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8 목 16:21
※ 파시즘, 로버트 O. 팩스턴, 교양인, 2005
p.125 ~ p. 190.
08년 6월 6일. 나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서 있었다. 한쪽에는 북파공작원 모임이 위령회를 진행 중이었고, 반대편에는 촛불문화제가 흥겹게 진행되고 있었다. 위령제와 문화제. 이 상반된 분위기의 경계는 조그만 선이 전부였고, 이는 상이한 두 집단의 충돌을 의미했다. 또한 검은색 복장의 다 어린 전경들도 있었고 그 보다 더 어린 교복의 학생들도 있었다. 이 다양한 군상 속에서 공통점은 이들 모두 (전경을 제외하고) 집단적 의사표현의 행동적 양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 보고 어느 정치인은 '대중 독재론'의 아류라 이름 붙이기도 부끄러운 '천민민주주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고, 또한 학계에선 이런 역동성의 폭발력이 두려웠는지 '일상적 파시즘', '우리안의 파시즘' 논쟁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과연 '파시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책의 머리글에는 이제 파시즘이란 개념이 기호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고 기호 표현만 남은 무의미한 말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와 같은 파시즘의 남발은 오히려 파시즘의 정체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고 강조한다. 파시즘을 정확한 기술적 용어로 쓰지 않고 일종의 유행어로 안이하게 남발하는 것은 파시즘을 예방하기보다는 오히려 파시즘의 독성에 무감각해질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진짜' 파시즘이 출현하더라도 우리 모두 양치기 소년 증후군에 중독되어 파시즘을 알아 보지 못하게 될 우려가 다분한 것이다.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의 '한국편'에서, 한, 중, 일을 단 한자로 표현하자면, 중국은 一, 일본은 和, 한국은 忠으로 정의 내렸다. 여기서 충은 전통적인 지배체제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어느 사안이든 그것에 극도로 기운다 라는 의미에서 忠의 의미인 것이다. 안창호 선생님께서는, '어느 사상이 들어오면 조선의 사상이 되어야 하는데, 사상의 조선이 되어버리고 만다.' 는 발언으로 이에 대해 경계하셨다.
특히나, 한국인은 양면적인 모습을 보인다. 공공재의 취득에 있어서 개인의 손해가 났을 때는 배타적 태도를 보이면서, 기존의 구축된 특정한 시스템으로 입은 손상을 극복하고 했을때 벌어지는 반대급부적 측면의 손해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개인성을 바탕으로한 역동적 응집성은 한국인을 파시즘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는 충분한 토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여러 의문이 이 책을 들게 만들었다. 이 책 파시즘을 파시즘의 준동, 탄생, 뿌리내리기, 권력 장악, 권력 행사, 급진화 정상화, 다른 장소 다른 시대의 파시즘을 모두 고찰한 후에야 비로소 파시즘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지금까지 파시즘에 관련된 책들이 무솔리니나 히틀러의 개인적 파괴력에 집착하고 있다면, 이 책은 파시즘의 양태에 대한 전반적 상황 특히나 배경 사상이나 지지층에 대한 분석을 모두 분석함으로서 어렴풋이 보이는 '파시즘'에 대해 현미경을 대고 특정 상황을 핀셉으로 집어낸다.
오늘 본 페이지는 파시즘의 전조와 뿌리내리기 부분이었다. 결론을 간략하게 쓴다면, 자유주의 질서의 위기 + 경제공황 + 중앙정부의 통제력 미비 + 대중 선거의 확대 + 그리고 공산주의 확대 등이 파시즘이 준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를 케이스 별로 분석했는데, 성공한 이탈리아와 독일, 그리고 실패한 프랑스의 명백한 대비로 이 준동요건에 대해 철저히 분석했다. 읽을 수록 흥미진진한 책이다.
- 5월의 책!
※ 엘리건트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승산, 2002.
※ 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은행나무, 2007.
둘다 서문만 읽었다. 5월의 책을 자연과학의 책으로 모두 정한 것은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논리적 사고와 직관을 모두 갖추려면 인문과학 30 대 자연과학 70 정도의 비율로 읽으란다. 그런데, 나는 태생이 인문학도이기 때문에 그 정도까지는 무리고 최소한 5:5 비율로 맞추려고 한다. 몇 달간 세계 철학사로 씨름했으니 5월 6월 두 달 정도는 자연과학 책을 읽을까 싶다.
ps. '엘리건트 유니버스' 추천해 주신 루리님 감사합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