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aysian』님 블로그 펌 -
스스로 자신이 수백억의 빚을 지고 있던 채무자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어느 날 돈을 합법적으로 무한히 찍어낼 수 있는 프린터를 입수했다고 상상하자(옛날 동화의 ‘금 나와라. 뚝딱’ 도깨비 방망이를 상상해도 좋다). 그 날부터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겠는가? 그 날부터 당연히 여러분은 채무를 갚기 위해, 돈을 벌고, 저축하는 일련의 경제 생활 대신 돈 찍는 프린터를 무한히 돌리는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여러분의 모습은 아래 Pink Wojak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래 그림은 유명한 “Money Printer Go BRRR”이라는 gif meme이다. 피눈물을 흘리면서 떨어진 주가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프린터를 돌리는 분홍색 친구의 이름은 Pink Wojak이다. 참고로. https://brrr.money을 방문하면, Wojak의 돈 찍는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돈을 너무 빨리 찍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사이트이다.^^)
그런데 문제는 위의 Pink Wojak과 같이 돈 찍는 프린터를 보유한 채무자가 실제로 있다는 것이다. 바로, 끊임없는 양적 완화를 하는 미국, 일본, EU의 정부가 그들이다. 미국의 예를 들자면, 미국 재무부는 미국의 파산이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하며, 끊임없이 부채한도 상향을 하고 있는데, 부채한도 상향을 통해 미국 정부는 발권력을 가진 연준과 결탁하여 사실상 무한히 부채를 생산하여 돈을 새로이 찍어 내고 있다.
통상 정부부채의 규모를 측정하기 위해 정부 부채비율 즉 ‘GDP 대비 정부부채(정부부채/GDP)’의 기준을 적용한다. 이 기준은 마치 ‘자기자본 대비 부채’ 비율을 측정하는 기업의 부채비율에 상응하는 듯하다. 기업의 부채 수준이 자기자본보다 낮게 통제되면 일단 안정적으로 보는 것처럼 정부부채 규모가 GDP보다 낮은 수준이라면 일단 감당 가능한 부채수준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 부채비율의 기준으로 1940년부터 지금까지의 미국 정부부채 상황을 살펴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위의 그래프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급격히 늘어나던 미국의 정부부채가 1940년대 중반부터 1980년 직전까지 꾸준히 줄어들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수학공식과 그래프가 우리의 시각과 뇌를 속이면서 일어나는 마법이다. 위 그래프의 제목은 Gross Federal Debt Held by the Public as Percentage of Gross Domestic Product이다. 이 긴 제목으로 인해 뇌가 마비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위의 그래프가 바로 미국의 ‘정부부채/GDP’라는 것을 이해하고 다시 살펴보자. 그래도 미국정부가 정부부채를 갚은 것으로 이해되는가? 여전히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다시 아래 그래프를 제시한다.
미국 정부부채 총액
위의 그래프는 Gross Federal Debt Held by the Public, 즉 미국 정부부채 총액이다. 다시 말하지만, 위 그래프는 총액 개념이므로 비율 개념인 정부부채 나누기 GDP와는 전혀 다르다. 이제 이해가 될 것이다. 미국 정부의 부채는 꾸준히 늘었으며, 실상 1940년 이래 지금까지 부채를 갚은 적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저 미국 정부 더 나아가 전세계 정부들은 모두 정부부채 나누기 GDP라는 비율개념을 전면에 내세워서 정부부채가 줄어든다는 착시효과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부채/GDP의 지표에 의하면 정부부채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줄일 수 있다. 첫째, 세금을 걷어서 국채를 상환하는 것이다. 우리 민간경제주체와 같이 돈을 벌고, 번 돈을 적게 먹고 적게 써서 빚을 갚는 방식이다. 즉 긴축을 통한 흑자 재정이다. 그리고 둘째, 파산하거나 채무를 탕감 받는 것이다. 둘 다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다. 그리고 셋째로는, GDP를 높이면 부채비율이 줄어든다. 그런데 GDP에는 실질 GDP와 명목 GDP가 있다. 이중 실질 GDP를 늘리는 방법은 말 그대로 인플레 요소를 배제하고 경제 규모를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명목 GDP를 늘리는 방법도 당연히 가능하다. 인플레이션으로 GDP를 부풀리는 것이다.
바로 이 마지막 방법이 현재 전세계 정부가 리먼 사태 이후 코로나로 확대된 정부 부채를 관리하는 방법이다. 사실 인플레로 GDP를 부풀려서 정부부채를 관리하는 방식은 제2차 대전 이전의 대영제국이나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매우 전통적인 관리 방식이다. 그리고 위의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건전하게 경제를 성장시키기만 한다면, 때로는 당장의 논란 거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양적 완화이다. 앞서 게시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리먼 사태를 기점으로 중국이 미국 국채 매입을 거부하게 되었는데, 이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미국 국채 가격이 폭락하면서 국채 금리가 폭등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에 연준이 미국 국채를 직접 인수하게 되면서 국채 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 문제는 리먼 사태 당시에 연준이 양적 완화가 임시 방편이라고 선언하였던 것과는 달리 오늘날은 그리고 앞으로도 양적 완화가 상시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양적 완화의 원래 목표는 장기 금리를 낮추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 국채 및 MBS의 매입은 해당 채권의 수요를 높여 장기 금리를 낮추는 수단에 불과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장에 유동성이 풀리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따라서 통상 미디어에서 말하듯이 양적 완화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표현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표현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초기의 양적 완화는 시중에 잉여 유동성의 공급 가능성을 최소화하도록 관리되었다. 리먼 사태 당시 연준은 일단 금융기관이 보유한 기발행 국채만을 매입하였고 그 대금을 해당 금융기관에만 주입하였는데, 동시에 해당 금융기관들의 대출을 통제하여 양적 완화로 주입된 자금이 시중 통화량 증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결국 양적 완화가 원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종국에는 시중 통화량의 확대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중국이나 일본 등 해외 경제주체가 미국 국채를 매입했으므로 미국 국내의 통화량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리먼 사태 이후 연준이 양적 완화를 통해 미국 국채를 매입하면 연준의 보유 자산이 확대되면서 본원 통화가 늘어난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리먼 사태 직후에는 금융기관이 보유한 기발행 국채만을 매입했으나, 양적 완화가 상시화되고 연준의 보유 자산이 확대되면서 적절한 수준의 금리 통제를 위해 연준은 결국 금융기관이 보유한 기발행 국채와 더불어 미 행정부의 신규발행 국채까지 매입하는 상황이 초래되었고, 때마침 코로나로 인해 급격히 불어나는 미 행정부의 자금 수요까지 감당하게 되면서 이른바 돈 찍기에 의한 통화량 팽창이 본격화된다. 그리고 향후에도 과거처럼 미국 국채를 매입해 줄 해외 경제주체를 찾지 못한다면, 이러한 양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향후 달러가 CBDC로 발행되면, 양적 완화에 따른 통화팽창의 부작용은 훨씬 더 배가될 수 있다. 이렇게 양적 완화는 미국 행정부가 발행한 장기 국채의 금리를 낮추기 위한 방법이며, 통화량 확대를 초래한다.
한편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연준의 기준금리 통제는 단기금리에 영향을 미치려는 조작이다. 미국에서는 연준의 국채 매입으로 늘어나는 금융기관의 초과 지준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는데 이때 적용되는 금리가 기준금리이다. 즉 기준금리 인상은 국채 발행 비용을 높인다. 따라서 이 역시도 기준 금리 인상을 장기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 혹자는 과거 폴 볼커가 20%대의 기준 금리를 적용했던 전례가 있으니 지금도 그런 식의 정책을 도입하자고 주장할지 모르나, 앞서 그래프에서 보았듯이 현재 미국의 정부부채 규모는 폴 볼커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대되었다. 미국 정부는 이제 20%대의 기준 금리를 감당하지 못한다.
사실, 기준 금리의 인상 자체는 시중 유동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기준 금리는 시중 유동성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을뿐더러, 기준 금리를 아무리 올려도 인플레 수준보다 낮아서는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상태가 되기 때문에 유동성 축소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여전히 기준금리 조작을 통해 인플레이션 관리를 시도하는 것이 현실인데, 그 이유는 우선 기준 금리의 인상 또는 인하는 연준의 금리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방향타이기도 하며, 더욱이 연준은 기준 금리 인상과 더불어 금리 인상에 따른 국채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유 자산의 규모를 줄이는 정책을 함께 적용하는데, 바로 후자가 시중의 유동성 축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다. 따라서 해당 정책과 함께 적용되는 기준 금리 인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상의 상황을 종합하자면, 연준과 미국 재무부는 장단기 국채 금리를 낮추고, 인플레이션을 조장할 인센티브를 보유한다. 우선, ① 장단기 국채 금리를 낮추어야 미국 정부가 새로이 빚을 낼 때 그 이자 부담을 줄이게 된다. 그리고 ② 정부 부채 규모를 낮추기 위해서는 GDP를 성장시켜야 하는데, 이때 실질 GDP의 성장은 물론, 인플레이션을 통한 명목 GDP 규모의 증가 역시도 통계상 정부부채의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다만, 혹시라도 미국 정부가 부채를 갚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만약 자신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고 상상해 보자. 부채를 갚기 위해 긴축 재정을 운영하여 자산시장의 거품을 꺼뜨리고 전국민의 허리를 졸라매게 하면 재선이 가능하겠는가? 특히나 베이비 부머 등을 비롯한 미국의 은퇴 계층은 주식시장에 자신이 전 생애에 걸쳐 모은 자산을 투자하거나, 이에 노후 생계를 의지하고 있다. 이들에게 주식시장의 붕괴는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국채를 매입할 해외 경제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양적 완화를 상시화한다는 것은 미국 정부가 나라 빚을 갚을 의사가 전혀 없음을 공식화한 것이나 다름 없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미국 정부와 연준이 금리 인하와 인플레이션에 대해 正의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는 한, 현재 진행되는 과격한 금리 인상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 오히려 금리 인상을 최대한 단기간에 마무리 짓기 위해 자이언트 스텝, 울트라 스텝 등의 충격 요법을 동원하는 것이며, 그나마도 만에 하나 나타날 디플레 우려의 현실화를 막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원래 양적 완화는 금융위기를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어야만 했고 그런 취지로 적용되었다고 믿어진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양적 완화를 하기 위해 금융위기를 만들어 낸다고 보는 시각이 현실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는 현재의 양적 긴축은 앞으로 양적 완화를 추진하기 위한 사전 준비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향후 매입할 채권을 미리 매각해 놓는 것이다.
리먼 사태 이후 이른바 서구 경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시장경제가 아니다. 서구경제는 이미 보이는 손이 움직이는 계획경제이며 일종의 변형된 사회주의 경제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겠다. 특히 선진국 경제는 양적 완화 등의 인위적인 시장 조작이 없이는 붕괴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2년 8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현 시점, 경기 침체와 자산시장 급락의 우려가 서서히 시장에 번져가고 있다. 분명히 언급해 두지만,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 울트라 스텝까지 동원하면서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의지를 보이는 이상, 자산시장은 반드시 폭락한다. 그러나 서구 경제의 존립을 위해서는 자산시장의 폭락 이후에는 반드시 새로운 버블이 만들어져야 한다. 자산 버블을 만드는 잉여 유동성은 글로벌 경제의 스테로이드이다. 이 스테로이드가 없이는 지금 글로벌 경제는 단 한순간도 존재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초장기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다.
본 시리즈의 다음 두 편의 글에서는 초장기 인플레이션에 대한 제4차 산업혁명과 그레이트 리셋의 영향을 살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