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나노미터급 웨이퍼 시제품 공개
극자외선 장비 활용한 중앙처리장치(CPU)도 선봬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든든한 우군
[아로마스픽(60)] 9.18~22
편집자주
4차 산업 혁명 시대다.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연결 지능형 사회 구현도 초읽기다. 이곳에서 공생할 인공지능(AI), 로봇(Robot), 메타버스(Metaverse), 자율주행(Auto vehicle/드론·무인차), 반도체(Semiconductor), 보안(Security) 등에 대한 주간 동향을 살펴봤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19일(현지시간) 열린 ‘인텔 이노베이션 2023’에서 1.8나노 기반의 반도체원판(웨이퍼)을 소개하고 있다. 인텔 제공
“한때, 최고의 반도체 제조업체였다가 선두를 빼앗겼던 (미국) 인텔이 전면 복귀에 필요한 궤도에 올라왔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상 인정하는 모양새다. 부활의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회사 측 판단 분위기를 그대로 수용한 시각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절대 권력을 누렸던 인텔의 ‘프리미엄’이 고려된 진단으로 읽혔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렸던 '인텔 이노베이션 2023' 행사에서 내비쳤던 인텔의 향후 청사진에 대한 로이터통신의 총평이다. 이날 행사에선 인터넷과 끊어진 상태의 노트북이 테일러 스위프트풍의 음악을 생성하고 사용자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이용, 슈퍼컴퓨터 도움 없이 자체 가동이 가능한 생성형 인공지능(AI) 탑재 덕분이다. 로이터통신은 이에 대해 “올해 12월에 출시될 인텔의 차세대 노트북 프로세서인 ‘미티어레이크’에 내장된 새로운 AI 데이터 처리 기능과 인텔에서 배포할 새로운 소프트웨어 툴 덕분에 가능했다”고 전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몰락한 공룡 기업으로 치부됐던 인텔이 재도약의 고삐를 죄고 나섰다. 전면엔 비밀병기인 1.8나노미터(1㎚=10억 분의 1m)급 공정 기반의 반도체원판(웨이퍼) 시제품을 내세웠다. 이날 소개된 인텔의 1.8나노급 웨이퍼가 가져온 의미는 상당했다. 그동안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 경쟁사인 대만의 TSMC나 한국의 삼성전자에 비해 멀찌감치 뒤처졌던 기술적인 부분을 대등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측면에서다. 인텔은 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활용한 첫 노트북용 중앙처리장치(CPU)까지 선보였다. 인텔도 초미세공정에선 필수 장비로 알려진 EUV 장비 도입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셈이다. EUV 노광 장비는 그동안 TSMC와 삼성전자에서만 상용화에 성공한 설비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일각에선 벌써부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판도변화까지 점쳐진다는 섣부른 예상도 제기된다.
사실 인텔의 이번 깜짝 발표가 가져온 함의는 적지 않다. 시련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끝에 나온 결과물로 보이면서다. 글로벌 시장에서 ‘반도체 제국’을 구축했던 인텔의 지난 50년은 말 그대로 철옹성에 가까웠다. 컴퓨터(PC) 핵심 부품인 마이크로프로세서 반도체 칩의 독점 공급으로 세계 시장을 독식했다. 전 세계에 출시됐던 대부분의 전자제품엔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내장됐다. 1971년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 이후, 인텔의 막강한 시장 지배력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메모리반도체부터 CPU와 서버칩을 비롯해 주요한 칩의 업계 표준 또한 인텔에 의해 설계됐다.
19일(현지시간) 열렸던 ‘인텔 이노베이션 2023’에 참석한 그렉 라벤더 인텔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데이터 센터 그래픽처리장치(GPU) 프로세서를 설명하고 있다. 인텔 제공
하지만 그렇게 꽃길만 걸어왔던 인텔은 2000년대 중반부터 위축된 PC 시장만 고수, 대세였던 모바일 시장을 간과한 끝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PC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핵심 경쟁력은 ‘고성능’이었지만 모바일에선 ‘저전력’으로 판이하게 달랐던 포인트를 놓쳤던 것. 인텔은 이후에도 체질개선의 타이밍을 실기하면서 뒷걸음질만 쳤다. 2021년 1월, 당시 구원투수로 등판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공식 석상에서 기술력 부족까지 시인해야 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인텔의 굴욕적인 양심 고백에 가까웠다.
그랬던 인텔에도 기회는 찾아왔다. 중국과 치열한 패권 전쟁에 나선 미국이 반도체를 전략적 자산으로 지목,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결정을 내리면서다. 이 가운데 지난해 말부터 오픈AI의 ‘챗GPT’를 계기로 불어닥친 생성형 AI 시장 열풍 역시 인텔엔 또 다른 변곡점으로 다가왔다.
장담할 순 없지만 질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인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인텔의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가량 줄어든 129억 달러(약 16조5,442억 원)로, 6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2분기 순이익은 15억 달러(약 1조9,237억 원)를 기록, 전년 동기에 가져왔던 4억5,400만 달러(약 5,822억 원) 적자에서 벗어났다.
'인텔 이노베이션 2023'에 참석한 팻 겔싱어 CEO는 "우리는 'AI 개인용 컴퓨터'를 기술 혁신이란 측면에서 상전벽해의 순간으로 보고 있다"면서 “AI가 반도체와 소프트웨어에 바탕을 두고 성장하는 경제인 '실리코노미'(Siliconomy)를 견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시장조사업체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에서 TSMC가 56.4%로 1위에 마크된 가운데 삼성전자는 11.7%로 뒤를 따랐다.