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투자하는 당신은 역시 금리 향배가 궁금할 것이다. 이건 미국 연준 의장인 파월의 마음이다. 그가 '내려도 될 때' 라고 생각하고 결단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 금리가 다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파월의 결단이 필요한 이 저금리는 그리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파월은 빨리 결단하지 않을 것이니까.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파월이 아서 번즈가 되고 싶을 리 없다.
돈 얘기지만, 날씨 얘기로 시작해 이 전반적 상황을 폭넓게 탐색해보자. 길지만 끝까지 읽으면서. 연초니까.
■유럽 가스 가격이 전쟁 전으로 돌아갔다
유럽이 덥단다. 겨울인데 덥단다. 스위스 스키장들은 눈이 없어 휴업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아래 사진은 차례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다.) 올 겨울 다 이 모양이다. 영국의 BBC는 독일과 프랑스, 우크라이나에서 1월 기온 최고치 기록이 깨졌다고 했다. 리히텐슈타인의 수도 바두츠는 섭씨 20도다. 스페인 빌바오는 섭씨 25.1도다.
큰 틀에선 기후 변화 때문이고, 우려할 일이지만 올해는 다른 시각이 우세하다. 유럽이 안도한다. 블룸버그는 유럽이 에너지 위기 걱정을 덜게 됐다고 보도했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주말을 기준으로 2021년 12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아래 그래프에 나타난대로.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다. 지금의 이 인플레이션은 공급 충격발 인플레이션 아니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 에너지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했고, 그 때문에 수입 물가가 올라 국내 물가도 따라 올랐다. 공급 충격의 큰 기둥이던 그 가스 가격이 내려가니 물가 압력은 줄어든다.
■당신의 속마음... 이제는 그만 금리 인하를 생각해도....?
가스 뿐 아니다. 국제유가도 줄줄 흐른다. 북해 브렌트유, 북미 텍사스산 원유, 두바이유 할 것 없이 다 내림세다. 이유는 경기둔화 우려, 또 최근의 중국 코로나 확산 때문이다. 다른 원자재도 마찬가지다.
투자하는 사람들은 희망을 품을 것이다. 날씨에 힘입어, 또 경기 둔화가 실제로 오면서... 바라고 바라던 가격의 안정이 다가오고 있다. 실제 물가 지수에서도 이 추세가 확인된다.
추세 변곡점을 알리는 국내 물가 그래프 딱 하나만 보자. 다른 물가 말고 개인 서비스 물가 추이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살짝 떨어졌기 때문이다.
개인 서비스는 쉽게 말하면 식당 메뉴판 가격 같은 것들이다. 이 서비스 가격은 '물가 상승기의 최후까지 계속 오르는 지표'다. 설명하자면, 먼저 에너지 가격이 오른다. 그 다음 석유 쓰는 공업제품 가격 오르고, 곡물 가격 오르고, 가공식품 가격 오르고, 그래서 인건비도 오르고... 이런 연쇄 작용 끝에 마지막에 오르는 것이 '식당 메뉴판 가격' 같은 서비스 가격이다.
그래서 서비스 가격은 지난해 6월 석유류 가격 내려가기 시작한 뒤에도 계속 올랐었는데, 지난 연말부터 미세하나마 떨어지고 있다. 물가가 더는 올라가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다.
이제 기대는 한 발 더 나아간다. 금리 인하를 생각해도 되지 않겠나? 다음, 아니면 다다음 회의에서 미 연준이 비둘기 같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 지표가 그래도 된다는 상황이 아닌가?
■ 파월, 비둘기 혹은 유약한 사람
모두가 아다시피 이 중요한 변화는 한 사람의 입에 달려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입이다. 사실 그는 비둘기로 명성(?)이 높다.
근거는 차고 넘친다. 물가가 치솟기 시작하던 지난 2021년 중반 이후, '물가는 일시적으로 오를 뿐이다'며 좀 올라도 금리 인상은 하지 않고 '인내'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말을 바꿔 '도저히 못 버틴다, 판단 착오였으니 금리를 좀 올려야 할 것 같다'고 선언한 그해 하반기에도 '한두 번 제한적으로 올릴 것'을 시사했다.
2022년엔 내내 전망에 실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까지도 올해 기준금리 상단을 1%라고 봤고, 전쟁 개시 뒤인 3월에도 2%로 봤다. 전망은 계속 바뀌었다. 6월에는 갑자기 3.5%까지 금리 상단을 올리더니, 9월에는 4.5%, 12월에는 5% 위로 올렸다. (이 이야기가 궁금하면 아래 점도표 기사를 한 번 살펴볼 것)
[연관 기사] 시장은 ‘자이언트스텝’ 아닌 ‘점도표’에 놀랐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61818
이렇게까지 틀리고, 말을 바꾸는 연준 의장이 있었던가. 파월은 그렇게 지난해 망신살 제대로 뻗쳤다. 지금 이 인플레이션의 주범은 '예측하지 못하고 대응하지 못한 우유부단한 연준, 그리고 무능한 파월'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사실 파월은 유약한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트럼프가 임명한 파월은 트럼프로부터 갖은 협박을 들었다. 트럼프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은 중국이 아니고 파월'이라고 소리 높였다. 재선을 앞둔 트럼프는 2019년 당시 SNS상에서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금리를 내리라는 닥달이었다. 급기야 '해고해버릴 것'이란 협박도 했다. 그런 말을 듣고도 파월은 강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결국, 경기가 아직 좋은데 '보험적 성격'이라며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금리를 인하하기도 했다. 재선을 앞둔 트럼프는 흐뭇해했다.
[연관 기사] 중앙은행 이야기① 트럼프 어깨 너머로 ‘뉴노멀’ 엿보기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345964
바이든 때는 바이든에게 보조를 맞추었다. 연임 전에는 비둘기, 연임 뒤에는 매파가 되었다. 시장은 늘 그런 파월을 좋아해 왔다. 경기를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 앞에서 온순한 연준 의장, 시장의 걱정에 앞서 늘 먼저 대책을 내놓는 의장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금리를 조만간 내리겠다고 시사'해도 이상해 보이진 않을 것이다.
물론 시작부터 분명히 적어놨지만, 그럴 리는 없다는 것이 이 기사의 핵심이다.
■ '그래도 아서 번즈 같은 이름으로 역사에 남을 순 없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연준 의장은 많다. 그린스펀은 '태평성대를 누린 운 좋은 연준 의장'이다.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 투사'다. 물가를 잡으려고 경기를 일단 완전히 침체시킨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다. 버냉키는 금융위기를 해결한 소방수다.
여기까지는 나름 성공한 연준의장이다. 그리고 늘 이 성공한 이름들의 끝에 '불명예스런 이름'이 하나 호명된다. 바로 닉슨 대통령 시절 연준 의장을 역임한 아서 번즈다.
아서 번즈 (1970~78년 연준 의장 재임), Fed’s great anti Hero
아서 번즈(1970~1978)는 최악의 연준 의장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 연말 최종호에서 번즈가 '중앙은행제도 실패의 상징'처럼 여겨진다고 했다.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처럼 안티 히어로(Fed’s great anti Hero)라고도 표현했다. 인플레이션 앞에서 나약했고, 그래서 경제를 재앙으로 몰고 간 나약한 리더의 이미지다.
그 이미지는 뒤이은 연준 의장 폴 볼커(1979~1987)와 결정적으로 대비된다. 번즈는 친구인 닉슨이 재선을 위해 금리를 낮게 유지해주길 바랄 때 그렇게 했다.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어졌지만 '연준이 월스트리트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고금리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가 역사에 남아버렸다. 후임인 볼커는 기준금리를 20% 수준까지 끌어올려서 물가를 잡았으니까. 볼커는 Hero가 됐고, 번즈는 결국 '잘못된 판단'의 대명사가 됐다.
단순히 금리를 낮게 유지하면 번즈처럼 실패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조금 더 보인다. 당시 상황 속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자.
마지막으로 그래프 하나만 더 보자. 아래 그래프에서 파란 선은 '기준금리'이고, 녹색은 '소비자물가(근원물가, 식품-에너지제외 지수)'다.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번즈가 금리를 안 올려서 '최악의 인물'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번즈야말로 물가에 앞서 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렸고, 물가보다 더 높이 금리를 올렸다. 그래프만 보면 오히려 볼커보다 과감하고 선제적이었다.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번즈가 금리를 안 올려서 '최악의 인물'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번즈야말로 물가에 앞서 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렸고, 물가보다 더 높이 금리를 올렸다. 그래프만 보면 오히려 볼커보다 과감하고 선제적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오래 버텼느냐다. 번즈는 13% 수준까지 끌어올리긴 했지만, 근원물가(식품 에너지 제외지수)가 채 정점을 찍기 전에 그 금리를 급격히 내렸다. 근원물가가 아닌 헤드라인 물가가 떨어지자 '물가가 잡혔다'고 생각해 금리를 서둘러 내린 것이다.
볼커는 이 점에서 달랐다. 근원물가가 정점을 찍은 뒤에도 금리를 더 올렸다. 꺾일듯하던 물가가 안꺾이자 금리를 무려 20% 수준까지 잡아 올려버렸다. 그리고 근원물가가 떨어진 뒤에도 금리를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에 올려두었고, 물가가 완전히 떨어진 뒤에도 금리를 쉬 물가 아래로 내리지 않았다.
폴 볼커 (1979~1987 재임), Fed’s great Hero, Inflation Fighter.
그러니까 번즈가 반면교사하고, 볼커가 가르쳐주는 물가 잡기의 핵심 비결은 '인내심'이다. '물가가 확실하고도 영구적으로 안정됐다고 확신할 시점까지 올려놓은 금리를 내리지 않고 버티는 인내심'이다.
데이터를 뻔히 보고 있는 파월은 자신이 두 선배 의장보다 늦었다는 것을 안다. 유일하게 근원물가 오름세보다 뒤쳐져서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의장이고, 지금 현재도 물가보다 기준금리를 더 높이지 못한 의장이다. 지금 상황도 헤드라인 물가는 고점에 있는 듯 하지만 고용지표는 여전히 경기 둔화를 가리키지 않는다. 아직 경기가 침체 되었다고 볼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런 상황이니 파월은 '만약 섣부르게 금리를 내렸다가 물가가 다시 치솟으면 번즈처럼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이코노미스트지 "어쩌면 번즈는 불운한 사람"
이코노미스트지는 번즈가 몇 가지 측면에서 억울할 수 있다고 조명한다. 우선은 13%까지 올린 번즈도 전례가 없을 정도로 높이 올린 것이다. 불운하게도 물가가 그보다 더 치솟았을 뿐이다. 사실, 후임자 볼커가 물가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번즈의 교훈 덕분이다. 즉, 13% 정도 올려서는 물가 못 잡으니 더 많이 올려야 한다는 교훈을 전임자로부터 얻었다.
또, 데이터도 불운했다. 1975년, 미국의 1분기 GDP 속보치가 연율로 10% 크게 감소하고 인플레가 꺾인 것으로 나왔다. 그걸 보고 번즈는 금리를 공격적으로 낮췄다. 그런데 나중에 수정된 수치는 달랐다. GDP는 그리 많이 줄지 않았고, 인플레는 지속됐다. 데이터의 오류가 번즈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지금은 데이터가 확실하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통계 데이터는 언제나 틀릴 가능성이 있다. 데이터 앞에 신중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마지막으로 번즈가 무죄일 수 있다는 주장도 한다. 이런 논리다. '1차 오일쇼크는 1973년 왔다. 번즈가 금리를 올린 뒤 꺾였다. 번즈의 임기는 1978년 1월에 끝났다. 2차 오일쇼크는 1978년 번즈가 그만둔 뒤 찾아왔다. 그러니 2차 오일쇼크로 인한 물가 충격은 번즈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다 소용없다. 어떤 변호를 해도, 번즈는 영원히 '중앙은행 실패의 상징'으로 자리할 뿐이다. 물가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고, 또 물가가 완전히 안정됐는지 확인하지 않고 금리를 더 내려버린 죄는 역사의 법정에 아로새겨있다.
■ 파월은 꺼진 불도 다시 보고, 또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신이 파월이라면 금리를 빨리 내리겠는가? 파월 입장에서는 실존적 결단이 될 것이다. 역사가 기록할 것이기 때문이다. 파월은 끝없이 의심해야 한다. 코로나 19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치솟은 물가를 확실히 잡았는가? 데이터는 도저히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사실을 증명하는가? 혹시 물가가 어떤 충격을 받아 다시 치솟아 오를 가능성은 없는가?
번즈가 되지 않으려면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한다. 아니면 파월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중앙은행 실패의 전당'에 번즈 옆에 아로새겨질 테니까. 당장 가스나 석유 가격이 내린다고, 물가 지표가 하락 반전했다고 달라질 건 없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투자자이자 독자인 당신이 기다릴 저금리는 아직 저 멀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