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 '호러의 킹'은 어디서나 왕이다
☞별점 : ★★★★★(10/10)
☞그리고 좀 더 긴 리뷰
메르세데스 벤츠를 끌고 '호러의 킹'이 돌아왔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가면을 쓰긴 했어도, 무자비하게 독자들을 후려치는 이 작가가 스티븐 킹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작품은 12기통 벤츠로 인파를 덮쳐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 홀연히 사라진 '메르세데스 킬러'와 환갑이 넘은 은퇴경찰 호지스과 맞대결을 그린다. 형언할 수 없는 악, 근원적인 공포와의 대면을 다루던 호러작가가 그려낸 '인간 대 인간'의 격돌은 그 시도만으로도 흥미롭다. 그렇다면 결과는? 당연하게도, 끝내준다.
소설은 살인마와 호지스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 은퇴 이후 목적지를 잃어버린 호지스는 레이지보이 쇼파에 앉아 하릴없이 TV를 보며 권총을 만지작댄다. 살인마는 만들어낸 미소와 함께 그럭저럭 사회생활을 이어가지만, 벤츠로 사람들을 짓이길 때, 그리고 이후의 살인을 통해 느꼈던 흥분과 고양감을 잊지 못한다. 둘 모두 무너져 가지만 안 그런 척 할뿐이다.
작가는 늙은 탐정의 변화를 그려내면서 혐오스러운 킬러의 일상도 놓치지 않는다. 조이스 캐럴 오츠가 '좀비'(1996)를 통해 독자들을 단숨에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내면으로 끌어들여 '악의 심연'을 마주하게 만들었다면, 스티븐 킹은 메르세데스 킬러의 숨소리, 땀 냄새까지 느껴질 정도로 바짝 붙여 놓는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소재로 한 대중문화 작품들은 '쿨한 캐릭터'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만의 미학(=강박)을 갖고 있고, 비명을 지르며 저항하는 상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하는 섬뜩한 매력을 지녔다. 영화에서 찾아보자면 '헨리 - 연쇄살인범의 초상'(1986)이나 '악의 교전'(2012)에 등장한 살인마들이 그런 부류다.
메르세데스 킬러는 다르다. 몰입하기에는 역겹고, 외면하기에는 가깝다. 이해할 수 있는 배경과 이해할 수 없는 행위가 어지럽게 뒤섞인 인물이다. 대중문화 속 완벽주의자 사이코패스와는 달리 위태롭고 감정적이고 실수도 저지른다. 독자는 살인범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광기의 모노드라마에 빠져들면서도 혐오감과 적대감에 끊임없이 거리를 둔다. 이 절묘한 균형점에서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탐정소설의 장르적 쾌감과 하드보일드 복수극의 재미를 함께 선사한다.
범인과 형사의 시점을 함께 다루는 탐정소설은 적지 않다. 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2005)가 대표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2006)도 그렇다. 범인은 일찌감치 밝혀 놓고, 트릭을 파훼하는/설계하는 과정을 통해 스릴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미스터 메르세데스' 역시 (독자에게만) 공개된 범인과 (독자에게도) 감춰진 트릭이란 플롯을 적극 활용한다. 다만, 작품은 그 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두 사람의 대립이 '개별 사건의 해결'을 넘어서서 극단의 대결로 치닫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 특유의 귀기어린 전개에 압도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 '본 슈프리머시'의 핸드헬드 촬영을 연상케 할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대상을 옮겨가는 시점 역시 탁월하다.
스티븐 킹은 새로운 선택을 했다. 닷지 픽업을 타고 (보통은 메인주로 설정된) 생지옥으로 돌진하는 대신에, 미끈하게 빠진 벤츠에 일단 앉아보라고 권한다. 최고급 가죽좌석에 몸을 파묻듯이 앉으니, 1.5톤짜리 예술품이 소음도 진동도 없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인다. 이윽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폭주하는 벤츠는 폴리스 라인 너머 피와 살점과 화염이 뒤섞인 지옥도로 돌진하고 있다. 운전대를 잡고 낄낄 거리던 스티븐 킹은 속도를 더 높이며 말한다.
왜 그래? 이럴 줄 몰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