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구자들의 상온 초전도 논문./아카이브
한국인 연구자들이 쓴 상온 초전도체 논문이 공개되면서 물리학계가 시끄럽다. 그동안 오랜 난제로 여겨졌던 상온 초전도 현상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논문에서 근거로 하는 이론이 주류 학계의 이론에 들어맞지 않아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2일 사전논문 출판사이트 ‘아카이브’에 한국 연구자들이 상온 초전도체에 대해 쓴 두 개의 논문이 공개됐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세계 최초로 상온 초전도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저자는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이 회사 연구자들이며 논문 저자 중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근무했던 김현탁 박사도 포함돼 있다. 다만 아카이브에 올라온 논문은 동료 평가가 되지 않았고, 특정 학술지에 발표된 것도 아니다. 아카이브는 누구나 쉽게 게재할 수 있는 구조이다.
상온 초전도 현상은 과학계의 오래된 난제이자 꿈이다. 초전도 현상은 금속이나 화합물의 전기저항이 어느 온도 이하에서 급격히 0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기저항이 없기 때문에 전력 손실이 발생하지 않아 향후 초고속 컴퓨터나 무손실 송전 등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현재 기술로는 영하 200도 이하의 극저온이나 초고압에서만 초전도 현상을 구현할 수 있다.
한국 연구자들이 공개한 논문은 이 초전도 현상을 상온과 상압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개발한 상온 초전도 물질은 납과 인회석 결정 구조인 ‘LK-99′다. 공개된 논문에 따르면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임계 온도는 섭씨 126.85도(400K)로, 상온·상압에서 초전도 현상을 구현할 수 있다. 한 물리학자는 “실험 데이터가 조작된 것이 아니라면 획기적인 성과이긴 하다”라고 말했다.
초전도체 사진./Oak Ridge National Laboratory
하지만 물리학계에서는 논문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이 논문이 김현탁 박사의 이론을 뼈대로 하고 있는데, 김 박사가 주장하는 이론은 현재 물리학계의 정설과는 판이하다. 앞서 1990년대에도 고려대 화학과 최동식 명예교수가 비슷한 이론을 주장한 바 있지만, 구현에 실패했다. 제1저자인 이석배 대표를 포함해 다수의 연구자가 퀀텀에너지연구소 소속이다. 퀀텀에너지연구소는 2008년 창업된 고려대 내 벤처다. 회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LK-99와 다수의 특허·논문을 홍보하고 있다. 논문 저자 중 한명인 권영완 박사도 고려대-KIST 융합대학원 소속이다. 한 관계자는 “혁명적인 물질을 개발했다고 홍보하면서 회사 가치를 높여 투자를 받으려는 행위로 보인다”면서 “영구 기관 개발이나 새로운 물리학 법칙 발견 등 유사 과학자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해외에서도 상온 초전도를 개발했다는 발표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재현이 된 경우가 없고 대부분 논문이 철회됐다. 미국 로체스터대 랑가 다이어스교수는 2020년 네이처에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지만, 실험 자료를 임의로 수정한 의혹으로 네이처가 논문을 철회했다. 한 과학기술계 인사는 “실험이 인정받으려면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며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태의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다른 물리학과 교수는 “본인 회사의 물질이라도 제3 기관에 물질을 보내 함께 검증받아야 학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