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현지시각)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제16회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습니다. 만 18살의 나이로, 60년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었는데요. 임윤찬뿐 아니라 최근 국내 연주자들이 권위 있는 국제 콩쿠르에서 줄줄이 우승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피아니스트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에게 물어봤습니다. 전문가가 본 임윤찬은 어떤 연주자일까요? 요즘 국내 연주자들, 왜 이렇게 잘나가는 걸까요? ‘K클래식’에 가려진 그림자는 없을까요?
[The 1] 클래식 음악과 그리 친하지 않은 분들도 조성진은 좀 아니까, “조성진보다 잘하냐” 이렇게 묻더라고요. 말 나온 김에 조성진과 비교를 해본다면 어떨까요?
조은아 교수 : 둘 다 내향형 인간 같아요. 내면으로 침잠해서 완벽을 추구하고 음악에만 오롯이 몰입하는 구도자. 차이가 있다면, 조성진은 전인적 조화와 의연한 안정감으로 무장해서 객관화를 통한 균형미를 구현해요. 반면 임윤찬은 음악에 완전히 심취해서 파괴적인 폭발력을 발산해 청중에게 쾌감을 주는 음악을 들려주는 아티스트라고 봐요. 특히 결선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구나 감탄하게 만드는, 밴 클라이번도 하늘에서 듣고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대단한 연주였죠.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마린 알솝(66)의 지휘로 연주하고 있다.
[The 2] 임윤찬이 콩쿠르에서 연주한 곡들, 어떻게 들으셨나요?
조은아 : 지난해 연주회에서 임윤찬의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을 직접 들었는데 그때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70분짜리 독주회를 준비하는데도 엄청난 연습을 해야 하는데, 밴 클라이번 콩쿠르는 5시간을 연주해야 하니까 연습량이 어마어마했을 거예요. 수년씩 준비하는 건 기본이죠. 특히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은 콩쿠르에선 아주아주 드문 선곡이에요. 연주를 망칠 가능성이 너무 크거든요. 이 곡은 리스트가 연주력을 과시하려고 어려운 테크닉을 악랄하게 다 때려넣은 곡이에요. 심사위원들은 망하겠거니 방심하며 듣다가 미친 연주력에 깜짝 놀랐을 거 같아요.
제 16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 입상자들. 가운데가 임윤찬, 왼쪽이 은메달 안나 게뉴시네(러시아),
오른쪽이 동메달 드미트로 초니(우크라이나). 밴 클라이번 재단 제공
[The 3] 임윤찬의 과거 인터뷰를 보니 “콩쿠르에 참여하고 감정을 소비하며 신경 쓰느라 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했더라고요. 콩쿠르가 연주자를 망칠 수도 있어요?
조은아 : 콩쿠르를 좋아하는 연주자가 어디에 있겠어요. 콩쿠르는 기본적으로 잔인하고, 가혹하며, 부조리한 이벤트에요. 그런데도 출전할 수밖에 없는 건 생존을 위해, 무대에 서서 연주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죠. 콩쿠르 채점도 점수를 깎아나가는 방식이니 연주자들도 실수하지 않는데 혈안이 되는 거죠. 심사위원들이 각자 취향이 까다로운데, 그걸 거스르지 않으려면 독창적이기보단 표준화된 해석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피에르 불레즈는 “여럿이 말을 그리면 결국 낙타가 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The 4] ‘K클래식 돌풍’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한국 출신 국제 콩쿠르 수상자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뭘까요?
조은아 : 개인의 재능에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승리욕, 끼가 합쳐졌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 방송에 오디션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아요. 하지만 양날의 칼이죠. 치열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 번아웃되는 일도 많고요. 또 남성 연주자들은 병역 특례로 예술요원이 되면 음악 활동을 쉬지 않을 수 있으니, 목숨 걸고 하죠. 한국식 영재교육 시스템도 이유 중 하나에요. 물론, 엘리트 양성에만 치우쳤다는 한계도 있지만요.
[The 5] 임윤찬은 앞으로 어떤 연주자가 될까요?
조은아 : 1년에 100회 이상 공연하는 연주자로 사는 건 지구를 들어올려야 하는 일이라고들 해요. 전 세계를 끊임없이 돌며 호텔방을 전전해야 하는데, 음악에 대한 사랑과 청중에 대한 사명감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일이죠. 임윤찬 본인이 원하는 건 산 속에 들어가 피아노에만 몰입하는 생활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임윤찬한테 묻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속세와 단절하지 않고 세상에 음악을 들려줄 수 있겠냐고. 본인이 그 답을 잘 찾아갔으면 해요. 클래식 음악계나 미디어도 그의 재능을 소진시키는 게 아니라 앞으로 수십년간 헤쳐갈 음악 수행, 완벽을 향한 내면의 침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합심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