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좀비 방한의 꿈이 성사됐다.
석우(공유)는 펀드매니저다. 일 밖에 모른다. 아니,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붕괴 직전의 위태로운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다. 부산에 내려가 있는 엄마에게 가고 싶다는 딸 수안(김수안)의 부탁에 못이겨 서울역에서 부산행 KTX에 몸을 싣는다. 이윽고 기차 안팎에서 좀비 아포칼립스 지옥도가 펼쳐진다.
'부산행'은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로 이름값을 높인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한국 영화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다. 부산행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함께 올해 칸 영화제에 초청, 여러 매체의 호평을 받으며 하반기 충무로의 포문을 열 작품으로 일찍이 점지됐다.
변칙개봉이긴 하지만 지난 금요일 유료 시사회라는 명목으로 극장에 걸린 부산행을 미리 봤다. 첫 인상은 간단히 '괜찮은데 뻔한데 괜찮다'로 정리 가능하겠다.
우선 부산행에는 1968년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후속작이자 걸작 '시체들의 새벽'(1978) 이후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정립된 좀비 영화의 특징과 장르적 관습이 담겨 있다. △죽은 자가 지상을 걷고 △산 자의 살을 탐하고 △물리면 좀비가 되는 방식으로 전염된다. 여기에 △원인도 해결책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과 △고립된 생존자 집단 내부의 갈등 구조까지. 어떤 좀비 영화가 '망자의 대부' 로메로의 거대한 그림자에 자유로울 수 있겠냐만은 부산행은 그중에서도 기본과 교과서에 충실한 좀비 모범생이다.
부산행의 골격이 로메로의 좀비에 빚을 졌다면 피와 살은 좀비 르네상스 작품들로부터 왔다. 2002년 대니보일이 '28일 후'로 단초를 보여준 이후) 2004년까진 명민했던 잭 스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원래 영문 제목은 Dawn of the Dead로 로메로 감독의 원작 '시체들의 새벽'과 동일하다)가 더 이상 걷지 않고 뛰어다니는 좀비를 그려내면서 좀비 영화는 새롭게 생명을 얻었다. (아직도 전통의 느린 좀비냐 패기의 빠른 좀비냐는 팬들 사이에서 논쟁 중이지만) 천천히 옥죄어오는 절망 대신 미친듯이 달려오는 스릴을 택하면서 좀비영화의 호흡과 연출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부산행은 이 부분 역시 영리하게 가져왔다.
여기에 더해 부산행의 장르적 지향점은 (포스터에도 나와있는듯이) 좀비 재난 블록버스터 '월드워 Z'(2013)와 같다. 특히 월드워 Z의 키 비주얼이라고 할 수 있는 떼로 뭉친 좀비가 솟아오르는 장면은 부산행에서도 재현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월드워 Z가 전반부에서는 재난 블록버스터, 후반부에는 호러 문법을 동원한 쫄깃한 연출로 가는 양면전술(?)을 내세웠다면 부산행은 호러보다 재난 블록버스터의 색채를 내는 일에 집중한다.
여기까진 괜찮다. 문제는 뻔하다는 거다. 우리가 한/국/형/ 재난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장르적 클리셰와 적당량에 그치긴 해도 어쩔 수 없는 신파와 철저히 기능적인 인물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부산행은 제목처럼 정해진 선로를 쾌속으로 질주하는 예측 가능한 영화에 만족하는 듯 하다. 관객이, 적어도 내가 연상호 감독에게 기대하는 놀라움은 이런 무난함은 아니었다.
좀비 팬들에게 부산행은 너무 깔끔한 좀비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호러와 재난 블록버스터로서의 지향점이 다르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신체발부수지부모 공자님 말씀을 지키는 좀비 영화는 없었다. 부서지고 망가진 채로 지상을 배회하는 시체와 사방에 흩어지는 온갖 살점들, 좀비 떼 사이에서 산 채로 먹히며 비명을 지르는 희생자들을 기대했지만 영화는 자체 조절한 수위를 유지해 아쉬움을 준다. 같은 15금이었으나 45금의 패기를 보여준 '곡성'에게서 배웠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행은 괜찮은 작품이다. '한국 최초의'라는 수식어를 떼어 놓고 보더라도 완성도는 높았고, 영화를 지배한 긴장의 장력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신파는 없진 않았으나 과하지 않았다. 피와 살점이 튀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곡성의 좀비 박춘배의 몸짓을 만든 박재인 안무가가 고민 끝에 내놓은 좀비들의 움직임은 경탄스럽다.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라는 캐릭터는 극의 전개와 신파를 위해 기능적으로 존재하는 감은 있지만 한국 블록버스터 특유의 감초 캐릭터를 좀비 장르에 잘 융합시켰다. 해외 관객들이 마동석의 캐릭터에 매료된 이유도 알 것 같다.
한발짝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해서 웰메이드 좀비 영화라는 수식어를 떼어야 할 필요는 없다. 모든 좀비가 호러일 필요는 없고, 무엇보다 한국에는 좀비가 필요했다. 부산행의 존재는 그래서 반갑다. 괜찮았지만 좀 뻔했고, 뻔했지만 꽤 괜찮았다는 이상한 감상을 길게 풀어서 써봤다. 좀 더 쎈 좀비 영화에 목마른 좀비 팬으로서 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감독 연상호)에 살짝 기대를 해본다. 근데 이것도 15금이네? 안될거야 아마.
요즘 워낙 시나리오와 개연성이 개차반인 영화들이 많아서 이렇게 블록버스터 치고 대략 스토리로 중간만 가주면
만족 스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