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사 달고 자대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매복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병사 때야 몇 번 나가 본 적이 있었으나
팀장으로 나가는 건 처음이라 좀 긴장하긴 했었다.
그러다 사고를 친 게
전화기(흔히 딸딸이라 부르던 그 물건)를 차에 놓고 내린 것...
깨달았을 땐 이미 차는 보이지 않고
그 지역은 핸드폰도 무전기도 안 터지는 구역이라 망했구나 싶었다.
문제는 그 전 주인가 전전 주인가에
매복팀 하나가 죄다 자빠져 자다가 사단장 순찰에 걸려서
사단 전체 분위기가 좀 싸했다는 거지.
그런데 매복팀이 나갔다는 보고는 있는데
그 매복팀에선 아무 연락이 없으니.
당연히 난리가 나서
복귀했더니 대대 아침 회의에 들어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들어가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대대장이 한참 소리를 치더니 마지막에 한 마디.
"감봉 조치해."
망했구나 싶었다. 감봉이면 월급이 1/3씩 석달 차감이니까
결국 한달치 봉급이 그냥 날아가는 거...
그런데 가만 있던 우리 중대장이 갑자기
"대대장님,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순간 이 양반이 미쳤구나 싶었다.
"바나나 하사가 출발하기 전에 저하고 작전장교하고 대대장님까지
군장 검사 세 번 하면서 아무도 전화기 없는 거 못 봤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나나 하사가 다 뒤집어쓰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연히 군장검사 땐 몰랐지. 그 땐 멀쩡히 전화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얘기 해 봤자 내게 도움될 거 없으니까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지. 이 양반이 아무래도 미친 것 같으나, 그래도 앞으로는 목숨바쳐서 충성해야겠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옆에 있던 주임원사도 거들었다.
"요즘 바나나 하사가 집에 좀 어려운 일도 있고 해서 신경을 미처 못 쓴 것 같습니다.
대대장님께서 너그러이 선처해 주시면 앞으로 더 열심히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우리집엔 아무 일도 없었으나 역시 난 가만히 있었다.
대대장이 물었다.
"야, 바나나. 집에 무슨 일 있어?"
"아무 일도 없습니다."
내가 말하면서도 '아, 이거 아무 일도 없는 분위기가 아닌데.' 싶었다.
대대장은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너 휴가 언제야."
"다음 주 금요일입니다."
"2박 3일이냐?"
"네."
이 때만 해도 감봉 안 당하고 휴가만 날아가면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는데
대대장 말은 그게 아니었다.
"하루 더 쉬고, 월요일에 복귀해."
"??????????"
나중에 안 건데, 내 생활기록부에는 딱 한 줄,
"부모가 수입이 없어 부사관에 지원함."
이라 적혀 있었고
그 때문에 나는 대대장 관심 부사관(…)으로 관리 중이었던 거다.
대체 부사관학교에서 왜 저렇게 적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덕은 봤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맞벌이셨는데)
그리고 나중에 중대장실에서 중대장에게 따로 얻어맞은 건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