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번째 기록 - 아버지와 딸1
지금 시각 20XX년 09월 18일 16시 45분
다이앤, 모두 의식적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
우리들은 암묵적인 합의를 했던거야.
그 말하는 좀비에 대해서 생각하느니 조금이라도 빨리 연구소에 가는 걸로.
해피 엔딩일지 배드 엔딩일진 모르겠지만 그저 빨리 사일런트 에코를 벗어나는 쪽을 택했지.
- 이 마을만 지나가면 이제 정말 연구소구먼!
- 네, 부...부지런히 걸으면 내일 새벽 쯤에는 연구소에 도착할 수도 있어요.
- 그래도 조심하는게 좋아요.
지금까지의 외곽도로와는 다르게 여기는 꽤 번화가였으니까 언제 어디서 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르거든요.
혹시라도 놈들에 쫓겨 흩어질 경우에는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는 거 잊지 마시고요.
- 아까 얘기한대로 경계 태세를 유지하면서 걷는다.
다들 내 신호 잘 보는게 좋을거야.
멋대로 행동하는 건 용서치 않을 거니까.
어느 새 크레이그가 리더 흉내를 내고 있더군.
완력이 좋은 크레이그와 연구소까지의 길을 잘 알고 있는 존이 전방을 맡았고 애니와 마키에가 가장 중간에, 그리고 나와 죠셉이 후방을 맡았어.
놈들이 나타나면 금방 깨질 대형이겠지만 그래도 여자애들을 보호하고 기습을 막기에는 좋았거든.
사일런트 에코의 중심부인 상점가를 지나가는데 참 기묘한 느낌이 들더군.
50, 60년 넘은 낡은 건물들과 러쉬먼 사가 들어오면서 급하게 지어진 커다란 현대식 건물들이 어울리지 않게 길을 따라 얼기설기 얽혀 있었어.
이 한적했던 소도시에 러쉬먼 사는 좀비 바이러스처럼 예상치 못하게 나타났다는 증거겠지.
- 한 시간 정도 걸었는데 놈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네요...
- 그러게요. 어두워졌다고는 하지만 정말 한 놈도 안 보이는 군요. 행운의 징조일까요?
그 순간 코너를 돌던 크레이그가 수신호로 행운의 징조를 바로 지워버렸지.
크레이그와 존은 모퉁이에 서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고 뒤따라가던 우리들은 소리를 죽이고 그들의 뒤에 붙었어.
- 뭐죠?
- 쉿! 놈들이야. 놈들이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과연 세 놈이 흐느적거리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지.
그리고 총성이 울렸어.
타아앙---
- 총소리다! 총소리를 듣고 가는 거에요.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멀리서 따라갔지.
어느 건물 앞에 이미 십 여 마리의 좀비가 있었어.
놈들은 자동차, 책상 등으로 난잡하게 쌓여진 바리케이트를 올라가려고 바둥대고 있었지.
멀리서 였지만 1층 창에 언뜻 언뜻 비치는 불빛으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 웨스트 요크 경찰서...
우리는 떨어진 건물 귀퉁이에서 지켜보고 있었지.
상황은 이미 시작되었고 총 때문에 가까이 갈 수는 없었어.
안의 상황을 볼 수 없었겠지만 대충 짐작은 갔지.
살아 남은 사람들이 경찰서에서 버티다가 참지 못 하고 결국 한 발을 쏴버린거야.
공포감
다르게 설명할 말은 없었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한 발이 저들의 운명을 결정지은 거야.
한 마리가 넘어갔어.
여러 비명이 섞여 퍼지기 시작했지.
- 잘 됐군...
크레이그가 말했어.
- 네?
- 눈이 저 쪽으로 몰려 있을 때 우리는 연구소로 가는 거야.
- 크레이그!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 이봐, 이미 저 쪽은 끝이라고.
우린 쓸 데 없는 영웅심으로 여기 있는 게 아냐.
저런 멍청한 겁쟁이 놈들은 살려놔도 다시 죽게 마련이야.
- 저... 미안하지만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냉정하게 보일진 몰라도...
존이 거들었지.
- 우리가 정말 냉정했다면 당신도 구하지 않았을 겁니다.
존이 눈을 피하더군.
- 그리고 크레이그, 당신도 경찰이었잖습니까?
저기에 당신 동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 이봐, 꼬마.
- 아아악...!! 사... 살려...
크레이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뗀 그 때 한 남자가 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어.
도우 페이스 한 마리가 놈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지.
다른 놈들은 없었고 잘 하면 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내가 도끼를 들고 달려나가려는 찰나, 우악스런 힘이 내 목덜미를 잡아챘지.
- 윽!
난 뒤로 나자빠졌어.
- 내가 멋대로 행동하는 건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했지!!
빌어먹을 크레이그!
넘어지면서 반사적으로 우리 쪽으로 오던 남자로 눈이 갔지.
- 으와악---!!
좀비가 어부바 하듯이 남자의 등에 올라타서는 뼈로 남자의 가슴팍을 갉아 내고 있었어.
남자는 쏟아지는 내장을 두 손으로 쓸어담으며 몇발짝 걸어오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더군.
- 무슨 짓입니까! 저 사람은 살릴 수 있었다고요.
- 닥쳐! 더 이상의 인원은 필요없어! 우리는 이대로 연구소로 간다!
- 크레이그 진정해요.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습니까.
죠셉이 나와 크레이그 사이를 가로 막았지.
- 흥! 너도냐. 어차피 연구소에도 거의 도착했고 식량도 있으니 니들이랑 이제 같이 다닐 필요도 없어!
갑자기 애니의 팔을 끌어 당겼지.
- 애니, 이제 우리끼리 가는거다!
- 아... 아버지. 하지만...
애니가 마키에와 날 번갈아 가면서 봤어.
크레이그의 눈빛이 변하더군.
- 뭐냐, 감히 이 아비의 말을 안 듣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잊지마! 내 집에 속해 있는 건 다 내꺼야!
너도! 니 어미도 다!
뭐... 이런 인간이... 순간, 마키에가 새파래진 얼굴로 크레이그 쪽을 봤어.
크레이그가 소리를 질러서가 아냐.
크레이그가 서있는 뒤 쪽 캄캄한 창문 너머로 불 빛 두 개가 빛나고 있었어.
놈들의 눈동자가.
- 크레이그!!
난 크레이그를 안고 넘어졌어.
순간 건물 안 쪽에서 놈이 창을 부수고 밖으로 나왔고 아까 그 남자의 내장을 후벼파던 좀비놈도 이 쪽을 눈치채고 슬그머니 일어나고 있었지.
- 꺅!
- 애니!
놈이 애니에게 다가가자 존, 죠셉, 마키에가 그 쪽으로 달려 들었어.
나도 일어서려고 했지만 무언가에 눈 앞에 번쩍거렸고, 다시 한 번 나동그라졌지.
- 윽...!
- 내가 경고했을텐데!
크레이그가 도끼 손잡이로 내 후두부를 쳤지.
젠장, 제대로 맞았군.
좀비에게 달려가는 크레이그의 모습이 흐리게 보였지.
아픈 머리를 들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커다란 그림자가 내 몸을 뒤덮었어.
크레이그인가...?
아니... 크레이그는 저기서 좀비에게 도끼를 박고 있는데...?
남자를 죽이던 그 놈!
고개를 돌려보니 그 반죽 같은 얼굴에서 눈만 툭 튀어나와 날 내려다 보고 있었어.
'눈이 있는 자'
천천히 올라간 놈의 뼈 끝이 내 쪽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지.
- 에드가!
슬로우 모션 처럼 보였어.
놈의 팔은 나에게 닿기 전에 어떤 장애물에 막혔지.
그리고 그 장애물은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내 앞에서 털썩 쓰려졌어.
마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