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양반, 내 좀 봐야 겠는데."
허스키한 부산 사투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나 인터뷰를 거절하던 양반이 갑자기 아침 댓바람부터 날 부르다니. 어젯밤까지만 하더라도 내 면전에 꺼지라고 욕을 퍼부어댄 그 인간 맞나? 하지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좀비 바이러스가 발병한 부산, 그 지옥의 한복판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장 오랜 기간 살아남은 사람을 취재할 수 있는 기회이다. 절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이촌성, 좀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부산 지역 사회부 기자들은 대부분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이 사람에 대해서 물었을 때 다들 여기에는 적을 수 없는 쌍욕을 하면서 인물평을 했었다. 속된 말로 그냥 '인간 쓰레기'였다. 그 말 말고는 그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 '인간 쓰레기'가 이 기나긴 좀비 전쟁의 서두부터 맺음말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이것 자체가 독자의 마음을 끌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좀비 전쟁 이후 겨우 추스린 이 영세한 출판사가 야심차게 기획 중인 [좀비 시대의 생존자들] 연작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라고 난 단언할 수 있다.
전화로 들은 해운대구 우동으로찾아 갔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큰 저택이었다. 왠지 모르게 드는 위화감과 함께 자동 출입문이 열렸다. 슬슬 각 가정에 전력 공급을 시행하고 있다던데 사실인 모양이었다. 널찍한 정원을 지나 현관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그냥 들어갔다. 족히 30평은 넘어보이는 거실이 있었고 그 한가운데 이촌성이 검은 수트 차림으로 삐걱거리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무렇게나 삐죽삐죽 나있는 수염, 움푹 패인 볼, 수트 사이 사이에서 드러나는 뼈의 형체, 좀비 전쟁의 잔상이 몸 곳곳에 남아있었다. 상당히 마른 모습이었지만은 전쟁 전에는 상당히 듬직한 체형이었음을 앉은 상태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낡은 벽지에 가로 막힌 거실은 거짓말로도 깨끗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쓰레기가 빽빽히 쌓여있는 일반적인 생존자의 집은 아니었다. 그저 인간이 살았던 흔적이 적은, 그런 느낌을 주었다. "기자 양반 왔는교?" 조금 전 날 깨운 억센 부산 사투리가 내 귀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어째, 이래 됐는데 술 한잔 하고 인터뷰 할랍니까?"라며 위스키를 권했다. 난 정중히 사양하며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넓은 거실이었다. 그리고 거실을 쏘아보는 듯한 방문들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묘하게 하나의 방문 너머에서 낮은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 되게 넓고 좋은 집에서 사시네요.
- 내 집 아입니더. (웃음) 아마 전쟁 전에는 무슨 정치가가 살았다고 하던데. 아 뭐, 내는 그 딴거 잘 모르겠고 방비 잘 되어 있고 넓어서 들어온긴데 아직까지 주인이 안 나타난 거 보믄 아마 디진 거 아니겄습니까?
- 아, 네... 아직은 사유 재산을 얘기하기는 이른 시기니까요.
- 사유 재산 마, 뭐 그 딴 어려운 얘기는 됐고요. 그냥 빈 집 있으니까 기들어왔다 이래 생각하소. 이럴 때 아니믄 또 언제 살아보겠다고.
- 저기 안 쪽 방에서 소리가 나는 거 같은데 강아지라도 키우시는 건가요?
- ...
- 아, 혹시 말씀하시기 불편하시다면 말 안 하셔도 됩니다.
- 좀빕니더.
- 예?!
- 좀비라고예.
- 조...좀비라고요?! 혀... 현재 공포된 좀비 특별법에 따르면 좀비를 가지고 있는 것 뿐만이 아니라 활동 중인 좀비를 보고 신고하지 않는 것도 불법...
- 마, 됐고예. 자들은 내가 가끔 운동할라고 델고 있는 아들이라예. 나중에 신고하고 싶으믄 신고하소, 왜.
- 운동이요?
- 내가요. 알고 있는 유일한 명언이 이건기라. '다른 인간들을 믿지 마라.' 그래서 좀비가 다 퇴치됐다는 정부 말도 믿지 않는 거 뿐이요. 언제 좀비들이 나올지 모르는데 항상 좀비 죽이는 연습을 해놔야 되는 거 아닌교. 그래가 모아 놓는기요.
- 하지만 움직이는 좀비를 데리고 오는 것도 상당히 위험할텐데요.
- 위험?(피식 웃는다.) 위험은 지난 몇 년동안 일상이었소. 마, 됐고, 그거 물어보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 아, 네... 죄송합니다. 아, 먼저 이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독자들로부터 선생님을 취재해 달라는 요청이 엄청났다는거. 사람들이 선생님을 '좀비 시대의 협객' 혹은 '좀비 시대의 베어 그릴스'라고 부르는 걸 혹시 아시나요?
- 베어...? 뭐? 곰팅이 말하는 거요?
- 영국의 유명한 생존 전문가 이름입니다.
- 아아... 곰같은 이름이구만... (웃음) 오늘 독자 시키들 내가 하는 말 들으면 좀 실망할낀데, 우짜노.
- 지금까지 알려진 얘기와는 조금 다르단 말씀이신가요?
- 다른 인간들이 내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얘기하믄 좀비 있던 세상이나 그 전이나 내한테는 별반 안 달랐어요.
- 다르다고 하시면?
- 기자 양반, 가끔 성공한 기업가들이나 정치가들 인터뷰해보믄 어릴 때 구두닦이나 막노동, 안 해본 거 없다카지요?
- 아, 네... 뭐 그렇죠.
- 그 바닥에서 성공한 양반들이랑 이 바닥에서 성공한 양반들이랑 다른 점은 딱 하나라예. 그게 뭔지 압니꺼?
- 그게 뭡니까?
- 바로 똑같이 안 해본 일은 없는데 이 쪽 바닥 양반들은 인간이 못 할 짓도 다 했다는 거. 내도 마찬가집니더. 전쟁 전에는 한 번 끝까지 올라가보겠다고 안 해본 짓이 없었습니더. 클럽 기도 부터 올라가 클럽 운영에 사채업에사창가 포주까지 했었지예. 마, 흔히 얘기하는 쓰레기 짓이지예.
- 흔히 얘기하는 뒷골목의 제왕이셨군요.
- (침묵) 한 날은... 관리하는 창녀 년 따묵은 적 있었는데 그 쌍년이 몇 개월 뒤에 와서는 내 아를 낳다고 그 지랄 떠는 거 아닌교. 씨팔년이... 몸파는 년이 아 아비가 누군줄 알고 내한테 기와서... 졸라 싸대기를 날리고 쫓아낸 적도 있었제...
- 네... 좀비가 나오고 나서 그런 생활이 많이 바뀌었겠네요.
- 한 날은, 관리하고 있는 나이트에서 개점 준비하느라고 가 있었는데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웨이터 아가 터덜터덜 걸어오디만 날 갑자기 물라카는 기라예. 그래가 "니 뭐하노? 이 쉐키가 미친나?" 카믄서 몇 번 밀었지. 그래도 다가 오길래 내도 빡 돌아서 맥주병 가지고 글마 대갈빡을 팍 쳤다 아입니꺼. 그러니까 쓰러지데. 별 일 다 있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동생아가 달려오드만 "형님 큰일났습니더. 다들 피신하고 난립니더." 이카는 기라. 그래가 내가 "니 왜 이카노?" 했는데 글마는 내 말은 안 듣고 내가 쳐서 쓰러져 있는 아를 보드만 맥주 궤짝을 들고 그대로 엎어져 있는 아 대갈팍으로 내리 꽂는 거 아닌교? 와... 내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믄 진짜 궤짝으로 대갈빡 깬 놈이나 나 물려고 한 놈이나 둘 다 미칬다고 생각했지요. 첨에는 이걸 해결할라카믄 경찰 서장놈한테 얼마나 뇌물을 처먹여야하노? 그 생각 밖에는 안 들었다 아입니까. 근데 내리친 동생 놈이 갑자기 "형님, 지금 이런 좀비가 부산 시내에 갑자기 출몰했다 아입니꺼? 다들 대피하느라고 정신없습니더. 빨리 가이소." 뭐 이딴 소리하길래 첨에는 안 믿었지. 근데 가가 말해서 다시 웨이터 동생 놈을 자세히 보니까 조명이 어두워서 처음에는 잘 안 보였었는데 뭔가 일반 시체들하고들 좀 다르더라고. 피도 안 뻘겋고, 피부도 푸르딩딩하고...
- 일반 시체들하고 다르다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 알고 싶소?
- 아... 아뇨. 그리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 일단 나왔제. 길이 벌써 엉망이더라고. 씨팔... 인간들은 넘쳐나제, 길에는 차들이 이리 박고 저리 박아서 쌓여 있제... 솔직히 좀비란 것도 반신반의하긴 했는데 이 바닥에서 일하는 아들은 위기감느끼는 촉 하나는 겁네 발달해 있거든. 그래서 나도 이건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겁네 뛰었어.딴 놈들도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 하는 거 같더라고. 내도 그냥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지. 근데 이 생각 하나는 갖고 있었어. '일단 바다로 가야겠다.'
- 바다요?
- 그렇제. 이 부산 바닥에 진짜로 좀비 놈들이 득시글 거린다 카면 이미 한국은 좀비 땜에 시마이(끝이라는 표현의 일본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가 후쿠오카에 살고 있는 아는 형님 집이라도 가 있을라고 부산항으로 존나게 달렸지. 그런데 아... 씨팔... 장관이데...
- 장관이라고 하시면...
- 부산에 사는 인간들은 거기 다 몰려 있는 거 같데... 일반 여객선, 군함 할 거 없이 수십 척이 몰려 있었는데 그거 탈라고 하는 인간들이 오지게 많았지.
- 선생님도 그 여객선을 타셨나요?
- 못 탔지. 인간들 틈바구니 밀쳐내고 밀쳐내서 겨우 앞까지 갔는데 씨팔... 군인 새끼가 총 겨누면서 이카더라고. "민간인이 먼저라고."
- 민간인이 먼저라고요?
- 개쉐리들... 내가 조폭인 걸 눈치깐거지... 내 인상을 봤는지 문신을 봤는지 그건 모르겠는데... 근데 더 웃긴 게 뭔지 압니까? 나중에 들어보니까 그 쉐끼들 장애인한테도 똑같은 말 했다카데.(웃음) 장애인들은 지들이 관리하기 힘들다 카는기지.
- 그래서 대피를 못 하신 거군요.
- 결국에 마지막 배도 못 타고 쌍욕을 하면서 바라보고 있었지. 사람으로 미어터질 거 같은 여객선이 뒤뚱뒤뚱 기어가데. 근데 사람 일은 진짜 모르는 거더라고, 내 시야에서 멀어지지도 않았는데 여객선에서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데.
- 좀비군요.
- 아, 뭐 그 안에 감염자가 타고 있었던 거지. 내가 타려고 했던 여객선에서. 사람이 무수히 바다에 떨어지더라고. 결국에는 사람이 많이 타서 그랬는지 좀비 땜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배가 한 쪽으로 기울더니 그대로 엎어져서 침몰했지. 난 꼬시다 카고 옆어진 배 쪽으로 오줌을 갈겨댔지.
- 오줌이요?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요?
- 와요? 너무 냉정한 거 같소? 씨팔... 내 놔두고 간 놈들은 물에 빠져 디져도 싸지.
- 그러고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 통통배라도 얻어 탈라고 백방 뛰었는데 다 허사였지예. 글고 거서 시간 낭비할 여유도 별로 없었제.거는 사람들이 너무 몰려 있었거든. 좀비 놈들이 다 글로 모여 왔다 아입니까. 저~짜 끝에서부터 아... 진짜 새카맣게 몰려 오데...
- 그 쪽으로 몰려 왔다고요? 선생님은 거기서 어떻게 빠져 나오신 거죠?
- 딴 거 없지. 겁네 돌아간 기지. 다행스럽게도 해안가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 가지고 한 두 사람 가 쪽으로 빠지는 건 그렇게 좀비아들이 신경쓰지도 않데예. 바다에 빠져서 비명지르는 아들, 해안가에 있는 아들 잡을라고 좀비아들은 그냥 바다로 절벽으로 다들 다이빙 하드만. 내는 그냥 갓길로 돌아가서 다시 부산 안으로 들어갔지.
- 안으로 들어가셨다고요? 다른 외곽 지역으로 빠질 생각은 안 하시고요?
- 외곽 지역으로 빠진다고 별 수 있겄습니꺼? 진짜 산에 틀어 박히가 농사라도 짓지 않는 한 좀비아들은 어디나 있을긴데. 차라리 부산 시내에 있어야 마트 같은데서 식량 구하기도 쉽다고 생각했지. 글고 인간들이 바닷가 쪽으로 다 갔으니까 시내는 도리어 좀비 놈들이 별로 없을거라 생각했었고.
- 생각대로 였었나요?
- 휑~ 하데. 몇 마리 눈에 띄긴 했지만 그리 많지도 않았제. 한 두마리 정도는 내 혼자서도 해결할 수도 있었고.
-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식량이나 식수가 많이 부족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 초반에는 괜찮았지. 돌아다녀 보니까 아직 온전한 마트도 많았고. 통조림 모아놓고 좀 기다리다 보면 군대가 와서 좀비놈들 다 쓸어버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그 땐 몰랐던 거제. 그 얘긴 천천히 하고.
- 시내 다른 사람들은 없었나요?
- 가끔 마트나 이런데서 눈에 띄긴 했는데 그 땐 벌써 좀비들 땜에 다들 떠났거나 지들 집에 틀어박히가 있는 사람들이 많았제.
- 잠자는 것도 문제였을텐데요.
- 한군데서는 계속 못 있었지. 좀비 새끼들은 계속 돌아다니가 어느 날은 이쪽 동네에 많다가 어느 날은 저쪽 동네에 많다가 했거든. 2, 3일에 한 번씩 옮기거나 했는데 니기미... 좀비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지.
- 더 큰 문제요?
- 도어락. 요새 남의 집에 들어가기 오지게 힘들데. 좀 안전해 보이는 집에는 다 도어락이 달려 있어가 좀비있는 시대에는 그거 땜에 도리어 사람이 죽을 판이었제. 억지로라도 부술 수는 있는데 깨면 큰 소리가 나는 것도 있어서 좀비들 몰려오고 그랬제. 그래가 창문 깨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들어가고 나서는 좀비 안 들어 오게 할라고 박스같은 거 찢어서 막았어. 그거 붙일라고 맨날 박스 테이프 들고 다녔지. 결국 나중에는 그것도 못해서 담요 같은 걸 말아서 박아 넣었지만.
- 혹시 자다가 좀비들의 습격을 받는 경우는 없었습니까?
- 처음에는 걱정되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지. 아~ 진짜 디질뻔했지, 그거 땜에. 좀비한테 쫓기는 것 보다 맘놓고 잠을 못 자는 게 더 힘들더라고. 소리내는 것도 조심하고. 코고는 거 때문에 좀비한테 디지면 졸라 모냥 빠지지까. (웃음) 나중에는 그것도 내 나름대로 좀 노하우가 생기데.
- 노하우요? 어떤 건가요?
- 웃긴 얘기긴 한데 거실이나 화장실에 놓는 향기나는 거 있잖소? 쬐꼬만 해서 사각형으로 된 거. 그걸 문이랑 창문 있는 벽 밖에 수 십개를 쫙 깔아 놓는기요. 기자님도 알겠지만은 좀비아들이 눈으로 인간들 찾는 거 보다는 소리나 냄새로 많이 찾으니까는 냄새로 좀비아들을 혼란시키는 거제.
- 재미있는 방법이네요. 실제로 좀비들이 안 들어 오던가요? 그리고 한꺼번에 많이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 뭐 실제로 먹혔는지 안 먹혔는지는 좀비아들한테 물어봐야 알겠지만은 1층 집에서도 좀비들이 들어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 운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좀 안심하고 잘 수는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쪽잠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물건은 졸라 많았어. 사람들은 마트에서 먹을거나 옷같은 걸 갖고 갔지. 방향제 같은 건 좀비 시대에 필요없다고 생각했으니까.
- 그렇게 계속 혼자서 지내셨나요?
- 혼자 있는게 내 몸 숨기기에는 더 좋다고 생각은 했는데 가끔 몰려 다니기도 하고 그랬지. 뭐, 그래도 결국에는 보다시피 가들은 못 살아 남았지.
- 같이 다니셨던 분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 마, 사람이랑 만날 일도 별로 없었고 누굴 고르고 할 처지도 못 되고 했으니까 '뭐 이런 아들들끼리 모였노' 하는 그런 느낌이었지.
- 다들 개성적이었나 보군요.
- 기자 양반 말 돌려 잘 하네. 까놓고 그냥 오합지졸이었지. (웃음) 전쟁 전에는 전혀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나게 되니 정말 희한했어.
- 다른 분들은 주로 전쟁 전에 무슨 일을 하셨던 사람들이었습니까?
- 목수하시던 양반도 있었고 수의사 양반도 있었고 밥집하던 아줌마도 있었고... 뭐 여러 여러 있었지. 첨에는 나도 아니다 싶음 그냥 나올라켔는데 나름 쿵짝이 잘 맞더라고. 아줌마가 없는 재료 가지고 어떻게 밥 뚝딱뚝딱 만들고 수의사 양반은 개 만졌던 손으로 사람도 잘 고쳤고. 목수 아제는 우리가 문 깨고 어디 들어가면 나무 쪼가리 같은 걸로도 문 새로 만들고 이랬지. 연장도 잘 써가 톱으로 좀비 목따는 건 나보다 낫데. 내는 물론 좀비랑 싸우는 전문이었고.
- 생각보다 자기 역할이 분명했나 보군요.
- 그렇지 못한 아들도 있었제. 한 날은 유~명한 대학에서 법 공부 한다는 범쉐이 새끼가 들어와 가지고 아 진짜 아줌마도 하는 간단한 일도 못 하는 기라. 아 내가 빡쳐가 진짜...
- 전쟁 전에는 책만 팠을 거니까요.
- 생각해보면 좀비나오기 전에는 글마가 제일 콧대가 높았을지도 모르제. 다들 '공부 잘 하네. 나중에 검사되면 잘 부탁한데이.' 이카켔지만 서바이벌에서는 먹을거 잘 구하고 좀비 대가리 잘 깨고 이게 최고인기라. 높~으신 양반들 보다 그네들이 무시했던 조폭이나 목수나 밥집 아줌마가 백 번 낫다 안카나.
- 전쟁나면서 공부만 했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공장이나 농장에서 노동을 하게 되서 적응 못한 사람들도 많았죠.
- 한 날은 어이없게도 한밤 중에 누가 엄마 보거 싶다고 질질 짜가 좀비놈들에게 들켰었지. 와~ 내 돌겠데. 기집아라면 내는 또 이해는 하지. 근데 아까 그 법관 새끼, 군대까지 갔다온 시커먼 새끼가 질질 짜가...
- 그러고는 어떻게 되셨나요?
- 수의사 양반이 물리가 디지고 정작 디지야 할 놈은 잘 빠져 나왔어. 안전한 곳에서 다시 모여가 그 새끼를 어떻게 할 건지 심도있는 얘기를 나눴제.
- 어떻게 할 건지라면?
- 그 고문관 쉐이를 죽일까 살릴까 데리고 다닐까 버릴까 뭐 이런 얘기.
- 그래서 어떤 결론이 났나요?
- 죽었어.
- 예? 죽이신 겁니까? 살아있는 사람을?
- 귓구멍 막혔니껴? '죽였다'가 아니라 '죽었다'고. 가는 이미 삶의 의지가 없었어. 스스로 디지고 싶어 하는 아까지 내 손으로 죽일 필요는 없었제. 떠나면서 생각 좀 해보라고 먹을 거랑 칼, 밧줄은 남겨 놓고 갔지.
- 그 이후로는 못 보셨겠군요.
- 만났어.
- 만났다고요? 그 사람은 계속 혼자서 살아남았던 건가요?
- 그러고 3, 4개월 지났을 때 쯤에 한 놈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걸 봤지. 추레한 옷이랑 호섭이 같은 헤어 스타일이 눈에 익데. 글마드만.
- 좀비가 된 거군요.
- 옛정을 생각해서 내가 직접 대가리는 날려줬지. 결국에 글마는 직접 죽을 용기도 없어서 좀비에 물릴 때까지 손목도 못 긋고 목도 못 매단기라. 병신같은 새끼. 그럴바엔 도망이라도 잘 치가 살아남던지. 하여간에 그렇게 책만 파가 머리에 똥만 찬 아들은 나와서는 아무 것도 못 한다니까.
- 그 이후로 얼마나 오래 그 그룹을 유지 하셨나요?
- 그러고 한 두달 쯤이었던 거 같은데... 슬슬 사람이 죽고 먹을게 떨어지고 이카니까 사람들 눈에서 살기가 나오데. 난 이미 거기 그룹이 깨지기 몇 주 전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어. 나같이 아무도 못 믿는 아들은 자기한테 위기가 닥칠지 아닐지 알아채는 건 진짜로 빠르거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
- 내부 갈등이 상당히 심각했나 보군요.
- 아무리 조폭이 나쁘고 깡패가 나쁘고 이케도 누구나 극한 상황에 몰리면 결국에는 조폭이나 다를 바가 없는기라. 밥집 아줌마가 나이프로 나 찌를라켔을 때는 아... 소름 돋데. 옛날에 사채업할 때 한 아제가 돈 못 갚아가 딸 년 사창가에 팔고 이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아제가 칼들고 덤빌 때 눈빛이랑 비숫하데. 일 있고 나서 얼마 안 있어가 밤에 몰래 빠져 나왔제. 초반 2년 정도는 그렇게 지나 갔지.
- 그 때 쯤이면 군대가 슬슬 반격을 했을 때였군요.
- 그랬지. 처음에 좀비아들한테 존나게 깨지고 다시 준비하고 반격할 때 쯤이었제. 내도 그 때는 혼자 돌아다니느라 먹을 것도 없고 그랬는데 참 다행이었지.
- 다행이었다고요?
- 좀비에 디진 아들이 많으니까 가네가 갖고 있던 군용식사 같은 거 먹고 그랬거든. 맛은 졸라게 없데. (웃음) 그래도 뭐 어짜겠노. 살아야제.
- 전투에 휘말리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을텐데요?
- 전투지역은 거의 정해져 있었고 좀비아들은 무조건 사람 많은 데로 갔으니까 좀 떨어진데 있음 괜찮았지.
- 시체가 다시 살아나는 경우도 있었을텐데요.
- 아무리 배고파도 경계는 하면서 갔지. 의심가는 놈들은 일단 머리를 깨고 봤고. 근데 그 때도 좀비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들이 문제였제. 특히 양아치 쉐이들...
- 양아치요?
- 인간 본성이 어디 가겄소? 그 때쯤 되니까 주먹 좀 쓴다는 아들이 조직 비슷한 걸 만들었더라고. 탈영한 군인 중에 거기 들어간 아들도 있었고. 파가 몇개 있었는데 이름도 무신 좀비파 뭐 이랬어. 하이에나 같은 쉐이들... 중요한 건 전투 끝나고 시체를 뒤질라 그랄 때 가네랑 부딪히는 경우도 있었다는 거지. 가네 목적은 먹을 거랑 군용 무기 였고.
- 영화 매드맥스의 폭주족 같은 놈들이었군요. 위험했던 적도 있을 거 같은데요.
- 영화는 잘 모르겠고 여튼 그랬어. 나야 가능한한 피해다녔고 내랑 괜히 붙으면 가네도 피해가 있을거라 생각했으니까 가네가 덤비는 경우도 별로 없었어. 내도 주운 총은 갖고 있었거든. 그런 아들이 위험한 건 그런게 아니라 장난이 심할 때지.
- 장난이요?
- 가네들 입장에서는 장난이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살인이고 이런 거지. 혼자 있으면 찍소리도 못하는 아들이 몰려 있으니까 그거 믿고 필요도 없는데 다른 그룹 약탈하고 강간하고 뭐... 이런 좆같은 세상에서 흔히 있는 일 아닌교?
-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선생님은 그런 조직에 들어가실 생각은 안 하셨나요? 아니면 만들 생각이나.
- 그럴 필요가 없었제. 내는 가네들이 금방 깨질 거라는 걸 감으로 알았거든.
-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 기자 양반, 조직이 유지될라믄 뭐가 필요할 거 같소? 오야붕의 카리스마? 졸라 싸움 잘 하는 아그들? 조까... 딴 거 없어. 어차피 돈이야. 전쟁 전에도 밑에 식구아들 못 멕여 살리면 언제라도 뒤에서 칼 꽂히는게 이 바닥이었어. 그런데 좀비 천국된 그 때? 뭘로 아들 먹여 살릴낀데? 좀비 고기? (웃음) 삥 뜯을라케도 삥뜯을 인간들이 살아 있어야 뜯던가 하지. 한 몇 년 못 가 다 깨지데. 안에서 내분이 일어나기도 하고 군대가 와서 졸라게 패고 죽이던가 아님 강제로 군대에 넣던가 하고.
- 그랬군요. 하지만 군대가 점점 좀비들을 물리치고 내륙 지방으로 올라가면 부산에서 찾을 수 있는 군인들 시체도 계속 없어졌을텐데요.
- 부산 위로 올라가는 것도 한 2, 3년 걸렸지. 군인 아들도 없는 살림에 전쟁할라카니까 얼마나 오래 걸렸겠어. 그래도 좀비 아들 쫓아내고 1년 쯤 되니까 부산 시내로 들어오는 인간들이 조금씩 생겼제. 일단 먹을게 없으니까 부산에 남은 땅 가지고 농사 짓고 이카데. 공원 같은데서도 하고.
- 선생님도 농사를 지으셨나요?
- 내는 비즈니스를 했제. (웃음)
- 비즈니스요?
- 맞아, 비즈니스. 아까 말한 조폭 아들있을 때 부터 델고 있던 까스나가 있었는데 가가 얼굴이 반반했거든. 가가 한 번 떡쳐주고 밥얻고 이런 걸 했제.
- 매춘을 하셨단 말입니까?
- 와? 경찰에 고발이라도 하실라꼬?(웃음) 가나 내나 살기 위해 한 일이었제. 내는 좀비 아들한테 가를 지켜주고 손님 구해다 주고 가는 밥값하고. 좀비들 돌아다니는데 거기서 둘이 농사지을 수는 없잖소. 아무리 여자가 자존심이 있어도 배고픈 건 어쩔 수 없지. 나중에는 가라케도 안 가던데?
- 그 분은 어떻게 되셨나요?
- 부산 시내로 인간들 들어오고 나서 몸 좀 팔다가 부상병 아들 치료해주는데 들어갔지. 후방 부대 쪽도 따라가고. 얼굴도 반반하고 그러니까 부대에서도 유명해지고 이카데. 나중에는 뭐 백의의 천사? 성녀? 이카면서 TV도 나오고. 아마 기자 양반도 아는 까스나일거요.
- 저도 아는 사람이라고요? 설마...? 최근에 사령관 아들과 결혼한?!
- 쉬이... 원래 여자의 과거는 안 물어보는 거라 안켔소. 어차피 내한테는 몸파는 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만. (웃음)
-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겠군요.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한가지 여쭙고 싶은게 있습니다.
- 하소.
- 어제까지 인터뷰 거절하시다가 왜 오늘 갑자기 수락을 하신 거죠?
- ... 기자 양반, 사태 진정되고 지금 한달도 안 됐지요?
- 네, 그렇죠.
- 어제, 길을 걸었지. 걷다 보니까 눈에 좀 익은 동네가 나오데. 잡초가 건물을 덮을 정도로 자랐어도 알아보겠데. 옛날에 나한테 발광하던 창녀년이 살던 동네였제. 살아 있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 집에 한 번 가보고 싶은 거야.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 집에 들어 갔지. 방문을 여니까...
- 여니까?
- 좀비가 있더라고. 짜끄마한 여자 얼라 좀비가. 이젠 살도 없는 지 엄마 시체를 열라 퍼먹고 있데.
- ...
- 가는 방문 여는 법도 몰라서 전쟁 끝날 때까지 쭉 거기 있었던 기라. 지 엄마랑.
-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 (왼쪽 수트 자켓을 재껴보여준다. 왼쪽 가슴팍에 물린 듯한 작은 상처가 있고 검붉은 피가 말라 있다.)
근데요, 기자 양반. 생각해 보니까 내가 그 까스나를 안아준 적이 한 번도 없데요.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소. 내 아비, 어미란 작자가 죽었을 때도 눈 껌뻑 하나 안 했던 나인데. 내 딸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그 까스나를 말이야. 그런데 그 녀석이 애비한테 안겨보는지 처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품 안에서 투정을 부리더라고. 성질은 지 애미 못된 성미 쏙 빼닮아서리. (웃음)
- ...
- (낡은 종이쪼가리를 건네며) 기자 양반... 내 부탁 하나 하입시더... 내랑 저 까스나... 내 딸... 사망신고 하기 전에 호적에 좀 올려주쇼... 그리고나서 사망 처리를 하던지 말던지는 알아서 하시고... 이거 동사무소에서 찾은 호적 등본인지 뭔지 하는 긴데... 내는 무식해가 봐도 잘 모르겠네. 간단히 쓸 건 썼는데 모자른 건 기자 양반이 좀 대신 써서 내주소. 아(아이) 이름은... 아 이름은 '미래'요.
- 그러죠...
- 고맙네, 기자 양반. 욕보소. (일어나서 좀비가 있는 방으로 향한다.) 내가 괴물이 되기 전에 얘기를 끝마쳐서 다행이네. 내 저 방에 들어간 담에는 절대 혼자 문열지 마소.
- (문 쪽으로 걸어가다 멈춰선다.) 기자 양반, 내가 그 까스나 싸대기 날리고 쫓아내기 전에 자를 먼저 봤었으면 내 인생 좀 달라졌을거 같소?
- ...
- 알았으면 지금까지 이래 살아 있지도 못 하긋제? 근데 이런 생각도 해봐요. 알았으면 죽어도 혼자 죽지는 않았을 거 같다고.
인터뷰는 끝이 났다. 이촌성이 들어간 방문 틈 사이로 어린 소녀 좀비의 모습이 보였다. 이촌성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뷰 때 보여준 그 비아냥 섞인 웃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난 이촌성이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인터뷰 때 미처 얘기하지 못한 어두운 부분이 더 있겠지. 하지만 딸에게 걸어가는 그 뒷모습에 조금은 이촌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