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
신들린 감독의 신들린 영화, 귀기(鬼氣)의 영역에 들어서다
☞별점 : ★★★★★(10/10)
☞함께 볼만한 영화 :
황해(2010) 사정없이 몰아붙이고 거칠게 뽑아낸 '나홍진 1.0' 스릴
살인의 추억(2003) 죽음과 의심으로 붕괴되는 시골마을
엑소시스트(1973) 기분 나쁘게, 완벽하게 장르의 원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좀 더 긴 리뷰(스포일러 주의/댓글도 조심!)
신들린 영화를 보았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을 보며 귀기(鬼氣)를 느꼈다. 들끓으며 폭주하거나, 광기가 넘실대거나, 공포로 뒤덮히는 수준을 넘어 귀기어린 무언가가 작품을 새로운 영역으로 끌어 올렸다는 얘기다. 호러작가 스티븐 킹의 몇몇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신들린 펜 끝'의 감각이 이 영화에도 오롯이 담겨 있었다.
영화가 포스터에서부터 강조하는 메시지가 있다. 절대 현혹되지 말라.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끊임없이 현혹한다. 주인공 종구(곽도원)도 관객도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어디선가 내려온 동앗줄과 마주한다. '그래 믿자'하고 현혹이 확신으로 굳어갈 즈음엔 멱살을 쥐고 흔든다. "또 속냐 관객아" 이러면서 말이다. 동앗줄은 미끼였고 관객은 물고기였다. 실로 악취미지만, 감독의 능수능란함은 이 과정마저도 장르적 쾌감으로 승화시킨다.
영화는 '엑소시스트'같은 오컬트 장르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우윳빛깔 강동원 아니 '검은 사제들'처럼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기존의 장르적 문법을 차용한 '한국형 오컬트'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선과 악의 대리전을 그리는 대신 믿음과 의심의 귀기어린 공방을 담아낸다. 여기에 감독이 영화 곳곳에 던져둔 성경 속 모티프들은 한국의 무속신앙과 본가의 오컬트를 화학적으로 결합시켜 독특한 '나홍진 오컬트 월드'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장르영화를 표방하는 동시에 또 다른 원형을 만들어낸 감독의 욕심과 성취가 놀랍다.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간이 쥐좆만한(작중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소심남 주인공의 시점/시야에서 불가해한 사건을 바라볼 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우주전쟁'에서 지나치게 잘 생긴 소시민 톰 크루즈의 눈높이에서 외계인 침공을 그렸던 것과도 유사한 시도지만 곡성은 한발짝 더 나아간다. 우주전쟁이 정보의 부재, 영웅의 부재에서 오는 무력함을 그렸다면 곡성은 거기에 더해 설득력 있는 주장, 합리적 의심, 신성한 권위를 발산하는 주변인들을 배치한다. 의심은 커지고, 아이는 죽어가고, 현혹은 계속된다.
** 이하 내용은 영화를 보신 분만 읽으시길 **
현혹되지 말라는 현혹
영화 곡성의 모든 것이 현혹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진실을 보여준다.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정황과 인물들의 대사와 때론 노골적인 힌트까지 모여 진실로 향하는 화살표를 그린다. 하지만 종구도 관객도 믿고 싶은 것만 보고 거짓에 현혹된다.
영화는 성경의 한 구절로 시작한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누가복음 24장)
이 말은 영화의 말미에 외지인의 입을 빌려 다시 한번 언급된다. 외지인은 살과 뼈라는 '미끼'로 믿음이라는 '물고기'를 취한다. 종구와 무명(천우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편인지 적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무명의 손은 종구의 마음 속에 믿음 대신 의심을 채워 넣는다. 누군가에게 깃든 의심 그리고 믿음은 영적인 존재에게 힘을 주기도, 뺏기도 한다는 얘기다.
교묘한 교차 편집으로 '관객을 속였다'는 얘기도 듣는 살굿 장면도 현혹이다. 감독 특유의 현란한 편집을 거친 두 장면은 마치 두 무속인이 공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외지인은 박춘배에게, 박수무당 일광(황정민)은 주인공의 딸에게 주술을 거는 장면을 함께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외지인은 애초에 박춘배의 사진을 제단에 올려놓고 주술을 시작했다. 외지인은 일광의 살이 아니라, 무명의 방해로 주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역살을 맞은 것이다.
감독의 노골적인 힌트는 포스터에서부터 시작됐다. 위 포스터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일광이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소오오오름) 이밖에도 희생자들의 집에서 발견된 주술의 흔적들, 일광의 시원한 속옷 차림까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을 던져주는 동시에 끊임없이 현혹하며 '현혹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극장을 나서며 귀신에 홀린 듯한 감각은 이 때문일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나홍진 감독은 신들린 영화로 새로운 영역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