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 연구소 직원이던 당시(24세) 명함 한장 달랑 들고 닌텐도 패미컴 서드파티가 되기 위해 무작정 찾아감.
아타리의 '자우스트'라는 게임을 패미컴으로 이식가능한 소스코드를 짜오라고 일을 받음.
이와타 사토루 : ㅇㅋ 2개월 안으로 해옴.
닌텐도 : (....2개월만에 되겠니?)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해냈다.
닌텐도의 고참 엔지니어마저 놀랄 정도의 성과였다.
사실 이와타 사토루는 HAL연구소 아르바이트 시절 비슷한 작업을 해 본적이 있었다.
남코의 아케이드 게임 ‘갤럭시안(Galaxian, 1979)’을
허가 없이 코모도어 PC로 이식해 ‘스타 배틀(Star Battle, 1981)’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 남코의 라이선스를 받긴 했다)
<자우스트(Joust, 1982). '벌룬 파이트'의 원형으로 꼽히는 게임>
이 후 이런저런 닌텐도의 일거리를 맡으며 직원이 10명도 안되던 HAL 연구소는 닌텐도의 핵심 서드파티 회사로 급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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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 (서드파티들에게) 얘들아, 우리 골프게임좀 만들자 누가 만들래.
서드파티 : .....ㅈㅅ 넘 어려움..
골프라는 스포츠는 18홀을 돌며 공을 친 횟수, 풍향, 공이 날아간 거리 등을 모두 계산해야 하는데
‘패미컴’의 성능으로는 완전한 골프 게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이와타 사토루(HAL연구소) : 우리가 함.
막상 이와타 사토루도 개발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게임의 용량 그 자체였다.
이와타는 스스로 데이터 압축 기법까지 만들어 가며 18홀의 코스 데이터를 패미컴 롬 카트리지 하나에 쑤셔 넣는데 성공했다.
패미컴 ‘골프’는 240만장 이상이 꾸준히 팔려 나가며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린 스포츠 게임으로 등극했다.
어지간한 회사도 손을 내젓던 패미컴용 ‘골프’ 게임 개발을 이와타 사토루가 시원하게 해결하자
닌텐도 내에서도 이와타 사토루는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닌텐도 연구개발진이 골머리를 썩이던 프로그래밍 문제를 뚝딱 해결하거나,
자신이 파악하고 있던 ‘패미컴’ CPU 관련 테크닉을 역으로(!) 닌텐도에 알려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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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는 아타리의 자우스트라는 게임을 기반으로 벌룬파이트라는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케이드와 패미컴 용 개발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아케이드 버전은 SRD가 담당했고, 패밀리 컴퓨터 버전은 이와타 사토루가 맡았다.
SRD는 1979년 설립 이후 이런 저런 게임 제작 및 이식을 해 온 만만치 않은 실력의 회사였다.
완성된 ‘벌룬 파이트’는 더욱 놀라웠다.
‘벌룬 파이트’ 아케이드 버전이 1984년 11월,
패미컴 버전이 1985년 1월 말 출시되었는데
아케이드 버전보다 패미컴 버전의 화면 움직임이 더 부드러웠다.
상식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아케이드 게임을 하드웨어 성능의 제약이 심한
패미컴으로 이식했을 때 그래픽이나 음악 등 많은 부분을 깎아내야 했다.
닌텐도와 SRD 모두 깜짝 놀랐다.
이와타 사토루의 노하우를 배우러 SRD에서 ‘벌룬 파이트’를 담당했던 나카고 토시히코가 직접 찾아왔다.
물론 이와타는 친절하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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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컴 마더2 개발 중..(4년째 개발중인데 진척이 없음)
이와타 사토루 : 지금까지 하던대로 하면 2년. 내 말대로 처음부터 하면 6개월.
이토이 시게사토(마더 기획) : 그게 되겠니?...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와타 사토루는 1개월만에 맵을 스크롤 하는 기본적인 기능을 짜 왔는데 단지 그것 만으로도 ‘마더2’ 팀이 모두 놀랐다.
그래픽도, 시나리오도, 사운드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지만 프로그래머의 탈주로 프로젝트가 몽땅 꼬여 있었는데,
이와타 사토루는 그걸 하나하나 풀어 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와타 사토루가 ‘마더2’를 살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혼자 프로그래밍을 모두 떠맡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개발자들이 다 함께 ‘마더2’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발 환경을 조정했기 때문이다.
이메일로 각자의 개발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으면 바로 네트워크에서 수정해 공유하도록 시스템을 구성했다.
이와타 사토루의 호언장담 그대로 4년간 표류하던 ‘마더2’는 그의 개입 후 단 6개월만에 전체적인 게임의 틀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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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프리크 ( 포켓몬 금/은 개발중..당시 프로그래머 4명)
닌텐도 사장 : 얘들아 금/은 개발중이니? 적/녹 해외판도 만들어.
게임프리크(당시 프로그래머 4명..그마저 금/은 개발중) : 앙 다메다메......젯타이 무리데스.............
이와타 사토루 : 적/녹 현지화를 위한 게임 분석 완료. 코드 분석 완료. 내 말대로 하라.
그렇게 적/녹 해외판이 만들어졌다.
포켓몬 적/녹의 코드는 어셈블리어였다.
또 이와타 사토루는 혼자서 적/녹의 코드를 분석 후 C언어로 재작성해 닌텐도64로 재이식하였다.
포켓몬 스타디움 개발 당시 닌텐도64의 미국산 그래픽 처리 칩을 닌텐도 직원들이 다루기 어려워 해서
이와타는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그래칙 최적화 코드를 짜 닌텐도에 건내주었다.
이시하라 츠네카즈 : 얘들아 금/은에 관동지방도 넣어라.
게임프리크(당시에도 용량 부족으로 허덕이던 중 ) : 앙 다메요....젯타이 무ㄹ..........
이와타 사토루 : 여기 데이터 압축 도구를 한번 만들어 봤어.
그렇게 포켓몬 금/은에는 관동지방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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