특이합니다. 대개 한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가 흐름을 가지고 결말을 향해 완만한 상승곡선 그리고 절정 후 하강 곡선을 그리는데, 이 영화는 톱의 날처럼, 벌어지는 사건의 인과관계 및 기승전결이 한 15분 내로 완성되어 끝을 맺습니다. 특히 극 초반 탈주신 연출은 이런 구성의 백미죠. 더욱이 시간 흐름에 맞춰 장면까지 전환되니 속력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습니다. 줄여 말한다면, 이런 팽팽함은 연출 장소에 제약을 두고 전개 시간을 분절했기에 가능했다고 평할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은 속도감은 내러티브에 대한 보완까지 가능케 합니다. 전작과 별개의 영화임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에 대한 서설이 작품의 마침표까지 없다는 건 여타 다른 작품이라면, 약점으로 지적될 법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애당초 감독의 의도 자체가 내러티브의 단순함을 사건의 연속으로 밀어버리려는 뚝심에 있어 보입니다.


덤으로, 효과음과 음악에 대해서도 한마디 안할 수가 없네요. 전장의 북소리도 북소리거니와 기름 불꽃과 함께 기타를 연주하는 붉은 옷의 워보이는 주인공 이상의 인상을 남깁니다. 기괴한 캐릭터들이 그야말로 장면과 더불어 액션에 녹아나는 연출 보면, 거장이란 단어의 무게감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영화 자체가 헤비메탈 뮤직비디오의 연속으로 보일 지경이니까요. 무엇보다 음향상이 기대됩니다.



3. 내러티브. 그 단순함과 복잡함.

매드맥스의 내러티브에 대해 흥미로운 논쟁이 있는데, 이론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매드맥스의 내용을 단순하다고 평하는 분들도 있고, 오히려 드라마가 꽉차있다는 평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듀나의 평 중 한 문단을 인용합니다.

< 그렇다고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내용이 없이 오로지 액션만을 담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영화가 드라마를 담는 방식은 여러 모로 본받을 만하죠. 대사가 별로 없고 장황한 배경 설명도 없지만 캐릭터와 드라마는 이 시리즈에 속한 그 어느 영화보다도 꽉 차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을 주도합니다. 아까 발레 비유를 들었는데, 이 영화의 드라마가 빈약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백조의 호수]의 파드되가 그냥 무용수의 손짓과 발짓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보통 영화에서는 대사가 맡을 이야기 전개를 액션이 맡는 거죠. 맥스, 퓨리오사, 눅스가 처음 만나는 부분을 보세요. 그냥 고함을 지르며 서로에게 주먹질이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의지와 입장이 복잡하게 충돌하는 무척 수다스러운 장면입니다. 영화는 단순한 게 아니라 무성영화스럽습니다. >


평이 이렇게 갈리는 이유는 ‘내러티브’를 정의하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내러티브는, “실제 혹은 허구적인 사건을 설명하는 것 또는 기술(writing)이라는 행위에 내재되어 있는 이야기적인 성격을 지칭하는 말”을 지칭하는데요. 정의 자체가 혼재된 부분이 있습니다. 이를 쉽게 설명하려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란 단어로 바꿔 생각해 보면 되겠습니다. 스토리텔링은 다시 스토리와 텔링으로 구분이 가능한데, 스토리(Story)는 사건 자체가 지닌 이야기로서의 힘. 텔링(Telling)은 그 이야기를 보다 재미있게 풀어내는 힘이라 의미구분하면 됩니다. 다시 말해, 단순하다란 평은 간단한 스토리(Story)에, 풍성하다는 평은 풀어내는 텔링(Telling)에 방점을 찍은 시각입니다. 저는 평화로운 사람인지라 이야기의 줄기 자체는 간단한데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정밀하다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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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관련해 썼는데, 글이 엉성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제 글쓰기 실력이 부족한 건 마땅한 사실이기에 고맙게 봤습니다. 그래서 좀 더 구성을 튼실히하고 무심코 이은 내용들을 재정렬해 쉬운 표현으로 다시 써봅니다. 그럼 즐거운 주말 되세요~~.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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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나나미    친구신청

매드맥스에 페미니즘 요소가 대부분이였는데 전혀 눈치 못채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ㅡㅡ
영화광고를 마초처럼 했다고 딱 그 광고 수준에서 감상한다는게 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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