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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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배경이 전면에 오롯히 서는 영화, [레버넌트] (0) 2016/01/17 AM 08:15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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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아버지와 아들이 있습니다. 살육과 약탈이 삶의 문법으로 흐르는 시대, 아등바등 살며 내일보다는 생존을 위해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곳. 아직 미국이란 국가가 제대로 된 외형을 갖추기 전인 서부개척시대 이전, 법이 만인의 행동 규약으로 모든 장소를 점유하지 못해 때론 빗겨서 개인과 개인의 사적 폭력을 인정하는 문명의 반대쪽. 그곳에서 이 둘은 모피를 구하며 서로를 돌봤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죽고 아비는 복수를 다짐합니다. 아비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수천 킬로의 기나긴 여정에서 살아남아, 자신을 버린 아들을 죽인 동료를 쫓아 그 복수를 완성하려 합니다.


이렇듯 영화 레버넌트의 얼개는 살아남은 아비의 복수극을 바탕으로 두고 있으며 극 전개 자체는 큰 복선 없이 단조로운 편입니다. 그런데 꽤 구조적이지요. 주인공의 집념은 복수라는 감정을 원동으로 하지만, 그 행동은 사냥이라는 행위로 나타내집니다. 영화의 주요 테마 자체가 헌팅(hunting)이라 여겨질 정도입니다. 포식자와 피식자 간의 관계가 대상을 달리하여 반복적으로 펼쳐집니다. (남우조연상 후보로 올라 마땅한) 회색 곰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반신적 존재(아리카라족 인디언)가 이 사냥이라는 주제로 맞물려 막에 따라 변주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다른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은, 집요하고 극단적인 클로즈업 초점으로 비춰진 ‘휴 글래스’라는 인물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멀리서 관조하는 배경, 대자연이라 볼 수 있습니다. 광활하고 냉정한 자연 속에서 인간의 일은 애완병 속의 개미처럼 멀리서 관찰당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은 이중적인 태도로 다가옵니다. 생존을 위한 주인공의 고군분투 속에서 자연은 냉혹한 관찰자이자 방관자적 존재이기도 하고,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을 제공하는 전통적인 신화적 존재로 때론 작은 행운도 마련해 줄줄 압니다. 물론 더 큰 비극의 전초로 말입니다. 감독이 촬영에 있어, 인물에 있어서는 극단적인 클로즈업, 배경에 있어서는 파노라마의 극치를 반복해 보여준 건, 관객의 눈길을 받는 주인공 뒷편을 받치는 무대도, 연기를 이끌어 내는 연출자도 극의 주요 등장인물임을 강변하고자한 의도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배경의 압도적인 영상미와는 어울리지 않게 인물의 디테일은 크게 표현되지 않고 배경의 일부로서 머뭅니다. 아비와 아들의 감정적 유대도 단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단어가 주는 일반적 수준에 그칩니다. 제가 한 아이의 아빠라서 ‘my son’이란 단어 하나가 주는 무게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지만, 그 외의 관객에게도 충분히 공감될 수 있는 지에는 다소 의문이 드는 편입니다. 이는 주인공을 버리고 간 반동인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람쥐가 신’이라는 대화로만은 반동인물의 행동 당위에 대해 충분히 풀어내지는 못하는 느낌입니다. 인물 표현이 절제된 것이 감독의 의도인지 아니면 부주의인지 뭔가 모호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 등장인물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부분입니다. ‘휴 글래스’의 인디언 부인은 현실에 빗겨나 존재로서 구원이란 추상적 명사의 실제적 묘사이나, 구원 자체라기보다는 구원에 대한 신기루를 표현했다고 보이며, 특히나 아리카라족 추장 딸의 경우는 신벌을 면하기 위한 인위적 설정에 불과하다고 보입니다. 추격의 마지막 장면, 복수의 실현에서 있어 인간의 복수를 신의 형벌로 치환하고자 하는 전통적인 그리스 비극을 연출되는데, 그 형벌 속에서 주인공이 신벌을 면할 이유를 마련해주기 위해 감독이 배정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 인물에 그칩니다. 이 이유 외에 굳이 이 인물이 등장해야하는 까닭을 모를 정도입니다.


정리하자면, 저는 이 영화의 주인공을 ‘자연’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감독의 의도이냐 아니냐는 해석의 차이라 생각됩니다. 모든 등장인물이 자연이 배정한 미리 속박된 관계(피식자와 포식자)에서 아등바등 다투며 머뭅니다. 맷 데이먼이 주연한 마션에서 두드러진 인간의 결연한 의지와 생존을 위한 투쟁적 본능은 이 영화에선 보이지 않습니다. 혹한 속에 부러진 발로 기어 다니고, 썩은 동물 사체의 골수를 뽑아 먹으며, 얼음 강물에 뛰어 들고, 말 속에 피투성이로 파고들어도, 이는 운명을 거스르는 인간이라기보다 운명에 속박된 인간으로서의 ‘순응’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도 영화의 해석 자체가 갈릴 수도 있겠습니다.


1월 14일, 제 88회 아카데미상 후보가 발표 되었습니다. 레버넌트는 최다 12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되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남우주연상에 지명되었습니다. 이로서 오스카를 향한 그의 5번째 도전이 시작되었는데요. 공교롭게도 또 다른 유력 후보로서 마션의 ‘멧 데이먼’이 선정되었습니다. 아카데미의 선택이 대개 환경이 주는 시련을 감내하기보다 진취적으로 맞서는 근대적 인간의 모습임을 감안했을 때, 저로서는 이번 디카프리오의 도전도 좌절로 이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예측을 해봅니다. 한편으로는 생간을 씹고, 날 생선을 먹고, 사체에 파고들기까지 했는데 여기서도 못 받으면 디카프리오가 더 이상 뭘 해야겠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디카프리오가 제 예상과 달리 수상의 기쁨을 안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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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스포일러가 영화 감상에 심각한 방해가 되는 영화가 있고, 아닌 영화가 있지요. '식스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가 전자라면, '위플래쉬', '레버넌트'는 전적으로 후자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의 완성도 보다 촬영의 기술적 성취에 집중했기에 보다 넓고 음향이 보장된 곳에서 체험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러면 다들 즐거운 일요일 되시길 바랍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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