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선전포고 없이 공습을 시작하며, 미군은 태평양 전투에 참전 할 것을 공식으로 발표하게 되고,
그 이후 약 4년 8개월동안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 낼 때까지, 태평양 전선에서 전투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의 전세는, 미국이 유럽전선에서와 태평양 전선에서의 패배와 후퇴를 거듭하게 되면서, 전세는 일본에게 기울어 졌다
그리고, 1942년 8월 7일에 해병 제 1 특공대대가 툴라기 섬 전투를 통해 아주 힘겨운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 이후, 마킨 섬 전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해병 제 2 특공대대가 마킨 섬에 침투하게 되고,
대대 중 2개 중대만 추출, 마킨 섬에 몰래 침투하게 되지만, 곧 일본군에게 적발 되어, 일반 통상적인 전투를
치르게 되고, 일본군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자살 공격까지 퍼붓게 되고, 미군은 전멸 당할 위험을 감수 하기위해
철수를 감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퇴각용 보트가 고장이 나게 되고, 할 수 없이 다시 마킨 섬으로 되돌아와 다시
병력과, 탄약 등을 정비하게 되고, 1시간 뒤 정찰대를 보내 상황을 알아보게 합니다만, 일본군은 이미 패전하여
퇴각했다는 정보를 얻게 됩니다. 이로서 마킨 섬 전투는 끝이 나지만,
이 전투에서 미군은 27명의 전사자를 내게 됩니다.
※ 참고로 1942년 8월 7일 ~ 1942년 8월 8일 까지 과달카날 근처의 섬 전부에 미 해병대가 상륙을 하게 됩니다
과달카날은 일본이 미국을 견제 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 였기에, 과달카날에 비행장을 건설 중이였습니다.
이를 안 미군이 1942년 8월 7일날 상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과달카날에는 강제 노동을 위해 징집된 조선인 2,500명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1942년 8월 8일 비행장을 점령하게 되지만, 8월 7일 ~ 8월 8일 동안 두 차례 일본의 공습으로
인해 근처에 있던 선함이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항공모함과 선함들은 공습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철수를 명령하게 되고, 이윽고 항공모함과 선함들은 최대한의 보급품을 남기고
철수를 감행하게 됩니다. 이에 일본군은 보급품을 하적 중인 선함들을 기습 공격하게 되는데,
이미 퇴각한 항공모함과 선함을 제외한, 남은 선함들은 전멸을 하게 됩니다.
이에 과다카날에 남아 있던 미 해병 1사단들은, 적절한 보급을 받치 못한채, 전투에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1942년 12월까지, 과달카날을 탈환하기 위해 연합군과 일본군의 전투는 계속 되지만
일본군은 과달카날을 탈환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더 이상 반격을 하지 않게 됩니다.
결국 1943년 2월 미 해병과 연합군은 과달카날을 수중에 넣은 채 병력을 모두 철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