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결이 살아있는 바닥, 온통 까만 벽면. 고등학교 체육관이 떠오르는 장소에서 다섯 소녀가 춤을 춘다. 몸을 덮는 풍덩한 체육복과 화장기 옅은 얼굴이 수수하다. 1일 유튜브에 공개된 ‘디토’(Ditto) 안무 연습 영상 속 그룹 뉴진스는 아이돌 그룹보다는 학창시절 ‘댄동’(댄스 동아리) 회원 같다. 강렬한 음악과 화려한 비주얼, 복잡한 세계관을 앞세운 4세대 아이돌과는 영 딴판이다.
데뷔곡 ‘어텐션’(Attention)과 ‘하입 보이’(Hype Boy)로 돌풍을 일으킨 뉴진스가 2일 돌아온다. 분위기는 이미 뜨겁다. 소속사 어도어에 따르면 뉴진스가 이날 내는 싱글 ‘OMG’는 선주문량 80만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8월 발매한 데뷔 음반 총판매량 69만장을 넘어선 수치다. 지난달 17일 발표한 선공개곡 ‘디토’는 멜론·벅스·지니 등 한국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일간·주간 차트 1위를 석권했다. 미국 빌보드가 전 세계 200여개국 인기곡을 종합 집계하는 글로벌 200에서는 36위에 올랐다.
대세 거슬러 대세 됐다, 뉴진스 돌풍의 비밀
뉴진스의 인기 비결은 ‘대세 역행’이다. K팝 흥행 문법을 벗어난 콘텐츠와 마케팅으로 차별화를 이뤘다. 힙합과 EDM 등을 섞은 강렬한 음악이나 ‘독기 품었다’고 표현되는 역동적인 칼군무 대신, 산뜻하고 세련된 음악과 춤을 내세웠다. 소속사는 뉴진스 데뷔 음반 소개글에서 “정형화된 K팝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며 “어디서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이지리스닝 팝을 추구하는 동시에, 과장 없는 사운드 엔지니어링으로 멤버들 본연의 목소리를 살렸다”고 설명했다. 맛보기(티저) 콘텐츠 없이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바로 공개하는 홍보 방식도 색다르다. “내가 선보이고자 한 콘셉트는 음악”(중앙일보)이라는 민희진 대표의 뚝심에 따른 선택이다.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오가는 세계관(그룹 에스파)이나 자기 애착에 뿌리를 둔 연작 음반(그룹 아이브) 등 방대하고 복잡한 설정을 내세우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뉴진스의 세계는 자연스러움에 방점을 찍는다. 음원과 함께 공개된 ‘디토’ 뮤직비디오가 그 예다. 배경은 1998년 한 고등학교. 반희수(박지후)가 캠코더에 기록한 다섯 친구(뉴진스)의 일상이 뮤직비디오를 채운다. 투박하고 산만한, 그러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영상은 보편의 향수를 자극한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밀레니얼 세대는 물론, 그 시기를 경험하지 않은 Z세대마저 ‘디토’의 세계를 자기 추억인 양 느끼게 하는 힘이다. 해당 뮤직비디오는 공개 2주 만에 2500만뷰(A·B버전 합산)를 돌파했다.
“현실에 존재하는 성장기 여성”…MZ세대 아우른 뉴진스 세계
가요계에선 뉴진스가 독특한 감각으로 대안 현실을 구축해 다양한 세대에게 소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소녀시대·에프엑스·레드벨벳 등을 브랜딩한 ‘걸그룹 미다스의 손’ 민희진 대표이사를 필두로 다양한 분야 전문가와 자본력이 결합해 뉴진스만의 세계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뉴진스는 과거와 현재를 뉴진스만의 감각으로 재구성한다. 음악은 물론, 뮤직비디오와 MD(기념 상품)를 통해서도 독자적인 서사를 완성하고 있다”면서 “현실에 존재할 법한 성장기 여성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줘 흥미롭다”고 짚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소녀’라는 정체성은 신곡 ‘OMG’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소속사에 따르면 ‘OMG’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한편에 공존하는 묘한 거리감과 조심스러움, 낯섦을 표현한 곡이다. 타인과 맺는 관계에 집중해 “함께 성장하는 우리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다. 멤버들은 최근 녹음한 멜론 스테이션 방송에서 “보컬과 퍼포먼스 모두 맛깔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면서 “멤버들끼리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열심히 연습해 (신곡 활동이)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