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수 시간 만에 탄생? 1억 개 입자 최초 고해상도 시뮬레이션
NASA 연구팀이 수십억 년 전 지구의 달이 ‘하루아침’에 탄생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했다. 1억 개의 입자로 이제까지 없었던 고해상도 시뮬레이션을 수행함으로써, 지구의 역사와 행성과학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당 연구는 10월 4일자 국제학술지인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에 게재되었다.
‘테이아 충돌’로부터 탄생한 달
지구의 오랜 동반자인 달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과거부터 여러 가설이 대립해왔다. 태양계가 형성될 때 원시지구가 탄생할 때 원시달도 함께 탄생했다는 ‘동시생성설’, 지나가던 달이 지구 중력에 이끌려 포획되었다는 ‘포획설’, 지구의 원심력으로 인해 지구로부터 떨어져 나온 덩어리가 달이 되었을 것이라는 ‘분리설’ 등 여러 가설이 제시된 바 있다.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달 탄생설은 ‘거대충돌설’이다. 거대충돌설은 아폴로호가 가져온 원석분석 결과 등 여러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수십억 년 전,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원시지구에 화성 정도 크기의 질량의 소행성체가 충돌하며 파편이 뒤섞이고, 오늘날의 달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달의 기원이 된 이 소행성체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달의 여신 셀레네의 어머니인 티탄 여신 ‘테이아(Theia)’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에 따라 거대충돌설은 ‘테이아 가설’이라고도 불리며, 달 형성의 기점이 된 소행성체 충돌을 ‘테이아 충돌’이라고 일컫는다.
수십억 년 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원시지구에 소행성체 ‘테이아’가 충돌하며 달이 탄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달 탄생에 얽힌 수수께끼
과학자들은 테이아 충돌을 통해 달이 형성됐다는 여러 증거를 찾아냈으나,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달이 탄생했는지는 명확히 밝혀진 바 없으며 수십 년에 걸친 수수께끼였다.
이제까지 알려진 대부분 이론에 의하면, 테이아 충돌의 잔해로부터 달이 형성되기까지는 적게는 수개월부터 수년이 소요된다. 궤도에서 파편들이 서서히 합쳐지며 오늘날의 달을 형성했다는 설명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격언이 있듯이, 수십억 년 동안 지구의 오랜 동반자였던 달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는 것은 일견 합리적인 설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NASA 에임스 연구센터의 제이콥 케그리스 박사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은 이제껏 없었던 고해상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혀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테이아 충돌 후 즉시라 할 수 있는, 불과 수 시간 만에 달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연구의 주저자인 케그리스 박사는 “연구 결과는 달 진화의 출발점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말했다.
최초의 초고해상도 시뮬레이션, 1억 개 입자로
연구에 활용된 시뮬레이션은 달의 기원을 포함, 거대한 충돌 과정을 구현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중에서도 가장 높은 해상도와 세부사항을 구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었다. 입자의 개수를 10만 개부터 1억 개까지 늘려가며 시뮬레이션 결과를 비교하자, 기존 연구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양상이 시뮬레이션 해상도(입자개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관찰되었다.
테이아 충돌 후 3.6시간의 모습을 각각 다른 해상도로 시뮬레이션한 모습이다. 입자의 개수를 10만 개부터 1억 개까지 늘려가며,
시뮬레이션 해상도에 따라 달 형성 메커니즘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결과에 대해 케그리스 박사는 “우리는 이와 같은 고해상도 시뮬레이션이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연구에 착수했다”며 “그래서 시뮬레이션의 기존 해상도가 잘못된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고 소감을 말했다.
달 탄생을 시간별로 들여다보면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충돌 후 원시 달의 모태는 약 4시간 만에 떨어져 나와 궤도에 안착한다. 7시간이 지나면 궤도 주위의 작은 파편들이 정리되고, 더 시간이 흐르면 달을 이루지 못하고 지구로 되돌아간 충돌 파편도 다시 지구와 합쳐진다.
테이아 충돌 후 달의 형성 과정 시뮬레이션을 시간순서대로 나타낸 모습
지구와 달이 충돌 후 제 모습을 갖추기까지 하루 남짓한 시간이 소요되고, 테이아 충돌 후 달의 모태는 반나절 만에 형성되는 것이다.
달의 기원을 밝힌다는 것
달의 기원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달의 질량과 궤도, 달 암석의 분석 결과 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상태에 이르렀는지 시나리오를 정립하는 것이다. 지구와 달의 물질 구성 및 동위원소비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은, 달을 구성하는 물질의 상당 부분이 지구에서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테이아 충돌 가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에도, 이와 같은 사실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약점이었다. 충돌로 인해 궤도에 흩뿌려진 지구의 일부 파편과 테이아가 뒤섞여 달이 만들어졌다면 이 정도의 유사성을 보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시뮬레이션 결과에서는 지구의 더 많은 부분이 달의 외피를 형성하고 있기에 달과 지구 물질의 유사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연구팀은 달 충돌 과정을 더욱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서 NASA 아르테미스 미션을 통해 달의 다른 부분과 달 표면 아래 깊숙한 곳의 월석을 채취해와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의 빈센트 에케 박사는 “달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더 많이 알아갈수록, 우리는 지구의 진화에 대해 더 많은 발견을 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우주 곳곳에서 충돌 사건이 빈번한 만큼, ‘충돌’에 대한 연구는 행성의 형성과 진화를 규명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특히 이에 대한 시뮬레이션과 분석이 이루어질수록, 행성이 어떻게 지구처럼 생명이 거주할 수 있도록 진화하는지 밝히는 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