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배를 상회하는 S&P 500 PER. 가격 부담 vs. 나름의 이유 대립
S&P 500의 12MF PER이 18배를 상회하면서 52주 신고가 경신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S&P 500이 18배 이상을 적용받으려면 1) 초저금리거나, 2) 이익 성장 기대가 공고하다는 조건이 필요했다. 과거 경험에 빗대면, 현재 통화정책 여건과 기업의 성장성은 18배에 안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거시적 시각에서 자연히 가격 부담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당사가 1) 회사채 금리, 2) ROE와 실질금리로 회귀분석해 살펴본 S&P 500의 적정 PER은 16배 후반 수준이다. 대략 10% 가까이 고평가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주가가 유지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시장의 밸류에이션이 높게 유지되는 이유로 크게 네 가지 요인을 지목한다.
1) 초대형주가 홀로 차별적인 밸류에이션을 적용받으면서 전체 시장의 PER을 왜곡하고 있다. S&P 500의 시가총액 27%를 차지하는 상위 10개 기업들의 PER은 26.5배다. 이들을 제외하면 S&P 500의 12MF PER은 16.5배로 낮아지며, 두 그룹 간 격차는 60%다. 한 때 80% 이상의 프리미엄을 적용받았던 팬데믹 시기보다는 덜하지만 지난 20년간 상위 4%에 해당하는 높은 수준은 맞다.
2) 초대형주들은 안전자산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들은 현금 창출력이 견고하고, 보유 현금이 많고, 부채부담이 낮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소버린과의 객관적인 비교는 쉽지 않겠으나 시총 3대장인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알파벳은 미국 정부 신용등급에 준하거나 더 높다. 정부 부채한도 협상과 은행위기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초대형주들이 리스크 프리미엄의 상승은 피해가고 국채 금리 하락만 누리면서 높은 밸류에이션이 유지되는 행간이다.
3) 초대형주 이외에는 가격 부담이 그렇게 극심하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작년 하반기에는 BBB급 회사채 금리보다도 주가수익률이 낮아지면서(=고평가) 할인율 부담에 취약해졌으나, 금년 들어 회사채 금리 대비 고평가 기조는 털어냈다. 이들이 현재 적용받고 있는 16.5배의 PER은 지난 10년 평균에 해당하며, 팬데믹 이전 경기 확장기였던 2016~2018년 수준보다 낮다.
4) 연준의 통화긴축 정점 통과 기대감이 유지되는 가운데, 작년 7월을 고점으로 내리막을 걸었던 기업이익의 바닥 통과 시점이 임박하고 있다는 점도 시장의 밸류에이션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판단이다. 과거 경험 상 12MF EPS가 바닥을 통과할 때는 PER이 먼저 반등하고 후행적으로 기업이익이 개선되는 경향이 있었다. 한편 시장에서는 늦어도 연말에는 긴축 기조 되돌림 개시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EPS 바닥 통과와 긴축 정점 통과의 조합은 PER에 긍정적이다.
하반기 미국 주식시장, ‘PER’이 아닌 ‘EPS’가 핵심 변수
미국 주식시장의 높은 밸류에이션을 너무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다. 높은 PER은 기대수익률을 제약하는 요소는 맞지만, 그때문에 시장이 급락할 위험은 낮아진 국면으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EPS가 더 중요하다.
18배를 상회하는 S&P 500의 12MF PER은 분명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초대형주를 제외하면 납득할 만한 밸류에이션이며, 강력한 경제적 해자를 갖춘 초대형주는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인식한다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단적으로 워렌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12MF PER이 27배에 달하는 애플의 투자 가치에 대해 만족한다는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PER을 결정하는 요소는 금리와 성장성이다. 과거 시계열을 되짚어보면, 긴축 후반부에 돌입 시 주식시장 밸류에이션을 결정하는 핵심변수는 금리가 아닌 EPS(=성장성)였다. EPS 개선이 이어지면 시장금리가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PER은 오히려 할증되는 사례가 관찰되고, EPS가 급락하면 금리 인하 기조가 개시됨에도 불구하고 PER도 동반적으로 급락하는 사례들이 발견된다. 최근 S&P 500의 12MF EPS의 3개월 증가율은 (+)로 반전해 바닥을 다지려는 징후를 보인다. 이는 PER 에도 긍정적인 요소로 해석할 수 있다.
금리 때문에 PER 측면에서 노이즈가 발생할 가능성은 분명 낮아졌다. 레이 달리오의 표현을 빌려오면, 물가 불확실성이 클 때 시장은 할인율에 휘둘리나(주식-채권 동행) 물가 불확실성이 잦아들면 할인율보다는 경기 방향성(주식-채권 역행)을 주목하게 된다. 물가는 높지만, 그래도 이제는 시장 컨센서스 범주 내에서 발표되고 있다. Citi 미국 물가 서프라이즈 지수는 중립 수준까지 근접했다. 따라서 하반기 주식시장 방향을 가를 변수는 PER 부담이 아닌 EPS라는 판단이다.
가격 부담을 완화시켜줄 요소들: 자사주 매입과 빈 수급
통화정책과 기업이익 반등 이외에 높은 가격 부담을 완화시켜줄 요소들도 점차 보여질 수 있다. 첫 번째는 주식 ‘공급 감소 효과’다. 올해 S&P 500의 자사주 매입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8,500억달러)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현 시총에 대입한 바이백 일드는 2.5%로 자사주 매입 강도가 평시 대비 특별히 높진 않다.
그러나 하반기 기업이익 반등이 가시화되면 내년 이후의 자사주 매입 계획이 확대될 여지가 있으며, 빅테크들은 이미 1분기 실적 시즌에서 자사주 매입 계획을 강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IPO나 유증을 통한 신규 공급이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역사적인 냉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난 1년간 S&P 500의 발행주식 수(시가총액/지수가격)는 1.16% 감소했다. 하반기 이후의 주식 공급 감소 효과는 작년을 뛰어넘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수급 상황이다. 주식시장 반등에도 불구하고 2월 이후 미국 증시에서는 수급 이탈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개월 간 매수 거래량보다는 매도 거래량의 비중이 컸으며, 펀드플로우에서는 금년 내내 자금 유출이 확인되고 있다. 선물시장의 투기적 포지션은 팬데믹조차 뛰어넘는 지난 10년내 최대 규모다. 신용잔고 역시 작년 고점대비 30% 감소하는 과정을 거쳤다.
지난 3개월간 투자자들의 수급 이탈은 밸류에이션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가격 때문에 나갈 수급은 상당 부분 이탈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향후 어지간한 강도의 경기 침체가 닥치치 않지지 않고 기업이익이 바닥을 다져준다면 수급 이탈은 진정될 공산이 있다. 펀드플로우의 경우 수급이 실적 변곡점보다 3개월 가량 뒤에 형성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주식시장의 가격 부담이 높아서 고민할 시기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경기 방향성과 실적 반등 가능성과 더 집중할 시기다. 긍정적 징후는 쌓이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경기 하강을 뚫고 1분기 평균 이상의 어닝 서프라이즈는 실적의 변곡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 신한투자증권 Global Equity Strategist 김성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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