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가 괜찮은데 주가흐름이 이상한 기업들을 몇 개 찾았는데 알고보니 모두 중국 기업이네요.
종목코드 9번으로 시작하는 주식은 왠만하면 사지 마세요.
이런 기업들은 분식회계, 허위공시, 상장폐지까지 전적이 화려(?)합니다.
지난 2009년 중국원양자원의 코스피 상장 기념식 모습. 왼쪽에서 세번째가 장화리 중국원양자원 대표다. (한국거래소)
# 2011년 1월25일. 고부가가치 첨단 섬유 전문기업이란 간판을 내걸고 국내 코스피시장에 화려하게 등장한 중국 고섬공고유한공사(중국고섬). 하지만 기대와 달리 주가는 상장 직후 내리막길을 걸었고 두 달 만에 공시 위반으로 거래가 정지됐다. 약 2년 후 중국고섬은 상장폐지가 결정됐고 투자자는 약 2000억원의 손해를 봤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이 부실한 공시와 감사 거절 등의 사유로 꾸준히 퇴출되고 있다. 현재 상장돼 있는 중국기업의 주가 역시 동전주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또다시 상장폐지로 인한 투자자 피해가 야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개인투자자의 중국기업 주식 기피 현상인 ‘차이나 포비아’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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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업 상폐, 왜 많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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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7년부터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해외기업은 총 39개로 그중 36%인 14개의 기업이 상장폐지됐다. 이 중 12개가 중국기업이다. 14년간 상장폐지된 해외기업의 86%가 중국기업인 셈이다.
이들 기업이 상장폐지된 이유로 대부분 회계 불투명 등이 지적됐다. 중국고섬은 코스피 입성 후 1000억원대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 상장 3개월 만에 거래가 정지됐고 결국 2013년 10월 상장폐지됐다. 성융광전투자는 2010년 9월 상장돼 2년 뒤인 2012년 9월 감사의견거절로 상장폐지됐고 연합과기도 상장 요건 미흡으로 유가증권시장에서 강제 퇴출됐다.
2013년 1월 3일 노드디지탈에 이어 6월 중국식품포장도 자진 상장폐지한 후 한국 증시에서 떠났다. 상장폐지된 종목으로 인한 투자자 손해액(정리매매 직전)은 약 3800억원으로 추산된다. 실제 투자자 손해액은 더 많았을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국내 증시에서 중국고섬 못지않은 피해사례를 남긴 기업은 중국원양자원이다. 이 회사는 2009년 5월 상장돼 2017년 9월 감사의견거절로 상장폐지됐다. 중국원양자원은 상장 당시 어선이 수백대에 달하고 중국 공산당이 허가하는 원양어업회사라고 홍보했지만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장화리 중국원양자원 대표는 허위로 공시자료를 만들었고 많은 투자자가 피해를 봤다. 당시 투자업계에선 “장화리라는 한 사람에게 대한민국 증시가 제대로 놀아난 참사”라며 국내 상장 주관사와 금융당국 등의 허술한 관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피해를 입은 중국원양자원 소액주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살길을 모색했지만 사실상 구제방법이 없었다. 중국원양자원 상장 폐지 당시 종가 기준 주가는 40원에 불과했다. 중국원양자원에 투자했던 한 주주는 “2018년에 주당 몇 십원에 주식을 팔았지만 본전의 10%도 못 건졌다. 거짓투성이인 중국기업에 다시는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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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주 된 中기업 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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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업의 상장폐지가 잦았던 데는 한국거래소의 ‘보여주기식 해외기업 상장’과 주관사의 ‘부실한 사후관리’ 때문이란 비판이 나온다. 한국거래소는 2007년에 코스피가 2000을 넘으며 ‘국내 증시 세계화’라는 명분 아래 해외기업을 대거 상장시키기 시작했다. 국내 1호 해외기업 상장도 2007년 8월에 나왔다. 상장폐지된 중국기업 12곳의 상장 시기도 2007~2011년에 몰려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시 거래소는 외국기업 관련 리스크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와 대책 없이 유치에만 매달렸다”고 꼬집었다.
사후관리도 부실했다. 상장폐지된 중국기업은 허위 회계자료를 만들었지만 상장 주관사와 회계법인이 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다. 중국원양자원이 상장폐지된 후 금융당국이 주관사에 책임을 물어 수억원대 과징금 제재를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기업에 대한 처벌이 어려웠던 점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외국기업은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분식행위 등 부정을 저질러도 직접적인 처벌이 어렵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중국원양자원의 경우 홍콩에 본사를 둔 회사이지만 실제 회사는 중국 푸젠성에 있다. 그러다 보니 법을 적용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며 “중국기업이 우리 정부와 금융당국 및 거래소의 통제권 밖에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홍성국 의원(더불어민주당·세종 갑)은 중국기업 상장폐지를 지적하며 “중국기업이 한국 자본시장에 진출하는 이유는 미국 나스닥보다 진입 장벽이 낮고 중국 시장보다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국내 증권사도 무리한 경쟁으로 기업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상장시킨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국내 기업 IPO(기업공개)와 달리 해외기업의 경우 상장 주관 수수료율이 더 높다.
국내 증시에서 살아남은 중국기업의 주가는 ‘동전주’가 됐을 만큼 위태롭다. 2016년 이후 상장된 중국기업 7곳의 공모가 대비 현재(1월26일 종가 기준) 주가는 ▲윙입푸드 2000원→1410원 ▲골든센츄리 3500원→303원 ▲GRT(거래정지 상태) 5000원→951원 ▲오가닉티코스메틱 4000원→624원 ▲컬러레이 3800원→2200원 ▲로스웰 3200원→326원 ▲헝셩그룹 3600원→618원 등으로 곤두박질쳤다.
2016년 이후 상장된 중국기업은 적극적인 배당과 한국사무소 설립 등 국내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적극적인 주주친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주가 수익률은 신통치 않은 상황이다. 중국고섬과 중국원양자원 등의 사태로 국내 투자자의 중국기업 불신이 더욱 확대된 영향 탓이다. 한번 떨어진 신뢰도가 좀처럼 상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